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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진선미 진성준 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장주영 회장, 참여연대 장유식 행정감시센터 소장이 1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개입 근절을 위해 입법청원한 국정원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진선미 진성준 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장주영 회장, 참여연대 장유식 행정감시센터 소장이 1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개입 근절을 위해 입법청원한 국정원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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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괴물 같은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을 박근혜 정부에서 바로 잡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기자회견이 끝날 즈음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행정감시센터 소장)가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14일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가 국회 정론관에서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막기 위한 개정안을 입법청원했다고 밝히는 자리였다. 명칭을 국정원에서 해외정보원으로 바꾸고, 국내정보 수집 권한은 폐지하면서 수사권을 분리·이전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 등이 골자다.

특히 장 변호사는 국정원의 수사권에 주목했다. 그는 "국정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지면서, 당시 나치의 게슈타포(Gestapo)나 구소련의 KGB처럼 수사권을 가진 비밀경찰로 출범해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경쟁력이 있는 비밀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수사권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국가의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입법청원을 소개한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대선기간 벌어진 국정원 직원의 온라인 여론 조작 등 불법 선거운동 사건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민주주의 핵심요체인 선거제도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스스로 '사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박근혜 대통령도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국정원 구조 개편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3월 18~19일 예정된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국내 파트' 폐지한다더니... 국정원 활용 유혹 벗어나지 못한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과 이명박 대통령
 국가정보원과 이명박 대통령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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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국정원이 보여준 불법사찰·선거개입 논란 등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일부 언론이 "국정원 직원 K씨가 정부 전산망에 접속해 이명박 후보의 처남 김재정 씨 등 이 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거래내역을 열람한 혐의를 잡고 국정원이 감찰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후보 측은 "국정원의 불법적 자료열람은 야당후보 죽이기로 불법을 일삼는 국정원 국내파트를 폐지해야 한다"(나경원 대변인)고 발끈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국정원을 국내 정치 정보 수집의 도구로 활용하고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정권을 운용하려는 유혹을 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전 서울시 부시장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하면서 국내 정치 개입 의혹 논란을 예고한 것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지난 2009년 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가 체제 전복세력의 침투 대상이므로 (국정원이) 정치 정보를 수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국정원 역할을 국가안보에서 정권안보로 전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09년 희망제작소 사업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인 김미화씨는 지난해 "국정원 직원이 찾아와 'VIP'(이명박 전 대통령)가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폭로해 연예인 사찰 파문이 일었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여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논란은 절정에 달했다.

사찰을 하다가 들켜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지난 2010년 5월 표현의 자유 문제를 조사하러 한국을 방문한 유엔 보고관을 미행, 사찰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지난 2011년에는 우리나라 무기를 구입하겠다고 방문한 인도네시아 사절단의 호텔방에 잠입한 것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당하기까지 했다.

특히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국정원으로부터 사찰을 당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1년 6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세종시 문제로 파란을 겪은 후 2009년 4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사찰하기 위한 팀이 약 20명 인원으로 국정원 안에 꾸려졌고, 이모 팀장의 지휘 아래 4월부터 7월까지 박 전 대표를 집중 사찰했다"며 '박근혜 사찰팀' 의혹을 폭로한 것이다.

이 의원은 "국정원 직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사를 찾아가 박 전 대표의 신상문제·주변 인물을 조사하고 가까운 친인척을 접촉해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 부산MBC 등 재산관계도 소상히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당시 이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지난 2월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난해 19대 국회의원 선거 전후로 "(정치사찰의) 같은 피해자"라며 "(박 대통령은)지난 정권과 현 정권을 막론하고 정치 사찰과 허위사실 유포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근혜 측근 남재준도 해바라기형 국정원장 될 듯"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사진은 지난 2004년 12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당시 모습.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사진은 지난 2004년 12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당시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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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정권 초기 국정원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국내 정치 개입 논란과 함께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지만 국정원은 그 사실을 52시간이나 지난 뒤 나온 북한의 TV발표를 접하고서야 알았다. 앞서 2011년 5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에는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단독 방중 했다고 밝혀, 세계적인 오보 소동이 일었고, 지난해 12월에는 북한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를 제때 감지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박 대통령의 불행한 개인사 역시 국정원 구조 개편의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에 의해 시해됐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국정원의 정치 개입에 대한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최측근 정치인이나 민간인이 아닌 육군참모총장 출신 남재준 후보자를 국정원장으로 지명한 것을 두고 국내정치 상황 등에 휘둘리지 않고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오히려 남재준 후보자 역시 박 대통령의 특보를 지낸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국정원을 대통령의 직할체제로 운영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남재준 후보자는 지난 2007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당시 국방안보 분야를 조언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캠프 국방안보 특보로 활동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김현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남재준 후보자는 군에서 정보 등을 수집하는 작전통이었기 때문에 국정원의 고유업무를 담당할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그런 사람에게 국정원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김현 의원은 또 "원세훈 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민간인 사찰·국내 정치 개입 논란이 불가피했던 것"이라며 "남 후보자도 박 대통령의 특보를 지낸 측근이라는 점에서 오로지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형·맞춤형 원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불거진 국정원 직원 여론 조작 사건과 관련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일부 혐의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도 그의 국정원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한편 국회 정보위원회는 3월 18∼19일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 민주당은 남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 직원 여론 조작 사건'과 함께 국정원 개혁 문제를 집중해서 검증할 예정이다. 남재준 후보자의 입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 지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박근혜, #국정원, #이명박, #남재준,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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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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