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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역 근처에서 만난 무지개(왼쪽)와 대학원에 들어가고서 꼭 신고 싶었던 단화(오른쪽). 바닥이 땅에 착착 붙는 민바닥 운동화.
 부산역 근처에서 만난 무지개(왼쪽)와 대학원에 들어가고서 꼭 신고 싶었던 단화(오른쪽). 바닥이 땅에 착착 붙는 민바닥 운동화.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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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40여 년을 서울에서 지낸 서울 촌놈입니다. 그래서 향수병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습니다. 가족과 친척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어 명절 때의 귀성 풍경 또한 저하고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만 2년을 경부선의 끝자락 부산에서 지내다 왔습니다. 작은 월셋방을 구하고, 조금은 모진 마음에 주소지를 옮기며 주민등록증도 갱신했습니다. 외관상 온전한 부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때 모두 부산에서 투표했습니다. 대학원 학업 관계로 때 늦은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어서 제겐 별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서의 삶은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하나의 원 모양으로 제 삶의 나이테에 덧붙여질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학업 관계로 내려간 것이지만, 2~3년 전의 솔직한 제 심정은 '서울이 싫어졌고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시각각 새로운 문명으로 탈바꿈하는 것에 염증이 났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과시욕이 많았다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전 서울시장이 1990년대까지 호젓했던 서울 풍경을 너무 많이 바꿔놨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있으면서 2011년 8월 서울의 '무상급식 지원범위에 관한 서울특별시 주민투표'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또 같은 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는 제게 투표권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일, 저는 부산 사직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날 무렵, 경기장 밖으로 나온 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노점상 아저씨에게 투표 결과를 물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2G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투표와 선거 결과를 알고 나서 내 일처럼 기뻐했고, 그 이후로 조금씩 생채기가 나아가는 서울을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남녘 겨울을 보내고서 올해 2월에 상경했습니다. 학업이 끝났기도 했고, 서울에서 새 일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1년여 전부터 권유받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시민운동을 여러 모로 지속해 왔던 인생 선배의 사무실 업무를 맡게됐습니다. 이 일은 무엇보다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많은 방점을 두는 일입니다. 지금 그 일을 업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부산 영도 끝 태종대 전망대 앞에 있는 섬 ‘생도’. 주전자처럼 보여서 ‘주전자섬’이라고도 한다.
 부산 영도 끝 태종대 전망대 앞에 있는 섬 ‘생도’. 주전자처럼 보여서 ‘주전자섬’이라고도 한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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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의 '부산불꽃축제' 광경.
 2011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의 '부산불꽃축제' 광경.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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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를 하기 전에 부산에서의 삶을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노년층 비중이 큰 부산은 예전의 모습과 '신세계'의 모습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부산만의 마을이라고 할 '산복도로'(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 마을이 있는가 하면, 홍콩을 연상케 하는 해운대 고층 건물 숲이 있습니다.

학교서 만난 대학원 동료가 사는 범일동(산복도로 근처 산동네)의 조그마한 횟집에서 2~3만 원 하는 메뉴를 선택해 술잔을 기울였고, 한편으로는 아파트라고 믿기 힘든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해운대 주변을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양정동의 한 대형병원의 벚꽃 풍경
 양정동의 한 대형병원의 벚꽃 풍경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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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입니다. 우리들 어렸을 적처럼 수건도 비치돼 있지 않고 조그마한 비누만 있는 허름한 목욕탕이 있는가 하면, 여행하다 본 것 중 제일 시설이 좋은 온천 찜질방도 있었습니다. 제가 월셋방을 얻어 산 양정동에는 전자가 있었고, 영도 끝 태종대 지척에는 후자가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부산 어딜 가든 대체적으로 느릿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혼탁한 공기를 맛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서울 지하철만 타면 느낄 수 있는 속도감과 삭막함은 없었습니다. 저절로 비교가 됐었지요. 인심 좋고 정 넘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어서, 안주 없이 생맥주만 시켜도 기본 안주를 말없이 푸짐하게 내주는 술집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곱빼기가 3000원 하는 칼국수집에서 가끔씩 해장도 했었지요.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시선일까요? 그래도 인정이라고 할 것들이 오래오래 남아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사실은 부산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서울이 그리워지고 다시 가도 되는 곳임을 경험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좋아했다'가 '싫어졌던' 서울이 '다시 좋아지게' 될 수 있겠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경험은 제가 일하는 분야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도시마을연구소'라는 명칭을 가진 작은 회사입니다. 삭막하기가 쉬운 도시 그리고 아파트 공간에서 '시골스러운' 마을을 꿈꾸는 곳입니다. 이런 꿈을 품으면서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도봉산 입구에 카페 겸 사무실을 차린 공간을 일터로 삼고 있습니다. 꿈은 크지만 출발은 무척 소박합니다. '도시'와 '마을'이 만났고 '카페'와 '사무실'이 만났습니다. 등산하는 사람들 따라 출근하다가, 하산하고서 한 잔 기울인 또 다른 등산객들 따라 퇴근하곤 합니다.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을 뒤로 하고 업무에 집중합니다. 지금은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제가 속한 회사를 포함해 일곱 단체가 함께하는 '풀뿌리 사회적기업가학교' 개강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풀뿌리 사회적기업가학교’ 2012년 입학식 때에.
 ‘풀뿌리 사회적기업가학교’ 2012년 입학식 때에.
ⓒ 도시마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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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와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풀뿌리 학교'는 올해로 벌써 다섯 해째를 맞았습니다. 사회적기업 등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리더들을 훈련시키는 목적을 갖고 2009년에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4월 20일부터 7월 6일까지 열립니다. '희망제작소' 누리집 '사회적경제리포트' 코너에 들어갈 광고에 들어갈 문구를 만들어봤습니다. '풀뿌리 학교'의 정체성을 담아서 말이지요.

매화와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어날 남녘땅을 찾아 남행하고 싶은 봄날입니다. 겨우내 꾹꾹 밟히며 돋아날 힘을 키운 보리도 청색 빛깔 싹을 내밀 것입니다. 겨울을 견딘 튼튼한 풀뿌리가 있어 가능한 일들이지요.

그런 풀뿌리들, 이 사회의 풀뿌리들을 키우는 봄날 강좌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성공회대학교와 한겨레 경제연구소 및 여러 단체들이 공동 운영하는 '풀뿌리 사회적기업가학교' 과정입니다. 벌써 올해 다섯 해째네요.

혹시 사회적기업가가 되고 싶으세요? 또는 사회적 경제 전문가는 어떠신가요? 아니면 아파트에 마을기업을 세우고 싶으신지요? 이외에도 튼실한 여러 커리큘럼이 있습니다. 모두 행동하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멋진 프로그램들입니다.

누군가가 세상에 적응하기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쉽다고 하더군요.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꿀 사람이 필요한 거고요. 봄이 되어도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외치는 아우성 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힘을 내야 하겠지요. 자! 기대를 지니고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 넘치는 여러분들의 노크를 기다리겠습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런 류의 교육이 예전에 비해 더 활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주민 주도형의 단체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서울시 산하에는 '서울시 사회적기업개발센터'라는 지원 기관도 있습니다.

 올해 1월까지 4년 여 동안 사용한 2G 핸드폰. 동백꽃 사진이 담겨 있다.
 올해 1월까지 4년 여 동안 사용한 2G 핸드폰. 동백꽃 사진이 담겨 있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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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때문에 얼마 전 휴대전화도 스마트폰으로 바꿨습니다. 주구장창 예전 2G 휴대전화를 사용했지만,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어느새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런 덕에 문명으로 인한 소외감(?)을 덜 느끼게 되기도 했지요.

 부산 방에서.
 부산 방에서.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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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을 끝으로 제2의 고향이라 삼을 만한 부산을 떠나 서울로 귀향했습니다. 그런데 부산 월셋방에다 아직까지 짐과 책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은 2년 동안 늘어난 짐을 옮겨놓을 공간이 없어서 그랬지만, 가끔씩 머리 식히러 떠날 생각에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논문작업 때문에 부산에 '별장'을 하나 뒀다고 여기고 있는 중입니다. 극비(?)에 속할 정도로 월세가 싼, 허름한 산동네의 조망 좋은 아주 고마운 별장입니다.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현관 앞에서 그라운드의 조명 빛과 함성 소리가 다가오는 집입니다.

 자갈치 시장 근처의 한 카페에서. 카페에서 기르는 고양이 사진.
 자갈치 시장 근처의 한 카페에서. 카페에서 기르는 고양이 사진.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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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단독주택에 네 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 동네에는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 되는 자잘한 정들이 있습니다. 맞은편 집 아주머니는 길고양이들에게 매일 먹이를 주고, 제 옆 방 아주머니는 정해진 요일 저녁에만 내다놓을 수 있는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제가 집에 없을 때 저 대신 내다놓으시곤 합니다. 텃밭을 아름드리 가꿔놓은 집도 있고, 가게라고 하기도 뭐하게 채소나 생선 등 몇 가지 물품만 판매하는 가난한 가게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 위로 툭 하면 까마귀들이 까악까악거리며 산동네 하늘 주변을 유영합니다. 동네 사람들인 듯한 중년 남성이 휴대용 소독기를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매운 연기를 뿌려대기도 합니다.

 부산대학교 교정 모습. 10월에도 피어나는 장미꽃들.
 부산대학교 교정 모습. 10월에도 피어나는 장미꽃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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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억이 납니다. 제가 연구보조원 일을 했던 학교 내 한 연구소 동료들이 제가 서울에서 하게 될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한 말입니다. 마을기업(사회적기업)은 오밀조밀한 동네들이 많은 부산에서 더 적절하게 응용될 수 있을 거라고요. 헤어지는 자리에 덕담으로 한 말이기도 하겠고요.

조금은 멋쩍은 것은 낭만적인 성격을 지닌 제가 '시민운동' 성격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자 있기를 잘하고 여행을 자주 하며, 지금 서울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 제가 공동체 활성화 성격의 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잘해 낼지도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나름 적응하며 제 성격을 이런 업무에 버무리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로 튈지는 또한 모르는 일이고요.

요 며칠 꽃샘추위가 불쑥 찾아왔습니다. 꽃이 샘을 내는 추위라서 붙여진 이름일까요? 옷을 하나 더 껴입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날에 개나리의 녹색 잎이 돋아난 것을 올해 처음으로 봤습니다.

입춘을 보내고 우수를 건넌 다음 경칩을 일찌감치 배웅했습니다. 제아무리 무서운 북극 얼음물 '강(强)바람'이라고 해도, 사람이 자연의 순리에 맞춰 만들어낸 음력 절기를 거스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구가 태양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간 시기 그러니까 지구도 애를 쓰면서 이번 겨울의 매서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을 때, 그 위를 나돌아다니는 우리 인간들도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고 기지개 켜는 것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시작한 일도 그랬으면 합니다. 따뜻하고 사랑스런 서울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주말에 봄옷들을 챙기러 부산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지금쯤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것이고, 운 좋으면 개나리 피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것입니다. 언젠가는 부산에 대한 향수병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태그:#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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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몸을 씁니다』 등 네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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