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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미터 되는 길이의 양파망을 깔때기에 '촤르륵' 말아 넣은 뒤 깔때기 안으로 흙을 부으면서 양파망을 가래떡 뽑듯 풀어줍니다. 뒤따라 커다란 나무망치가 양파망이 납작해질 때까지 떡방아 찧듯 따라옵니다. 그렇게 지름 5미터 되는 원을 돕니다. 서른여덟 번만 하면 됩니다. 흙부대집 짓기, 참 쉽죠잉~.

나무를 사용하는 방법의 집짓기는 기둥과 서까래가 만나는 도리의 짜맞춤이라든지, 벽체의 높이를 미리 계산해서 나무를 재단한다든지, 대들보를 끼워 맞춘다든지…. 간단한 구조라 해도 최소한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흙부대 공법은 기술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낮으면 한 단 더 쌓고 문틀을 세우면 됩니다. 창문도 한단 한단 쌓아가며 높이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집 높이도 마음대로 조절 가능합니다. 물론 미리 설계를 하고 시작하지만 집을 짓다가 창문을 높이거나 넓히고 싶으면 즉각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흙부대집 2동을 친구들과 지었습니다. 이제는 바깥미장을 하고 기단만 정리하면 됩니다.
▲ 흙부대집 흙부대집 2동을 친구들과 지었습니다. 이제는 바깥미장을 하고 기단만 정리하면 됩니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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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짓기에서 벽체는 뼈대인 구조와 피부인 단열을 고려해서 짓게 됩니다. 두 가지를 따로 고민해야 하죠. 그러나 흙부대집은 두 가지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흙부대 두께가 45센티미터이니,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단열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고 벽 안팎으로 아무 고민 없이 흙미장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흙부대 공법은 경제적입니다. 나무 구조의 집일 경우 굵은 나무든 얇은 나무든 목재 값이 건축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그런데 흙부대집은 흙을 담을 부대만 있으면 됩니다. 실제로 이번에 벽체에 들어간 비용은 양파망값 35만 원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흙부대집 벽체는 16미터 길이의 양파망에 흙을 넣고 다지기만 하면 완성됩니다. 그래도 큰 지진에도 버틸만큼 튼튼하답니다.
▲ 흙부대집 벽체 쌓기 흙부대집 벽체는 16미터 길이의 양파망에 흙을 넣고 다지기만 하면 완성됩니다. 그래도 큰 지진에도 버틸만큼 튼튼하답니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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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 지으려던 흙부대집

흙부대집은 원래 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고안된 건축법이라고 합니다. 지구에서 건축자재를 가지고 갈 수 없어서 생각한 방법인데, 진도 7.0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공법이라고 하니 구조적으로 매우 튼튼한 공법입니다. 이 공법을 알게 된 건 귀촌을 한창 준비하던 2009년이었습니다. 책 제목도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이어서 전문가가 아니라도 지을 수 있고, 함께 짓기 때문에 행복할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공법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겠다 하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한 건 실행하기 전 두 가지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집 지을 자리의 땅을 깎아 내거나 토지 정리를 할 때만 건축할 수 있을 만큼의 흙량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흙을 사와야 하는데, 집을 짓기 위해 엄청난 양의 흙을 사온다는 게 누군지 모르는 김선달에게 흙값을 지불하는 것 같아서 실행하기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는, 건축 재료는 집 주위에 있는 흙을 사용하면 된다지만 사람 힘으로 이 많은 흙을 퍼내기는 쉽지 않기에 굴착기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집 짓는 데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최소 5일, 최대 10일까지는 굴착기를 빌리게 됩니다. 굴착기 하루 임대비는 50만 원 안팎이니 임대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흙을 파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어려움이 이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새로운 건축부지의 땅은 어차피 일부분을 깎아내야만 했습니다. 파낸 땅의 흙이 벽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실현시킬 기회가 드디어 온 것입니다. 굴착기는 돈 들여 임대하지 않고 이참에 중고 굴삭기를 구입했습니다. 이후 계속될 건축을 생각하면 우리가 직접 연습해서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좋겠다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에게 굴착기가 필요치 않게 되는 그날 다시 팔기로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짓는 집

흙부대집은 벽체를 쌓으면서 생각이 바뀌면 조절하기 쉽습니다. 창문을 넓히거나 높히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 흙부대집 벽체 쌓기 흙부대집은 벽체를 쌓으면서 생각이 바뀌면 조절하기 쉽습니다. 창문을 넓히거나 높히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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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지름 5미터짜리 원형집 두 동을 흙부대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명이 준비된 흙을 양동이에 담아 나르고, 양파망에 부어 한 단 한 단 쌓아갔습니다. 이웃들과 서울에서 주말마다 친구들이 와서 즐겁게 함께 부대를 쌓았습니다. 사실 흙부대 무게가 제법 나갑니다. 그런데 흙부대 잡는 걸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했기 때문에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더디지만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 싶게 매우 능숙하고 빠르게 진행됩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쯤 일이 끝나버립니다. 벽체를 다 쌓고 모두에게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는 설렘과 성취감을 만끽한 흙부대 쌓기였습니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흙부대집을 지은 과정을 소개하겠습니다.

보통 집을 지을 때 집의 가장 아랫부분 기초공사는 대부분 시멘트를 쓰는데 흙부대 건축은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점이 흙부대 공법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땅과 벽이 흙으로 한 몸 되는 그야말로 '생태건축'인 거죠. 구들방이기 때문에 지면 아래 1미터부터 흙부대를 쌓았습니다. 그렇게 시멘트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죠.

흙부대집으로 지으면 기초공사를 할 때 콘크리트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땅이 얼지 않는 곳까지 파고 그곳부터 흙부대로 벽체를 쌓으면 되니까요.
▲ 흙부대집 바닥 흙부대집으로 지으면 기초공사를 할 때 콘크리트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땅이 얼지 않는 곳까지 파고 그곳부터 흙부대로 벽체를 쌓으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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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구들을 많이 놓아보진 않았지만 언제나 방으로 올라오는 연기가 고민이었습니다. 기존에는 벽 둘레의 적벽돌을 한 겹만 했는데 이번에는 두 겹으로 쌓았습니다. 벽돌 개수가 많이 들긴 하지만 벽돌 두께를 두껍게 하고 벽돌 틈새를 꼼꼼하게 막아주면 벽을 타고 올라오는 연기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흙이 마르면서 수축하는데 그때 생기는 틈은 어쩔 수 없더군요. 별채를 지을 때처럼 나무와 만나는 부분은 없어서 별채보다는 덜했지만 천연재료인 흙만으로 연기 제로에 도전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흙집을 지을 때 구들을 놓는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흙이 마르면서 연기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마감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 흙부대집 구들 놓기 흙집을 지을 때 구들을 놓는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흙이 마르면서 연기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마감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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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결론은 연기를 완전히 제압하기보다는 연기와 슬기롭게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 피우는 초기에 나무에서 연기가 집중적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싹 마른 장작을 사용하면 연기의 양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고, 또 연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환기를 잘 시키면 된다는 생각 쪽으로 구들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보다 더 연기가 적게 나오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앞으로 지은 건물에 적용을 해가야겠죠.

흙부대집은 친구들과 쉽게 지을 수 있습니다. 함께 벽체 미장을 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 흙부대집 흙부대집은 친구들과 쉽게 지을 수 있습니다. 함께 벽체 미장을 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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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닮은 원형 천정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원형 집을 지으면 가운데 기둥은 하늘에 떠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둥근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늘을 닮은 천정입니다.
▲ 흙부대집 원형 천정 원형 집을 지으면 가운데 기둥은 하늘에 떠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둥근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늘을 닮은 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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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천정이라고 외칩니다. 가운데 두꺼운 나무를 중심으로 서까래가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그 자체로 묵상이 가능하답니다. 이번 흙부대집에는 서까래 24개를 걸었습니다. 방에 누워 우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번 쉬었다 가세요.

원자력으로 대표되는 전기에너지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운 장치를 만드는 것도 주된 고민 중 하나입니다.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 사용은 투자 대비 효과가 아직 크지 않습니다. 또 태양광 규모가 커질수록 비인간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림을 하나하나 덜어내 작은 공간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여유로운 삶으로의 전환이 더 근원적인 것 같습니다.

흙부대집에는 태양광을 설치했습니다. 등을 켜고 컴퓨터 1대 정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주전력이 태양광이고, 한국전력에선 오는 전기는 날씨가 좋지 않을 때 쓰는 보조 전력입니다.
▲ 흙부대집 태양광 흙부대집에는 태양광을 설치했습니다. 등을 켜고 컴퓨터 1대 정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주전력이 태양광이고, 한국전력에선 오는 전기는 날씨가 좋지 않을 때 쓰는 보조 전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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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민은 고민이니 해결을 해야 했습니다. 전등과 노트북 1대 사용(수업시간 활용)의 전력량을 계산해서 태양광으로 전력을 자체 수급하게 했습니다. 일반 전구에 비해서 가격은 몇 배가 비싸지만 전구 수명이 30년이고 전력소모량도 적은 LED등으로 달았습니다. 태양이 오랜 기간 없는 장마철도 고려 안 할 수 없기에 일반전기도 연결을 했습니다. 주전력은 태양, 보조전력이 한전이 되는 역전(逆電)의 삶을 살 수 있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지붕은 나무를 제재하고 남은 껍데기인 '피죽'으로 마감했습니다. 이 지붕 마감재는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명이 짧은 편입니다. 처음에는 수명이 긴 것, 되도록 다시는 손이 안가는 마감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소재가 석유화학 제품과 가까운 곳으로 가거나 시멘트 쪽으로 가게 됩니다. 지붕 작업을 하는데 1주일도 걸리지 않는 걸 생각하면 이것도 고민의 문제가 아니더군요. 바꿀 때가 되면 기존 피죽은 다시 자연으로 보내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으면 되는 일이더군요.

흙부대집 지붕 마감은 나무껍질인 피죽으로 했습니다. 10년 정도 지나면 삭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땔감으로 쓰고 다시 옷을 입혀주려고 합니다.
▲ 흙부대집 피죽 흙부대집 지붕 마감은 나무껍질인 피죽으로 했습니다. 10년 정도 지나면 삭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땔감으로 쓰고 다시 옷을 입혀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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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리모델링을 할 때는 '어떤 자재'를 사용할까에 집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태건축을 스스로 정의할 때도 어떤 자재, 어떤 공법으로 건축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고민하고 그 결과들을 지난 서당 건축 때까지 투박하게 적용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흙부대 건축을 하면서는 '어떤 삶'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라는 더 근원적인 성찰을 통해 불편한 삶을 기꺼운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이 생태건축의 첫머리에 들어와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고민들이 더 구체화되어 새롭게 지어질 건물들마다 흔적으로 남기를 기대하며 저는 흙부대 집 마무리하러 나가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집은 2012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짓고 있으며, 현재 마무리 중입니다. 서울 인수동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소속 친구들과 함께 짓고 있습니다.



태그:#흙부대집, #아름다운마을, #원형집, #생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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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살면서,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영월한옥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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