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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5일 오후 3시 40분]

백범 김구 선생이 시해되신 지 어느새 64년이 흘렀다. 그날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암살범 안두희를 둘러싼 백범 시해사건 배후는 아직도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동안 시계 제로의 컴컴한 암흑 속에서도 암살범을 끈질기게 추적 응징하고, 그 진상을 밝히고자 고군분투한 의인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김용희·곽태영·권중희·박기서씨 등이다.

이미 고인이 된 분도 있지만 나는 기록자로서 2003년부터 곽태영·권중희·박기서씨를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김구 선생 곁을 지킨 비서 선우진 선생도. 그뿐 아니라 <오마이뉴스> 여러 누리꾼의 성원으로 40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아 백범 암살배후 진상규명을 위해 2004년 1월 31일부터 그해 3월 17일까지 NARA(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40여 일간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다큐 작가·시민기자로서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를 더듬었다. 취재 1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20일에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나는 그때 성금을 보내준 <오마이뉴스> 1000여 누리꾼과 성원을 해주신 올드팬에게 은혜를 보답하고자 그 일부를 연재한다. - 기자 말

 백범 김구 선생의 만년 모습
 백범 김구 선생의 만년 모습
ⓒ 백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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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도 계급장도 없는 군복 청년

"너 이 새끼!"
"네가 감히 우리 선생님을 쏘아!"

두 경호순경은 그때까지도 아래층 비서실에서 안두희에게 호통을 치며 두들겨 패고 있었다. 때마침 사건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서대문경찰서 형사주임 강용주 경위가 두 경호순경을 가로막았다. 그런 뒤 강 경위는 폭행을 당해 쓰러진 안두희를 일으켜 세웠다. 강 경위는 두 경호순경에게 사건 경위를 듣고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막 연행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군복 청년 네 명이 경교장 1층 대기실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선글라스를 낀 채 군복에는 계급장도 명찰도 없었다.

"야! 네가 뭔데 이분을 연행하려고 해?"

그들은 강 경위에게 위압조로 말했다.

"나, 서대문경찰서 강용주 경위요."
"경찰? 자식, 경찰 좋아하네. 경찰이 무슨 권한으로 군인을 터치하려고 그래? 이분은 현역 군인이니까 우리가 데려가는 거야."

그들 가운데 가장 건장해 보이는 한 청년이 두 팔로 강용주 경위를 밀어젖히고는 안두희를 낚아챘다. 그러자 경호순경이 나섰다.

"너희들은 뭐야?"
"경호순경이오."
"병신 새끼들! 야, 경호도 제대로 못한 너희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나서!"

군복 청년들이 비호같이 두 경호순경의 카빈총을 뺏은 뒤 군홧발로 정강이를 서너 차례 찼다.

"야 이 병신 새끼들아, 싹 꺼져버려!"

2층에서 내려온 비서들이 그 장면을 보고는 분을 참지 못해 식식거리며 군복 청년이 낚아챈 안두희에게 발길질을 했다.

"이 쌍놈의 새끼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제 할일도 못한 새끼들이 겁도 없이 육군 장교에게 발길질이야!"

김병삼 헌병 순찰과장

군복 청년들은 비서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고는 안두희를 부축하여 후딱 스리쿼터 뒷자리에 태웠다. 헌병사령부 순찰과장 김병삼 대위는 스리쿼터에 선임 탑승한 채 백미러로 줄곧 사건 진행 과정을 지켜보다가 그제야 차에서 내려 득의만만하게 소리쳤다.

 사건당시 헌병순찰과장 김병삼 대위로 안두희 소위를 구출한 행동대장이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총무처장관, 체신부장관, 경성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평생 우리 사회의 주류로 살았다.
 사건당시 헌병순찰과장 김병삼 대위로 안두희 소위를 구출한 행동대장이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총무처장관, 체신부장관, 경성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평생 우리 사회의 주류로 살았다.
ⓒ 권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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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수고했어. 그만 빨리 가자!"
"네, 알겠습니다."

군복 청년들은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그들이 타고 온 스리쿼터 뒷자리에 모두 잽싸게 탔다. 거기에는 정복을 입은 헌병들도 여러 명 타고 있었다.

스리쿼터 운전병은 백미러로 그들이 모두 승차한 것을 확인한 뒤 잽싸게 가속 페달을 밟고 경교장 뜰을 벗어났다. 경교장 마당에는 푸르스레한 자동차 배기가스만 자욱이 남았다.

경교장에 군복 청년들이 난데없이 출현하여 범인 안두희를 데려갈 때까지는 잠깐 사이였다. 범인 안두희를 태운 스리쿼터가 쏜살같이 사라지자 경교장에 남은 사람들은 심한 공황상태에 빠졌다. 모두들 마치 허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훤한 대낮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은 잠깐 새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마치 군사작전처럼 현역 육군 장교가 쏜 총에 김구는 피격되고, 범인은 잠깐 새 군복청년에게 탈취당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날 그 시각 경교장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진 채 말도, 울음도 잃고 있었다. 다만 경교장 언저리 플라타너스 숲 매미들만 요란하게 김구의 횡사를 조상했다.

현장에서 쫓겨난 경찰서장

김구의 참변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조완구·엄항섭 동지가 달려왔다.

"어떤 놈이 우리 주석님을 죽였느냐!"
"선생님! 나라의 앞날이 캄캄합니다."

그들은 싸늘한 김구의 시신 앞에 오열했다.

서울시경 국장 김태선은 사건이 나자마자 곧 서울 일원에 초비상경계령을 내리고 통금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다. 어느 새 경교장 언저리에는 김병삼 헌병 대위가 수십 명의 헌병을 배치한 뒤 김구의 서거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

시민들은 출입문을 가로막는 헌병들에게 아우성을 쳤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경교장 출입을 막았다. 이날 서울지방검사장 최대교는 일요일인데도 검찰청에 잠깐 나왔다가 서대문경찰서로부터 김구 암살 급보를 받았다. 최 검사장은 곧 당직 이원희 부장검사와 함께 지프차로 출발하였다. 그들은 현장에 가기 전에 먼저 서대문경찰서에 들렀다.

"서장은?"

"숙직실에 계십니다."
"뭐야! 이 비상시국에…."

최 검사장이 숙직실로 가자 신발을 신은 채 누워 있던 이하성 서장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서장! 김구 선생이 저격당했다는데 사실이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상시국에 현장에 가지 않고 왜 여기 누워 있소?"

이 서장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검사장님, 말도 마십시오. 제가 급보를 받고 현장에 달려갔다가 헌병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돌아와 하도 속이 상해 이곳에서 분을 삭이고 있는 중입니다. 헌병들이 죽 늘어서서 그 누구도 못 들어가게…."
"도대체 관할서장도 못 들어가고 게다가 봉변까지 당했다니 그게 말이나 되오?"

최대교 서울지방검사장의 망신

 청렴·강직한 법조인 최대교(1901~1992) 선생의 동상, 전주 덕진공원에 세워져 있다.
 청렴·강직한 법조인 최대교(1901~1992) 선생의 동상, 전주 덕진공원에 세워져 있다.
ⓒ 눈빛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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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검사장은 이하성 경찰서장을 앞세우고 곧장 경교장으로 갔다. 헌병들의 경비가 삼엄한 정문 앞에 이르자 이 서장의 말대로 일체 출입을 저지했다.

"나 서울지방검사장 최대교인데 현장검증을 하러 왔소."
"못 들어갑니다. 누구든지 출입을 시키지 말라는 상부의 지십니다."
"뭐라고? 나 서울지방검사장이야!"
"안 됩니다."
"야, 너희 대장 불러와!"

곧 키가 자그마한 헌병 대위가 나타났다.

"나 서울지방검사장이오. 살인사건이 나면 검사가 사건현장을 지휘하도록 돼 있소. 그런데 왜 현장 접근을 막소?"
"어쨌든 못 들어갑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보안상 출입금지 시키라는 상부 지십니다."
"그럼, 좋소. 나도 상부에 보고할 테니 귀관 관등성명이나 대시오."
"…."
"왜, 내 말이 안 들리오?"
"… 헌병사령부 순찰과장 … 김병삼 대위입니다."
"알았소!"

최 검사장 일행은 끝내 현장에는 접근치 못하고 검찰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육군 법무감실 홍영기 검찰과장과 육군 정보국 직속 특수정보대(SIS) 이진용 중위가 이미 현장검증을 다녀간 뒤였다.

그날 오후 늦게 김신은 옹진에서 아버지의 비보를 듣자마자 급히 애기를 몰고 서울로 돌아왔다.

'오늘 내가 아버지 곁은 지키는 게 옳았는데….'

김신은 비보가 사실이 아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는 여의도비행장으로 가기 전 기수를 낮춰 먼저 경교장 위를 두어 바퀴 돌았다. 이미 경교장 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김신은 아버지의 변고가 사실임을 확인하자 다시 한 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버님이 기어이 변을 당하셨구나!'

김신은 눈물을 머금은 채 기수를 여의도로 돌려 비행장에서 내린 뒤 곧장 경교장으로 달려왔다.

"아버님, 불효자식이 이제야 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싸늘한 손을 잡고 흐느꼈다.

 김구의 혈육(김구, 아들 신, 손녀 효자)
 김구의 혈육(김구, 아들 신, 손녀 효자)
ⓒ 백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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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 헌병사령부

1949년 6월 26일 낮 경교장 사건현장에서 범인 안두희를 태운 스리쿼터는 곧 필동 헌병사령부에 멈췄다. 선임 탑승한 김병삼 대위가 득의만만하게 차에서 내리며 군복 청년들에게 명령했다.

"야, 우선 안 소위를 내 방으로 모셔."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안두희를 김병삼 순찰과장 사무실 소파에 앉혔다.

"야, 당번병! 빨리 군의관을 불러와!"
"네, 알겠습니다."

김병삼 순찰과장 명령에 당번병이 총알같이 의무실로 달려갔다. 김병삼은 곧장 부대를 지키고 있던 전봉덕 부사령관에게 안두희를 무사히 구출했다고 보고한 뒤 돌아왔다.

"난 경비 때문에 다시 경교장으로 가야 돼. 야, 오 중위, 잔류병들을 빨리 집합시켜!"
"네! 즉각 시행하겠습니다."

당직사관 오석만 중위는 곧장 호루라기를 불며 잔류병들을 소집했다. 김병삼 대위는 재빠르게 집합한 잔류병들을 모두 스리쿼터 뒷자리에 승차시킨 뒤 경교장으로 떠났다.

 일제강점기 필동의 조선헌병사령부다. 해방 이후 헌병사령부였다가 현재는 남산 한옥마을로 변했다.
 일제강점기 필동의 조선헌병사령부다. 해방 이후 헌병사령부였다가 현재는 남산 한옥마을로 변했다.
ⓒ 눈빛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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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덕 헌병부사령관, 회심의 미소를 짓다

안두희는 군의관과 의무병의 부축으로 의무실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고자 침대에 누웠다. 당시 헌병사령관 장흥은 이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파주로 성묘를 갔기에 부사령관 전봉덕이 부대를 지키고 있었다. 김병삼에게 보고를 받은 전봉덕 헌병부사령관이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당직사관 오 중위와 함께 의무실로 들어왔다. 안두희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안 소위! 몸도 불편한데 앉으라. 아무튼 큰일을 차질 없이 잘 수행했어. 역시 안두희야! 이제 여기서 조용히 쉬고 있으면 일이 저절로 잘 풀릴 거야."
"네, 알갓습네다."
"그리고 이곳에 지내면서 먹고 싶은 것이나, 불편한 것 있으면 다 말하라구. 내가 죄다 들어줄 테니."
"기러디요."

 전봉덕 헌병부사령관으로 사건 이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즉각 헌병사령관으로 승진 임명되었다.
 전봉덕 헌병부사령관으로 사건 이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즉각 헌병사령관으로 승진 임명되었다.
ⓒ 권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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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덕 부사령관은 손수 안두희를 침대 위에 눕혔다.

"군의관과 당직사관은 안 소위를 철저히 잘 보호하라."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부동자세로 크게 대답했다. 전봉덕은 의무실을 나온 뒤 당직사관 오 중위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당장 장관 각하께 이 사건을 직접 보고하고 오겠어."
"다녀오십시오. 충성!"

오 중위가 떠나는 부사령관 지프차를 향해 구호를 외치며 경례를 붙였다. 

장흥 헌병사령관의 분노

한편 장흥 헌병사령관은 뒤늦게 김구 살해 급보를 받고 그날 오후 부랴부랴 귀대했다. 장 사령관은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범인 안두희의 소재부터 확인했다. 그때 안두희는 헌병사령부 의무실에 누워 있었다. 그 꼴을 본 장흥 사령관은 화가 몹시 났다.

"네가 김구 선생을 죽인 범인이냐?
"…."
"이 새끼가 간덩이가 부었나! 왜 대답이 없어. 관등성명을 대라!"
"… 포병사령부 소속 … 소위 안두희입네다."

"야, 당직사관! 누가 이 새끼를 여기 두라고 했나?"
"부사령관의 지십니다."
"뭐야! 당장 지하 감방에 처넣고 감시병을 배치하라. 자해할지도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 중위는 즉각 안두희에게 수갑을 채운 뒤 지하 감방으로 옮겼다. 안두희는 지하로 내려가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사령관을 바꽈라우. 난 당흥(장흥)이한테는 도사(조사)를 못 받갓서."

안두희는 장흥 사령관이 중국군 헌병 출신으로 백범과 가까웠던 사람임을 이미 꿰뚫고 뱉은 소리였다.

"저 새끼 간덩이가 아주 고래 등만큼 부었군. 야, 오 중위! 누구든지 내 명령 없이는 감방 문을 못 열게 하라.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오 중위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첫 공식 발표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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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로 사건을 보고하고자 찾아온 신성모 국방장관과 신태영 육군참모차장, 전봉덕 헌병부사령관에게 사건 전말을 전해 듣고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

"신 장관, 전봉덕 부사령관을 사령관으로 즉각 승진시켜 그에게 수사를 맡겨."
"네, 알겠습니다. 각하!"

이승만 대통령도 장흥이 백범 측근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오후 2시 10분, 헌병사령부 전봉덕 부사령관의 이름으로 김구 살해사건에 대한 첫 공식 발표가 있었다.

헌병사령부 부사령관 전 중령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범인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어 헌병사령부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상당히 폭행당했기 때문에 의식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그 소속과 배후를 엄중 조사할 작정이나 현장에서 판명한 것은 1인 단독 행위인 듯하다." -1949. 6. 27. <경향신문>

전봉덕 부사령관은 수사도 하기 전에 이미 결론을 발표했다.

한편 장흥 사령관은 그날 늦게 자기가 면직된 줄도 모른 채 후속 조치를 지시받고자 신성모 국방장관을 찾아가 범인의 수사와 신병 처리 등을 물었다. 신 장관은 면전에서 장 사령관이 면직됐다는 통보는 차마 못하고 퉁명스럽게 지시했다.

"장 사령관, 범인이 사건 현장에서 많이 맞아 의식이 없다고 하니 우선 치료부터 시키시오."
"네, 알겠습니다."

장흥 사령관은 귀대하면서 이왕 헌병대에 넘어온 이상 자기 소신껏 사건 배후를 철저히 가려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최대교 서울지방검사장은 사건 현장에서 헌병에게 현장 출입을 저지당하자 망연자실한 채 검찰청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김병삼 헌병 대위가 허겁지겁 검찰청으로 달려왔다. 그는 그제야 상부에서 검사장의 현장검증 출입 허락이 떨어졌다고 보고하면서 자기가 현장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최 검사장은 워낙 중대한 사건이라 일단 지나간 굴욕을 꾹 참고 김병삼 헌병 대위의 안내로 사건 현장으로 갔다.

최 검사장은 사건 현장인 경교장 2층 침실에 반듯이 누워 있는 김구의 시신을 검시했다. 그런 뒤 검찰청으로 돌아와 즉시 김익진 검찰총장에게 전화했으나 외출 중이었다. 최 검사장은 하는 수 없이 권승렬 법무장관에게 달려갔다. 권 장관은 사건 보고를 받은 뒤 워낙 중대한 사건인지라 곧장 최 검사장을 대동하고 신성모 국방장관을 찾아갔다. 신 국방장관은 잠옷차림으로 비스듬히 일어나 사건 보고를 받은 뒤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민주주의가 되겠군."

전봉덕 헌병사령관

전봉덕 헌병부사령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구두로 헌병사령관 임명을 받은 다음 부대로 돌아와 곧장 의무실에 들렀다. 하지만 안두희가 보이지 않았다. 전봉덕이 화를 벌컥 내며 물었다.

"안 소위를 어디로 보냈나?"
"사령관님의 지시로 지하 감방에…."

당직사관 오 중위가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당장 의무실로 옮겨!"
"사령관님이 아무도 감방 문을 열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지시했습니다."
"야, 아무리 범인이래도 부상당한 사람을 우선 치료부터 해야 되잖아!"

전봉덕 부사령관은 직접 안두희를 부축하여 1층 의무실로 옮긴 뒤 군의관에게 잘 치료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자 군의관은 안두희가 그날 피를 많이 흘렸다고 한쪽 팔에는 혈액주사를, 다른 팔에는 링거주사를 꽂았다. 전 부사령관은 그것을 확인한 뒤 퇴근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장흥 사령관이 당직사관을 앞세우고 의무실로 들어왔다. 장흥은 링거를 꽂고 있는 안두희를 보자 분노가 폭발했다.

"오 중위! 누가 이 자를 여기다 데려다 놨어!"
"부사령관님의 지시였습니다."
"뭐야, 원위치 시켜!"

사령관의 명령에도 당직사관 오 중위는 계속 꾸물거렸다.

"오 중위! 너 사령관이 높으냐? 부사령관이 높으냐?"
"사령관이 높습니다."
"그러면 당장 원위치 시켜!"

장흥은 고함을 질렀다.

"네,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잽싸게 움직였다. 곧 안두희 팔뚝의 주삿바늘이 뽑히고 다시 수갑이 채인 채 지하 감방으로 내려갔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도 기자가 쓰고 눈빛출판사가 발간한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의 내용을 일부 재구성한 것입니다.



태그:#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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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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