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소영


묘하다. 영계인지 사람의 땅인지 구분도 안 될 만큼 자욱한 안개, 혹은 연기. 화면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허리를 드러내며 나뒹굴어진 제기 (祭器). 섬뜩한 칼 가는 소리. 닫힌 방문에 도드라지는 지방 (紙榜). 방으로 들어가는지 관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순간이 지나고, 손잡이도 없는 식칼로 배를 동강내 나눠 먹는 두 군인. 과일 먹는 소리가 이토록 원초적이고 욕정 가득할 수 있나 싶어 스산한 기분이 엄습할 무렵, 영화는 시작된다. 

'해안선 밖에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소식에 마을을 떠난 사람들.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살아남으려는 고군분투기는 神位 (신위: 영혼을 모셔 앉히다), 신묘(영혼이 머무는 곳), 음복 (영혼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소지(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이라는 소제목 속에 알맞게 녹아있다.

영화는 분명 4.3 사건의 피해자로 스러져간 이들의 안식을 위해 역사에 빚진 사람들이 지내는 제사다. 어쩌면, 마약까지 먹고 빨갱이 토벌에 나서는 김 상사나, 어머니를 죽인 빨갱이들을 생각하며 광란의 난자를 해대던 이북출신 토벌군들까지도 역사의 제대 위에 올라와 있다. 특히 살인광이 되어버린 이북출신 토벌군은,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010)'에서 언급한 한국 전쟁 이후 남한에서 극우세력으로 변신, 반공에 앞장섰다던 이북 출신들을 상기시켰다.

미끈한 다리를 곧게 펴며 말벅지를 자랑하던 상표를 보면서도 웃을 수 없었던, 이토록 슬픈 영화를 보면서 문득, 지난 1월 신혼 여행차 들렀던 제주를 생각나게 했다. 남편은 신부인 나의 간곡한 요청으로 강정마을에 들렀다. 강정마을은 황량했다. 구럼비 바위를 찾아볼 수 없었고, 방파제에서 겨울 바다낚시에 한창인 몇몇 사내들과 멀리 이미 기초 작업에 들어간 '미항'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강정마을 부근 건설부지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간이 벽을 둘렀고, 거기에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인적 드문 스산한 마을. 집집마다 걸려있는 미항건설 반대 깃발. 착잡한 마음을 거두고 차에 올라 이번에는 신랑의 청으로 알뜨르 비행장을 갔다.

겨울이라 비가 많았던 제주. 알뜨르 비행장은 바다가 제법 거리감 있게 보이는 들판이었다. 왜 일제가 전투기 비행장으로 삼았는지 충분히 이해되는 기름지고 너른 평원. 들판에는 밭농사가 한창이었다. 비행장터로 접어드는 입구에 조그맣게 '백조일손지묘' 표지판이 보였다.

유난히 인적 드문 허허 벌판이 무섭기만 해, 빗물에 헛바퀴 질 하는 차를 빨리 빼 보자며 채근하던 사이, 남편은 '저것이 격납고'라고 가리켰다. 일제 강점기 전투기를 보관했다는 격납고가 기괴하게 입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백조일손지묘'가 궁금했지만 길이 나빠 도무지 앞으로 갈 수 없었고, 스산하기만 한 비행장터를 빠져나와, 섯알오름 입구에 왔다. 조악한 표지판엔 4.3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백조일손지묘: 伯祖一孫之墓'에 대한 설명은 유홍준 (2012: 330-331)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감수광>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좌익세력이 북한 공산군에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각 지구 계엄사에 좌익분자 체포 · 구금을 명령했다. 제주지구 계엄당국은 불순분자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보도 연맹원, 4.3사건 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사람과 무고한 양민을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검거했다. 이 '예비검속'으로 검거된 대정 · 한림 일대의 제주도민이 193명에 이르렀는데 105-년 8월 20일 새벽 2시부터 섯알오름에서 모조리 학살당했다.

... 사건이 일어난지 6년 8개월 만인 1057년 4월 8일에야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러진 팔·다리·등뼈 등이 뒤섞여 있어 도저히 누구의 유골인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유족들은 132명의 희생자를 한 조상으로 함께 모시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누구의 시신인지 가리지 않고 칠성판 위에 머리 하나, 팔 둘, 등뼈 하나, 다리 둘 등을 이어 맞추어 132명의 봉문을 만들고 그 이름을 '백조일손지묘: 伯祖一孫之墓'라 지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감수광 중에서>

어디 4.3. 뿐만이랴. 일제 강점기 곳곳에 지어진 요새, 크고 작은 오름 들의 내부는 파헤쳐져 기지로 쓰였고, 기득권들 이념 논쟁의 희생양이 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미항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망치질이 한창이다. 강정과 알뜨르가 그렇게 멀지 않고, 이 정도 동선이라면 강정기지와 함께 알뜨르도 다시 군용시설로 돌아설 가능성도 많지 않을까? 그곳의 주인은 4.3 사건의 학살 지령을 내린 사람들과 뿌리가 같은 사람일 것이다.

'제주의 창조신이라는 설문대할망' (유홍준 2012: 176)은 여전히 제주를 살피고 있으실까? 정길이 김상사를 끓여 죄 값을 하게 만들었듯, 설문대할망이 삶아졌듯, 또 누군가 그렇게 해서야 제주의 슬픔이 위로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영화이지만 자막을 보며 비로소 이해가는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나 최전방에서 기꺼이 버텨낸 제주의 눈물을, 의식치 못한 정서적 괴리 때문에 현재 제주의 상황에 이입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 영화를 원혼들을 위한 위령의식인 동시에 현재 제주에 더 이상은 빚지지 말아야 한다는 호소로 느끼는 것은 지나친 감정 몰입일까? 지금 제주는, 영화 속 순덕처럼 유린 당하고 있다.


지슬 강정 알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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