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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바둑동호회 오진택 회장이 바둑사무실에서 담소하고 있다. 그는 여기를 사비로 충당하며 안성바둑협회 활성화를 꿈꾸고 있다. '후진양성과 쉼터제공'의 두 토끼를 잡으려고.
▲ 오진택씨 안성바둑동호회 오진택 회장이 바둑사무실에서 담소하고 있다. 그는 여기를 사비로 충당하며 안성바둑협회 활성화를 꿈꾸고 있다. '후진양성과 쉼터제공'의 두 토끼를 잡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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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택(60)씨가 바둑을 알 게 된 건 50여 년 전. 유난히 바둑을 좋아하는 삼촌들로부터 어깨 너머로 배웠다. 그렇게 시작한 바둑이 평생 함께할 줄 그땐 몰랐다.

삼촌들, 형제들, 그리고 아들까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형제들은 모두 바둑의 고수들이다. 3형제는 아마추어 5단 실력, 다른 한 형제는 취미바둑 중 수준급. 이른바 바둑 4형제다. 현재 진택씨는 지금 안성시에서 바둑동호회를 운영하고 있고, 그의 동생 승택씨는 미양면에서 바둑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택씨의 아들 현식씨는 6~9세까지 4년 동안 바둑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글도 배우기 전에 바둑부터 배운 아들. 다른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 할 때, 바둑 두며 놀았다. 상상해보라. 7세 꼬마가 어른들과 앉아 바둑을 두는 모습을. "하, 그 녀석 참 잘 두네 그려!"라고 칭찬받는 모습을.

안성의 한 바둑학원까지 다니며 배운 아들의 바둑 실력은 일취월장이었다. 주변에선 '바둑계의 꿈나무'라 불렀다. 하지만 다른 길의 가능성 때문에 '바둑의 길'에 전념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혼자서 독학(인터넷 바둑을 통해)한 결과, 현재 27세의 아들은 아마추어 6단이다.

이걸 부전자전이라고 해야 하겠지. 지독한 '바둑사랑'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집안은 3대에 걸쳐 바둑 하는 바둑가족인 셈이다. 진택씨의 부모 대(삼촌들)에서 아들 대까지.

바둑에도 도가 있다. 사무실 한 쪽 벽면엔 바둑십계명이 아래에 있고, 그 위엔 바둑이 주는 5가지 유익이 적혀있다.
▲ 바둑십계명 바둑에도 도가 있다. 사무실 한 쪽 벽면엔 바둑십계명이 아래에 있고, 그 위엔 바둑이 주는 5가지 유익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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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승패보다 더 중요한 건 자세 

"'바둑의 묘미는 역시 '수담'이죠. 바둑을 말 없이 두지만, 서로 수를 두어가며 수로써 대화하는 것을 수담(手談)이라 합니다."

아하, '수담'이라. 신선한 표현이다.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조그만 바둑판 위에서 손으로 인생을 논한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말없이 진중하게 '내 인생방식과 너의 인생방식'이 만나 의사소통한다는 말이다.

"처음 만난 사람도 바둑 3판만 둬보면 그 사람의 인생과 성격이 보인다"는 진택씨. 바둑 두는 모습을 보면 평소 그 사람의 생활이 눈에 들어온다고. 사람 대하는 태도와 삶의 태도까지. 그가 차분한지, 다혈질인지,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공격적인지, 도전적인지 등.

진택씨에 의하면 "바둑의 고수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을 잘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것. 적어도 프로 바둑기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상대방의 수를 간파한 후, 상대방을 배려하며 기분 좋게 수담을 나누는 사람이 고수라는 이야기다.

장사에 상도가 있듯, 바둑에도 '바둑의 도'가 있다. 바둑은 승패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보다 바둑 두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는 누구나 두 번 두기 싫어한다. 반면, 그 사람과는 열 판을 두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인생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란다.

지금은 회원들이 바둑으로 수담을 나누고 있고, 오진택회장이 참관하며 함께 수담을 나누고 있다. 중년 남성 3명이 인생을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 수담 중 지금은 회원들이 바둑으로 수담을 나누고 있고, 오진택회장이 참관하며 함께 수담을 나누고 있다. 중년 남성 3명이 인생을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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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길, 인생의 길

바둑을 통해 인생의 도를 닦는다. 인내할 줄 알아야 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수만 읽는 게 아니라 남의 수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처절하게 무너져 가는 약자의 고통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그걸 다 무너뜨리지 않고 봐주는 아량도 베풀어야 하고, 때론 내가 처절하게 무너질 때를 겪으며 반면교사를 삼기도 하고, 철저하게 자기성찰을 할 줄 알아야 하고.

그는 바둑판과 바둑돌을 가리키며 "광활한 대지 위에서 나는 장군, 바둑돌은 졸병. 내가 수를 두는 대로 졸병이 움직이듯 바둑판 위에서 삶을 경영해보는 묘미가 있다"고 말한다. 바둑을 경영하는 것은 삶을 경영하는 것과 닮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둑에도 바둑격언이 있다. 예컨대 '소탐대실(작은 것을 욕심내다 큰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 등이다. 바둑격언을 담은 책도 있다. 거기다가 바둑 10계명까지.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10계명이다. 바둑을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예의, 인생의 도'등을 배운다는 이야기다.

이런 바둑의 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진택씨. 그는 작년에 정년퇴직을 한 후 바로 바둑동호회를 결성했다. '퇴직 후 무얼 해야 나도 행복하고, 사회에 기여도 하지'라는 오랜 물음의 결과였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 바로 바둑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택했다. 세상과 수담을 두기로 작정했다.

사비를 털어 개설하고 운영하는 현재의 바둑사무실을 통해 안성바둑협회를 활성화 하는 것. 그래서 '바둑교실을 통한 후진 양성, 퇴직자나 성인들을 위한 쉼터 제공' 등이 그의 꿈이란다.

바둑의 도는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바둑을 통해 인생의 수를 교훈해주는 바둑격언집 등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바둑 사무실에서 찍었다.
▲ 바둑격언집 바둑의 도는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바둑을 통해 인생의 수를 교훈해주는 바둑격언집 등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바둑 사무실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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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퇴직 후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마치 그는 바둑을 두듯 한 수씩 차근차근 인생의 수를 두고 있다. 그는 말했다.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새겨졌으면 좋겠다고.

"사회에 봉사하며 선비처럼 살다간 사람".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8일 안성바둑동호회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태그:#바둑, #안성바둑동호회, #안성바둑협회, #오진택,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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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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