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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 한국 농촌의 현실이다. 기후변화로 농업의 위험성은 더해졌다. 매출은 정체되고 일할 수 있는 젊은이는 없고, 이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 농토는 황폐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웃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지자체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을 들이기 위해 '돈 주는 정책'까지 쓰고 있지만,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에 아주 특별한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지난 21일 완주, 진안 등에서 강연한 일본 오이타현 오오야마정의 농협장인 야하타 세이고우씨의 강연을 요약한다. 세이고우 조합장은 일본에서 최초로 조합원이 자가 생산 농산물을 조합에 가져와 소포장 작업 후 조합원이 직접 결정한 가격표을 붙이고 조합은 매장에서 판매관리를 책임지는 미찌노에키(일본 직매장)을 개장하여 일본전역에 1000여 개의 직매장을 확대하는 등 협동조합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열강중인 야하타 세이고우 농협장. 1947년생으로 64년에 오오야마 농협에 입사해 일한 오오야마 발전역사의 증인이다.
 열강중인 야하타 세이고우 농협장. 1947년생으로 64년에 오오야마 농협에 입사해 일한 오오야마 발전역사의 증인이다.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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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자원도 없고, 경관이 좋은 것도 아니고, 철도나 고속도로도 지나지 않고 유적이나 무형문화 조차 없는 곳"

일본 오오야마정(丁)은 오이타현 중에도 가장 가난한 동네였다. 농지도 넓지 않아 자급하기도 빠듯한 구조였다. 미래가 없는 마을이었다. 1961년 농협조합장과 정장(町長)을 겸한 야하타 하루미(矢幡治美)는 마을에 혁신을 선언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매실과 밤 심어서 하와이 여행가자"

오오야마는 총면적 45.72㎢로 산지가 80%이고 경작지 7%(호당경지면적 0.4ha)밖에 안되는 협소한 산촌마을이다. 인구는 3200명(900세대)이고 고령화율이 27.2%로 높은 편이며, 해발 100~600m 정도로 국내 산촌마을과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 농민들은 "연예인이나 가는 하와이에 우리가 어떻게 가느냐"며 못미더워했다.

600여가지에 이르는 오오야마의 상품중에는 이런 나뭇잎도 버젓이 한자리 하고 있다. 어디에 쓰일까. 대도시의 요리점에서 쓰인다고.
 600여가지에 이르는 오오야마의 상품중에는 이런 나뭇잎도 버젓이 한자리 하고 있다. 어디에 쓰일까. 대도시의 요리점에서 쓰인다고.
ⓒ 야하타세이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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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소득 증대를 위해 당시 일본정부가 선언한 '쌀한가마 증산운동'에 역행하는 매실과 밤을 기간작목으로, 생산기반 정비를 통해 과수와 특산 작목을 보조작목으로 도입했다. 이와 더불어 1차산업에 머물지 않고 2차, 3차 산업 수입을 위한 교육과 기반을 마련하는데 애썼다. 일본정부는 농업구조개선을 위한 규모화를 추구했지만 오오야마는 다품종 소량생산에 의한 소규모 농업, 이른바 '부부 2인이 기분 좋게 노동할수 있는 소규모 농업'을 추진했다.

소득증대를 통해 하와이에 가자는 구호는 5년 만에 실현되었다. 농민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겨우 16명을 모집해 맞춤 옷까지 입고 하와이에 다녀왔으며 하와이에 오오야마 응원단까지 생겨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보조는 마약과 같다. 빨리 끊어라."

야하타 세이고우씨는 말한다. 당시 처음 밤과 매실나무를 심을 때를 제외하고는 보조금없이 농협과 조합원들의 자금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외에는 무이자 대출 형식이다. 자본투자가 많이 되지 않는 선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한 기반등을 지원한다. 이듬해부터 얻는 수익으로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운동의 촉매제가 되었던 '하와이 여행'은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하와이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한국 등에 주민과 학생의 여행을 지원한다. 여행경비도 농협에서 빌려주고 무이자 상환한다.

해외여행의 목적은 '자신감'이다. 도시의 셀러리맨만 가는 것이 아니라 농민도 정기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다고 하는 것. 이에 외국문물을 보고 먹고 느끼고 돌아오면 농사에서 판매에 이르는 '생각'이 깨일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뿐만아니라 이스라엘의 키부츠, 핀란드와 네덜란드 등으로 젊을 후계자를 파견해 선진농업기술을 습득하거나 정보교류의 창구로도 활용하고 있다.

오오야마의 현재는 50년전 과거에서 흔들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23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직판장은 시작부터 자기자금 100%로 구성했고 '일하고, 배우고, 사랑하자'는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정내에 농산물 99.9%는 모두 농협에서 판매된다. 이는 일본내에 타 지자체에도 거의 없는 사례다.

깔개도 없는 바닥에는 풀이 가득하다. 친환경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매실밭. 매화가 한창일때에 찍은듯하다.
 깔개도 없는 바닥에는 풀이 가득하다. 친환경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매실밭. 매화가 한창일때에 찍은듯하다.
ⓒ 야하타세이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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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여준 사진. 풀이 가득한 과수원은 '오가닉 랜드'라는 표어를 상징한다. 직원 5~6명을 데리고 일하는 농장 주는 직원과 함께 매년 한 두번씩 해외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다품종 소량재배가 맞다고 한다. 보통 10가지가 넘는 품종인데 과수와 하우스에 버섯, 허브 등을 재배하고 이를 가공해 직접 판매까지 주민이 책임지는 구조다.

직매장이 꼭 장소를 가리는 것은 아니다. 후쿠오카시 방송국 1층에 마련된 직매장의 전경. 매출이 좋다고 했다.
 직매장이 꼭 장소를 가리는 것은 아니다. 후쿠오카시 방송국 1층에 마련된 직매장의 전경. 매출이 좋다고 했다.
ⓒ 오이타현 오오야마 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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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고노하나가르텐(木の花カルテン)이 있다. 직판장과 우메보시(매실발효) 저장실, 레스토랑과 도예공방 등의 시설을 갖춘 오오야마 농협의 종합 직판장이다. 요즘 한국에서 막 시작하려는 6차 산업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고노하나는 일본의 전설에 나오는 두공주중 하나로 바다공주의 짝인 산공주를 뜻한다.

"너무 많이 팔려서 걱정이다."

우스갯소리겠지만, 년매출 16억 엔에 이른다고 하니 그냥 농담으로만 받을 일도 아닌 듯 하다. 오오야마에 1개소, 오오이타시에 2개소, 후쿠오카시에 2개소가 있고 이곳에 나오는 농산물을 농민들이 직접 가격표를 붙여 박스에 담아서 낸다. 식당 오가닉팜(Organic Farm)은 가격이 싼편이 아니지만 식사때면 좌석이 없어 긴 줄을 서야할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모든 식자재가 인근에서 조달하는 로컬푸드이며 신선한 것이 장점이라고. 100가지 요리가 뷔페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시설중 핵심인 우메보시 저장고는 지하에 중국에서 들여온 대리석으로 만든 창고이며 지역홍보와 도농교류의 장소로도 활용된다. 우메보시의 가격은 50kg한 통에 보통 15만 엔, 10년 숙성한 것은 30만 엔을 호가한다고 한다.

우메보시. 메실저장고이다. 포도당을 이용한 매실효소를 저장한다고. 10년이 넘은것은 기본이고 몇십년 된것도 있다고 한다.
 우메보시. 메실저장고이다. 포도당을 이용한 매실효소를 저장한다고. 10년이 넘은것은 기본이고 몇십년 된것도 있다고 한다.
ⓒ 오이타현 오오야마정 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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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오오야마를 만든 것은 50년 전 한 리더의 선구적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지역의 자원을 찾고 농촌만의 색을 잃지 않은 것이 주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과 생태계의 보전을 통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한 수익으로 도시와 차별화를 가지는데 성공한 사례다. 오이타현의 히라마츠(平松) 지사의 말이 와 닿는다 .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두렵지 않다. 무서운 것은 마음이 졸아드는 것이다. 설사 줄어든다고 해도 그곳에 의욕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 된다."

옛 농촌의 장점을 살리고 무리하지 않는 사업을 차츰 벌여나가는 것. 위험을 줄이고 소득의 안정화를 위해 적은 면적에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것. 오늘 위기의 한국농업과 이를 이끄는 정책입안자와 농협, 지역리더 등에 주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


태그:#오오야마, #일촌일품, #고노하나가르텐, #야하타 세이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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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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