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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요일 오전, 가방 안에 빵과 차를 넉넉히 챙겨 길을 나섭니다. 멀지 않은 바다 세 곳을 차례로 걸어서 만나기 위함입니다. 이기대, 광안리, 오륙도 순입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특히 여름이면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소지만 아직은 이른 봄 찬바람과 붉은 동백꽃만이 일상의 여행자를 반깁니다. 이렇듯 아름다운 대자연을 마음만 내면 볼 수 있으니 '고향 와서 살길 잘했다' 다시금 생각합니다.

부산 용호동 '이기대 수변공원' 전경
 부산 용호동 '이기대 수변공원' 전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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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목적지는 이기대 수변공원입니다. 제가 사는 집 맞은편 '용화사'란 절 간판 보이는 골목길을 지나 약 20분 산길을 가로지르면 공원 입구에 당도합니다. 귀향해서 얼마지 않아 산책 중에 찾은 지름길입니다. 버스로는 두 정거장을 가서 이후로도 제법 가파른 아스팔트길을 이십여 분 가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온 게 2000년 무렵입니다.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의 출입이 통제되다 개방된 지 3년째 되던 해였지요. 아마도 이기대가 본래의 제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지 싶습니다. 그때 꽤나 놀랐던 것이 관광화된 여느 도시의 바다와 달리 야생 그대로의, 240도 시야를 꽉 채우는 그 생명력 넘치는 광활함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천5백만 년 전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된 이기대의 거대 바위
 지금으로부터 약 6천5백만 년 전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된 이기대의 거대 바위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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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40분, 산과 바다가 빚은 기암절경 속을 거닐면 수천만 년 세월의 다채로운 흔적들을 만납니다. 6500만 년 전 대형 초식공룡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화석, 조선시대 왜군을 안고 물에 빠져 죽었다는 두 기녀에 대한 기록(이기대란 이름의 유래가 된), 일제 때 발굴한 구리 광산의 닫힌 갱도, 그리고 남북 분단의 상징인 녹슨 철책. 특히 마지막 그것은 이날따라 죽은 노병의 백골이 다시 꿈틀거리는 상상을 더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춰 바다 속 거대한 바위를 내려다 봅니다. 숱한 생물의 탄생과 종말을 목격했을, 저 자신도 몇 번이고 몸을 바꾸며 업(業)의 고리를 잇는지 푸는지 모를 자연 앞에서 숨막히는 덧없음을 느낍니다. 이 찰나의 삶에서 대체 어떤 의미를 배우고 떠나야 하는지…. 매번 걷다가 돌아보는 이기대 풍경은 유난히 아득합니다.

과거 군부대에서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한 철책. 현재는 그 의미만을 되새기려 부러 일부 남겨두었다.
 과거 군부대에서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한 철책. 현재는 그 의미만을 되새기려 부러 일부 남겨두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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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향한 곳은 광안리 해수욕장입니다. 이기대 산책로가 끝나면 평지에서 우측길로 무조건 바다를 따라 가면 됩니다. 광안대교를 이정표 삼아서요. 이웃하던 산과 멀어진 바다는 금새 모습이 바뀝니다. 사람마을의 일부로써 보다 길든 듯합니다. 집에 매어둔, 본디 야생에서 온 가축을 볼 때와 유사한 기분입니다.

걷기 2시간째, 바다 초입에 왔을 때 다리가 제법 아픕니다. 때마침 구청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무료 대여소가 보입니다. 인근 거주자가 아니라도 신분증만 제시하면 2시간 동안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해안가를 다 돌고 카페에서 차 한잔, 혹은 백사장에서 맥주 두어 캔 들이키기 충분하지요. 저는 바닷가 끝 햇볕 잘 드는 벤치에서 집에서 가져온 빵과 커피를 먹었습니다.

부산 광안동 '광안리 해수욕장'
 부산 광안동 '광안리 해수욕장'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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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지금의 광안리를 좋아하지만 사실 전, 제가 열 살 되기 전 그곳을 훨씬 좋습니다. 그땐 광안대교가 없었고, 백사장이 지금의 네댓 배쯤 더 넓었으며, 으리으리한 현대식 레스토랑과 커피숍은 적었습니다. 촌스럽고 자연스러운 맛이 있었지요. 친척들과 물놀이 왔다가 짐을 몽땅 도난당해 수영복 채로 집에 간 기억이 납니다. 사춘기 때 홀로 와 운 기억도 나고요. 되돌리고 싶은 건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용호동 오륙도 전경. 관광지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부산 용호동 오륙도 전경. 관광지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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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오륙도에 왔습니다. 동선을 최소화하려면 오륙도를 시작으로 이기대, 광안리 또는 그 반대가 적합합니다. 하지만 아침의 이기대, 한낮의 광안리, 저녁 무렵의 오륙도를 좋아하는 역시나 제 개인적 취향에 따라 늘 해당시간대 그 장소를 찾습니다. 광안리에서 오륙도까지는 마을버스로 왔습니다. 고작 반나절 걸었을 뿐인데 체력이 동나서였습니다.

두 달 만에 보는 오륙도가 많이 낯섭니다. 관광지 조성공사가 한창이라 사방에 반듯하게 깎여 붉은 속살을 드러낸 대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언덕 위 '바다 극장'은 여전히 폐쇄 중이고요. 그곳은 제주도 용머리 해안과도 흡사한데 그 위에 예전 군(軍)용 초소로 쓰인 시멘트 설치물이 있습니다.

반 평 남짓한 그곳에 들어가 바다를 향해 앉으면 24시간 살아있는 자연 다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냄새와 촉감, 온기, 모든 것이 100% 리얼이지요. 따뜻하고 향기 좋은 이 계절에 가까운 벗이 찾아오면 꼭 보여주고픈 한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더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쪼록 저 철제 펜스가 걷히는 날, 제가 기억한 풍경들이 많이 남아 있기를요.

지금은 볼 수 없는 100% 리얼 '바다극장'.
 지금은 볼 수 없는 100% 리얼 '바다극장'.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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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그야말로 화창해 이기대 해녀막사도 여기 어시장도 모처럼 문을 열었습니다.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세면 열지 않습니다. 갓 잡아 싱싱한 각종 해산물들이 자판에 널렸습니다. 휴일 맞아 단체여행 온 관광객, 등산객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깔고 막걸리, 소주 곁들여 별미를 즐깁니다. 바닷동네는 뭐니뭐니 해도 이리 북적북적, 왁자지껄해야 제맛입니다.

세월 가고 세상 변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 모습이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선택에 의한 것이면 참말로 좋겠습니다.

오륙도 어시장
 오륙도 어시장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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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돌 프로젝트

열여덟 번째 '소원돌' 주인은 서울 역곡에 사는 이혜인(26) 님입니다. 너무 지쳐 여정을 멈추고 싶은 순간, 바위 틈에서 빨갛게 홀로 핀 동백꽃을 만났습니다. 당신의 소원돌은 저 꽃 아래 놓였습니다.

이혜인 님 '소원돌'
 이혜인 님 '소원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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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중 당신의 '소원돌'을 찾아드립니다.
신청방법 : 오마이뉴스 쪽지, gaegosang@naver.com, 페북 /2012activist 메시지를 통해 당신의 가장 간절한 소원, 사는 곳, 나이를 적어 보내주세요. 소원돌 인증샷을 받으실 분은 연락처 또는 이메일 주소도 함께.

메모

■ 여행 경비

교통비> 광안리→오륙도 8번 마을버스 230원. (교통카드 잔액 부족으로 기사 분께 양해 구함. 어린이 요금 적용해주심. "감사합니다!")

■ 정보

광안리 해수욕장 입구 자전거 무료 대여소
 광안리 해수욕장 입구 자전거 무료 대여소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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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해수욕장 입구 위치. 수영구청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무료 대여소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른다섯 살이던 지난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자 결심, 현재는 고향에서 작은 여행자의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부산게스트하우스, #이기대, #오륙도, #광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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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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