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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선거 유세 당시 서울 강서구 남부골목시장을 찾아 상인이 건네준 호떡을 먹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선거 유세 당시 서울 강서구 남부골목시장을 찾아 상인이 건네준 호떡을 먹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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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에서 작은 문방구를 운영하는 이성수(54)씨는 요사이 한숨만 계속 나온다. 예전에는 돈은 적게 벌어도 네 식구가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살 정도는 됐다. 하지만 근처에 대형마트가 7~8개 생기면서 수입이 뚝 떨어졌다. 하루에 연필 몇 자루, 노트 몇 권 판다. 그나마 아이들 기호식품, 먹거리를 팔면서 근근이 버텼다. 그런데 며칠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학교 부근 문방구점의 식품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얘기다. 결국, 이씨는 2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 서서 호소했다.

"매달 수시로 식품 단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해한 상품이 있다면 만든 놈들이나 처벌해야지. 왜 우리입니까. 우리 문방구 진짜, 엄청나게 힘듭니다. 식약처 관계자 여러분,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이게 우리 살 길입니다."

이씨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4대 사회악 척결' 공약으로 절벽에 내몰린 학교 부근 문방구점들의 집단 호소였다. 식약처는 지난 21일 올해 정책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학교 부근 등 '학생안전지역' 내 문방구점이 식품류를 아이들에게 팔 수 없도록 하는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불량식품과의 전쟁'이다. 대선 당시 '국민안심프로젝트'로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을 뿌리 뽑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부응한 조치였다. 그러나 대형마트 급증으로 지난 10년 사이 1만 개 이상 사라진 문방구점에게 마지막 구명줄을 끊어버리겠단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대형마트 묶음 상품은 안전... 문방구 낱개 상품은 불량식품이냐?"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학습준비물 생산유통인협회, 경제민주화 국민운동본부 등 10여 명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식약처의 학교 부근 문방구점 식품 판매 금지 조치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은 "원래 이맘때면 전국의 문구업계는 신학기 호황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대형마트들이 신학기 맞이 할인행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하면서 전국 그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 문구종사자들의 웃음이 들리지 않는다"며 "이미 문구업은 사양 길에 접어 든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이어, "업계의 최약층인 학교 인근 문방구들은 결국 그 명칭이 무색하게 문구가 아닌 아이들 기호 식품 판매로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최근 식약처의 식품 판매 금지 조치는 문방구를 이 산업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식약처의 학교 부근 문방구 식품 판매 금지 방침이 '과잉조치'인 점도 성토했다. 방기홍 학습준비물 생산유통인협회장은 "아이들의 건강에 유해한 불량식품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고 이미 수많은 단속과 자정노력으로 많이 사라지고 있다"며 "왜 대형마트에서 팔리는 묶음상품은 안전한 식품이고 문방구에서 팔리는 낱개 상품은 왜 불량식품이란 누명을 써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불량식품을 없애기 위해 학교 인근 문방구들의 식품 판매 자체를 금지시키겠다는 것은 결국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겠다는 것"이라며 "이번 조치가 대형마트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중국산 저질 고춧가루와 참기름, 일본산 방사능 생선을 막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조치인가"라고 되물었다.

이태현 전국유통상인연합회장도 식약처의 방침을 두고 "불량식품을 잡겠다고 하다가 불량정책이 나온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힘없는 약자를 때려잡아서 자기들의 정책의 상징성을 세우려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식약처가 자신들의 입지만 살리려는 정책을 발표해 전국의 문구 유통인들이 비탄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학교 앞 문방구, 규제가 아닌 보호 받아야 할 대상"

이들은 "문구업계가 규제가 아니라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의 대형마트 판매 품목 제한에 문구류를 포함하거나 문구 유통을 중소기업적합품목으로 지정해 유통재벌로부터 영세 자영업자를 지켜달라는 게 골자였다. 또 현행 '준비물 없는 학교' 제도를 개선해 학교 부근의 문방구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였다. 

"이제 규제가 아닌 보호를 통해 전국의 문방구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통령님과 정부가 앞장서달라"며 절절한 호소도 곁들었다.

이들은 "문방구는 구멍가게와 함께 우리의 곁을 지켜온 가장 오래된 전통 골목상권"이라며 "저희들도 대통령님과 정부의 의지를 믿고 업계에서 정말 학생들에게 유해한 식품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근절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한 양승조 민주통합당 의원은 "식약처가 아무런 대책 없이 식품판매행위 금지만 강조하는 것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내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며, 관련 법안 개정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박근혜, #4대 사회악, #불량식품, #문방구,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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