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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 본 나일강

룩소르 공항의 이집트 에어
 룩소르 공항의 이집트 에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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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를 떠나 카이로로 가기 위해 우리는 이집트 에어를 탈 예정이다. 비행기가 10시 15분에 룩소르 공항을 이륙한다. 그러므로 8시 3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우리는 아침 6시 30분부터 식사를 한다.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식사 후 7시 30분에 크루즈 체크아웃을 하고 배에서 내린다. 3박 4일간의 나일 크루즈가 끝난 것이다. 배를 내려 룩소르 신전 앞길에 이르니 우릴 공항까지 데려다 줄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룩소르 신전을 다시 한 번 보고 차에 오른다.

차는 룩소르 시내를 벗어나 들판을 달린다. 옥수수, 밀, 땅콩 등이 보인다. 20분이 지나자 룩소르 공항이 나온다. 룩소르공항은 국제공항으로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후루가다 등으로 가는 국내선이 있고,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쿠웨이트 등으로 가는 국제선이 있다. 룩소르 공항은 2005년 800만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되었다. 우리는 여행사를 통해 카이로행 비행기표를 이미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바로 체크인을 하고 가방을 부친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 면세점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런데 면세점에서 살 것이 별로 없다. 말만 면세점이지 물건 값이 전혀 싸지도 않다. 그러는 동안 비행기를 탑승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비행기 앞으로 가 트랩에 오른다. 모든 일이 순조롭다. 비행기도 제 시간에 이륙한다. 그러자 비행기 아래로 6㎞ 떨어진 나일강과 룩소르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비행기는 나일강을 건너 왕가의 계곡 위를 지나간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나일강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나일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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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은 마치 거대한 뱀 또는 용처럼 구불거리며 흘러간다. 나일강은 탄자니아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해 지중해까지 그 길이가 6650㎞나 된다. 나일을 이집트 사람들은 닐이라고 부르는데, 위대한 강 또는 큰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발원한 백나일과 에티오피아 타나 호수에서 시작하는 청나일이 수단의 하루툼에서 합류한 다음 이집트의 아부심벨로 흘러 들어온다.

아부심벨을 지난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에 의해 만들어진 낫세르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는 아스완을 지나 룩소르, 아슈트를 지나 카이로에 이르게 된다. 카이로는 나일삼각주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도시로, 여기서 나일강은 다시 동서로 갈라진다. 서쪽으로 흐르는 강은 지중해의 로제타(Rosetta)로 빠져 나가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은 지중해의 다미에타(Damietta)로 빠져 나간다.

이집트 박물관 정원에 널려 있는 석물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카이로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카이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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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쯤 비행을 했을까? 카이로 시내가 나타난다. 카이로는 나일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912만의 대도시다. 그래선지 강 양쪽으로 거대한 주거지가 펼쳐진다. 높은 데서 보니 도시가 마치 벽돌을 쌓아올린 것 같다. 그나마 공항 주변은 시 외곽이어서 건물이 조금은 더 적은 편이다. 비행기를 내린 우리 일행은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 나온다. 주차장에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지난 18일과 19일 이틀 동안 함께 했던 기사가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우리는 카이로 시내를 가로질러 이집트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집트 박물관은 2011년 이집트 시민혁명의 중심지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위치한다. 공항에서 박물관까지는 35분 정도 걸린다. 차에서 내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비교적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이 정원은 야외박물관으로 고대 파라오시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정원의 한 가운데 분수 겸 연못으로 가 파피루스를 살펴본다.

이집트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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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는 한때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이집트에서 가장 소중한 식물이었지만, 이제는 이처럼 인공재배를 통해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박물관 한 가운데 입구 양쪽에는 스핑크스가 좌우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 건물 앞과 정원에는 오벨리스크, 신전 기둥, 바분 원숭이, 하토르 여신, 파라오 석상, 사자상 등이 널려 있다. 우리는 이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본 다음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다.

이집트 박물관은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선사시대부터 그리스-로마시대 문화유산까지 골고루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고왕국과 신왕국 시대 문화유산이 더 많은데, 그것은 이 시대에 좀 더 높은 차원의 문화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이중 신왕국 시대 문화유산이 좀 더 크고 다양하고 또 정교하다. 2층은 투탕카문의 묘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체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왕가의 계곡 등 이집트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이다.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출토된 실제 유물을 보다

이집트 박물관 2층 평면도
 이집트 박물관 2층 평면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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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2층으로 올라가 투탕카문의 유물을 자세히 살펴본다. 투탕카문의 유물은 45호실부터 7호실까지 ㄱ자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먼저 45호실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두 개의 조소상이 서 있다. 죽은 파라오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주는 존재인 카(Ka)다. 머리에는 가발과 두건을 쓰고, 이마에는 코브라 장식을 했다. 어깨를 덮어 가슴까지 내려오는 상의를 걸치고, 쉔디트로 알려진 스커트를 입었다. 양손에는 곤봉과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엄지발가락 사이로 줄을 꿰는 샌들을 신었다.

키는 192㎝로 보통 사람보다 조금 큰 편이다. 피부는 검고 몸에 걸치고 있는 모든 것은 황금색이다. 검은 색은 오시리스와 관련이 있고, 황금색은 파라오와 관련이 있다. 이곳에는 또한 상하 이집트 왕을 상징하는 두 개의 조소상이 있다. 투탕카문이 상하 이집트를 다스린 파라오였음을 알려주는 조각물이다. 이들의 키는 75㎝와 59㎝다. 40호실에는 똑 같은 모양의 파라오가 표범과 파피루스 보트를 타고 나타난다.

투탕카문 무덤의 유물배치도
 투탕카문 무덤의 유물배치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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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35호실에서 인상적인 것은 투탕카문의 옥좌다. 등받이에 투탕카문 부부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양쪽 팔걸이 부분에는 독수리가 조각되어 있다. 손잡이 부분에는 투탕카문의 카르투쉬가 새겨져 있고, 그 앞으로 사자의 머리가 입체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다리의 아랫부분은 사자의 다리를 모방했다. 전체적으로 황금색이며, 필요한 곳에 갈색, 하늘색, 파란색을 사용했다. 의자 앞에는 발판이 놓여있다. 화려함이나 정교함에서 이 보다 훌륭한 의자를 찾아볼 수 없다.

25호실에는 옥으로 만든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컵 모양의 램프, 향수를 넣는 용기, 직육면체 형태 위에 배 모양을 얹은 세면대, 연꽃 장식을 한 컵, 아이벡스 동물 모양의 화병 등이 있다. 그 중 세면대가 가장 정교하고 화려하다. 이곳에는 옥, 상아, 유리, 보석, 금 등이 사용되었다. 세면대 윗부분 배의 양쪽 끝은 아이벡스 머리 모양으로 장식했다.

닫집을 지키는 아누비스
 닫집을 지키는 아누비스
ⓒ Jon Bods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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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실에는 의식용 마차가 있다. 길이가 250㎝ 높이가 118㎝다. 9호와 10호에는 장례용 침대가 세 개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길이가 200㎝ 내외의 것으로,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맹수가 조각되어 있다. 사자, 표범, 암소인데, 표범은 악어 꼬리를 가지고 있고, 암소는 표범의 반점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또한 닫집을 지키는 아누비스가 있다. 아누비스는 자칼을 닮았다.

성체 용기를 감싼 닫집
 성체 용기를 감싼 닫집
ⓒ 이집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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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체를 담은 옥으로 만든 용기와 그 용기를 감싸고 있는 닫집이다. 옥으로 만든 용기는 내부에 다시 네 개의 용기를 넣었는데, 그곳에 투탕카문의 몸에서 나온 간장, 허파, 위, 내장을 넣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이시스, 네프티스, 네이트, 셀케트 네 신이 지킨다. 이들 용기는 다시 닫집 안에 넣어지게 되며, 이 닫집은 호루스의 딸로 알려진 네 여신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8호실에는 투탕카문의 미라를 넣는 관 집들이 네 개나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폭과 길이 그리고 높이가 148㎝×290㎝×190㎝에서 328㎝×508㎝×275㎝ 까지 커진다. 이들은 6㎝ 두께의 오크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문이 있고, 외부에 부조 형식으로 그림과 문자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관 집의 내부 벽에는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나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투탕카문의 황금 마스크
 투탕카문의 황금 마스크
ⓒ Jon Bods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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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문의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황금 마스크다. 이것은 3호실에 전시되어 있다. 황금 마스크는 투탕카문 미라의 머리, 어깨, 가슴 윗부분을 보호하고 있었다. 투탕카문은 젊고 품위 있는 얼굴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두건을 쓰고 있다. 눈은 석영과 흑요석으로 해 넣었다. 이마 위로는 코브라 장식이 있고, 턱에는 수염을 해 달았다. 황금마스크는 높이가 54㎝ 폭이 39㎝ 무게가 11㎏이다. 마스크가 이처럼 무게가 나가는 것은 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3호실에는 투탕카문의 미라와 황금마스크를 감싸는 관이 두 개나 더 있다. 이들 관은 나무에 보석과 유리로 외부를 치장했다. 이곳에는 또한 파라오가 사용하는 장신구와 단검이 전시되어 있다. 장신구에는 목걸이, 반지, 가슴 장식, 왕흘, 향수통 등이 있다. 이들 장신구에는 매의 모습을 한 호루스, 쇠똥구리 모습을 한 스카랍, 코브라 등이 조각되어 있다.     

박물관 2층에서 만난 정교한 보물들

대표적인 장신구
 대표적인 장신구
ⓒ Jon Bods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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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문의 유물 외에 2층에서 주목해야할 곳은 4호실과 2호실이다. 4호실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보석과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고, 2호실에는 타니스(Tanis)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4호실에 있는 보석과 장신구는 대부분 중왕국과 신왕국 시대 것이다. 그리고 타니스는 카이로 동북쪽 130㎞ 지점에 있는 고대 유적지로, 기원전 11세기 신왕국 시대부터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나는 이들 보석과 장신구를 보면서 현재 우리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보석과 장신구의 원형이 이곳 이집트라고 생각하게 됐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벨트, 브로치 등에서 이들을 모방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 장신구류 뿐이 아니다.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나온 의자, 침대, 황금 마스크, 관, 수레 등이 모두 그리스 로마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테네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황금 마스크
 아테네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황금 마스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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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서양문명의 원류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가능케 한 것이 이집트 고대문명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배우기 위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집트에 와서 종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또 호메로스는 그의 서사시 <일리어드>에서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 테베를 '황금이 산처럼 쌓여있고 백 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로 묘사하고 있다.

아테네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고대 유물 대부분은 규모나 양 그리고 다양성과 정교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집트 박물관의 고대 유물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나 문화유산을 통해서도 그들이 이룩한 사회와 문화가 어느 정도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상형문자 기록과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그 위대성이 덜 조명되고 있을 뿐이다.

투탕카문의 관을 여는 하워드 카터
 투탕카문의 관을 여는 하워드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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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근대적인 의미의 이집트학(Egyptology)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의 샹폴리옹(Jean François Champollion), 영국의 영(Thomas Young), 이탈리아의 로셀리니(Ippolito Rosellini), 독일의 렙시우스(Karl Richard Lepsius)가 이집트 문명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선구자들이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페트리(Flinders Petrie)와 카터(Howard Carter)가 현장을 발굴하면서 이집트 문명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제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이들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이집트 문화와 사회를 정리하고 종합하는 것이다. 사회는 정치와 경제를 포함하고, 문화는 언어와 문학 그리고 종교와 예술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실 우리가 그동안 역사와 예술 그리고 건축 분야에만 연구를 집중해온 경향이 있다. 이제는 이들 분야의 토대가 되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유럽문명의 원류가 이집트임이 학술적으로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나일강, #이집트 박물관, #투탕카문, #황금 마스크, #유럽문명의 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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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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