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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8일 서울 은평을 재보선, '왕의 남자' 이재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가 화려하게 복귀했다. 과반이 넘는 58.3%(4만8311표)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단일후보로 나선 장상 민주당 후보는 39.9%(3만3048표)를 얻는데 그쳤다. 이 후보와의 격차는 18.4%p에 달했다. 

참패 앞에 민주당은 고개 숙였다. "단일화가 단순한 덧셈을 넘어선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길 원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전병헌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 "투표일을 임박해서 이룬 단일화의 한계를 느낀다"(우상호 당시 민주당 대변인)는 패인 분석도 곧바로 나왔다.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로 달콤한 승리를 맛 본지 고작 한달여 만에 돌아온 패배였다. 무엇보다 야권 후보들이 하나로 뭉쳤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는 법칙이 확인된 선거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야권연대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무대는 4·24 서울 노원병 재보선이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삼성X파일'에 등장하는 이른 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지는 선거다.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야권연대 시험대로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지난 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판결이다. 8년 전 그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밝히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지난 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판결이다. 8년 전 그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밝히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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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노원병 재보선 야권연대 기상도는 '먹구름'이다. 예상보다 빨랐던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의 복귀 덕이다. 안 전 후보는 송호창 무소속 의원을 통해 자신의 4·24 노원병 재보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장 진보정의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진보정의당은 지난 3일 안 전 후보의 출마에 대해 "정치복귀 첫 번째 무대가 노원병이라는 게 매우 유감스럽다"며 "노원병은 노회찬 의원이 사법부에 의해 짓밟힌 곳이다, 안 전 후보 측의 일방적 출마 선언은 노원 유권자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꼬집었다. 진보정의당은 그로부터 닷새 후인 8일 노 공동대표의 부인 김지선씨를 노원병에 전략공천했다.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복잡한 셈법에 빠졌다. 안 전 후보가 대선 당시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양보한 만큼 후보를 내느냐 마느냐 문제를 놓고도 당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 안 전 후보가 노원병 재보선을 넘어 신당 창당 등을 통해 독자세력화를 본격화할 경우, 우려했던 '안철수발(發) 정계개편'이 막오를 수 있다.

대통령 선거일인 2012년 12월 19일 오후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투표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하여 출국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일인 2012년 12월 19일 오후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투표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하여 출국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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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예측되는 파괴력도 만만찮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4~7일 전국 성인남녀 123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안철수 신당'은 23%의 지지를 얻었다. 반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11%에 불과했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8%p) <조선일보>가 지난 6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실시한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 신당'은 26.3%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10.6%)을 15.7%p 차로 앞섰다(유권자 1000명 대상,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이 때문에 민주당 측은 연일 안 전 후보 측의 야권연대 동참을 촉구하는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신기남 의원은 지난 7일 성명을 내 "안 전 후보가 4월 국회 입성이라는 눈앞의 과제에만 매몰돼 야권 전체에 분열·반목의 앙금을 남기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선 안된다"며 "민주당의 자중지란이 가져온 틈새에 과도한 기대를 거는 근시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패배를 위한 새정치가 아니라 승리를 위한 야권 연합과 단일화가 필요하다"며 "안 전 후보가 어떤 경우에도 분열의 씨앗을 제공하지 말고 통합 또는 연합·연대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노원병 재보선에 후보를 낼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각 선거구에 후보를 적극적으로 출마시키고 전면적으로 대응한다"고 결정했다.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에 동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지난 4일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 "지금은 야권단일화가 되면 국민들이 지지해주고 당선시켜주셨던 2010년과 완전히 다르다"며 "야권 단일후보가 만들어졌지만 이기지 못한 문제가 2012년 총·대선에서 되풀이 된 것이다, 평가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야권연대에 대해 '선(先)평가 후(後)논의'라는 소극적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허니문 재보선'인데 3년 전처럼 후보 난립하면 필패

2010년 7.28 재·보궐선거 서울 은평을 지역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이재오 당선자가 2010년 7월 28일 밤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에 위치한 선거사무실 앞에서 당선소감을 발표한 뒤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2010년 7.28 재·보궐선거 서울 은평을 지역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이재오 당선자가 2010년 7월 28일 밤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에 위치한 선거사무실 앞에서 당선소감을 발표한 뒤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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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야권 후보 난립'이란 구도가 사실상 형성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3년 전 7·28 은평을 재보선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문국현 당시 창조한국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의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진 선거였다.

장상 민주당 최고위원·이상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에 창조한국당은 공성경 당시 대표를 후보로 내면서 "다른 야당이 은평을에 후보를 내는 것은 문 대표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등 야3당의 단일화 협상도 지지부진했다. 공식적인 단일화 협상 기구가 선거 열흘 전에야 꾸려졌고 후보 단일화 선언은 선거 이틀 전에 이뤄졌다. 당시 민주당 측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이재오 후보와) 5%p 이내 접전으로 나온다, 투표율만 높이면 된다"고 자신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후보 난립 상황은 똑같은데 선거 분위기가 3년 전과 사뭇 다르다는 점도 야권에게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당시 7·28 재보선이 6·2 지방선거에 이어 'MB심판론'이 여전히 존재했던 것에 반해, 4·24 재보선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처음 치러지는 '허니문 재보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야권이 선거에 임박해 단일화를 성사시킨 것에 반해, 이재오 후보에게 은평을은 20년 정치지역 기반이었다는 점도 패인의 원인이기는 했다. 현재 새누리당 노원병 예비후보로 등록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나 계속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홍정욱 전 의원 등에 비하면 잔뼈가 굵은 '거물 후보'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재오 당시 후보 역시 선거 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절대 한강을 건너오지 마라"며 'MB심판론'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또 선거 직전까지 유세차량을 타지 않는 등 '조용한 선거전'을 콘셉트로 잡았다. 그만큼 당시 민심이 여권에 좋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상황은 야권 모두 인식하고 있다. 안 전 후보 대선캠프 출신의 정기남 전 비서실장도 지난 7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노원병 출마는) 선거의 유불리라는 정치적 셈법에서 절대 출발하지 않았다"며 "박근혜 정부 초기에 벌어지는 '허니문' 재보선이고, 혈혈단신 무소속 후보인데 당선을 장담하는 것은 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야권이 후보 단일화를 성사하느냐로 쏠린다. 서울 노원병에서 다자 구도로 선거를 치를 경우, 야권 후보는 필패하기 때문이다. 진보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노 대표의 부인인) 김지선씨가 완주할 경우 15% 정도 득표할 것으로 본다, 민주당 후보 역시 완주할 경우 10% 정도 득표한다"며 "이렇게 가면 안 전 후보가 나오더라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회찬 대표는 18대 총선 때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해 40.1%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홍정욱 당시 한나라당 후보(43.1%)에게 3%p 차로 패배했다. 김성환 당시 민주당 후보는 16.3%를 얻었다. 노 대표는 4년 뒤 사실상 양자구도로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57.2%를 얻어 허준영 당시 새누리당 후보(39.6%)를 꺾고 국회로 복귀했다.

이제 4·24 재보선까지 남은 시간은 47일밖에 되지 않는다.


태그:#안철수, #노원병, #노회찬 , #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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