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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임기 5년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로 귀가하며 환영나온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임기 5년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로 귀가하며 환영나온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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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세계화를 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이들 밥그릇 빼앗아 만든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지난 2011년 3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김아무개(42)씨의 말입니다. 당시 뉴욕에서 한식업계에 종사하고 있던 김씨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한식 세계화 사업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한식세계화를 하겠다고 국가 예산을 많이 받았으면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앞서 2010년 말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2011년도 예산안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날치기 처리했습니다. 한식재단이 한식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뉴욕 플래그십(flagship·브랜드 홍보를 위해 설치하는 상징적인 매장) 한식당' 예산 50억 원 등 242억5000만 원도 함께 처리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죠. '뉴욕 한식당'을 두고 '날치기 식당'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반면 '한식예산' 등에 밀려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비 218억 원과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비 380억 원 등이 전액 삭감됐습니다. 한식재단은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던 '한식세계화추진단'이 모태가 돼서 만든 조직입니다. 그래서 한식세계화 사업은 '영부인 프로젝트'로 불렸죠. 정치권에서는 "영부인 홍보용 사업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한식세계화 지원 사업에 대한 감사요구안'이 통과됐습니다.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개설비 50억 원을 당초 계획대로 사용하지 않고 49억6000만 원을 다른 용도로 변경해 사용한 의혹 등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2년여 전 50억 원의 예산을 날치기 처리했던 새누리당 의원들 상당수도 이번 감사요구안에는 찬성표를 던졌네요.

이날 국회에서는 '4대강 수질 개선을 위한 총인처리시설 입찰 관련 감사요구안'도 함께 처리됐습니다. 부창부수라고 해야 하나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이틀 만에 사실상 이 전 대통령 부부가 추진한 핵심 사업들이 모두 감사를 받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영부인 한식당' 무산되자,  예산 50억 원 이틀 만에 졸속 집행 

국회로부터 감사 요구를 받은 감사원은 3개월 이내에 감사를 마무리하고 국회에 결과를 보고해야 합니다. 감사 대상은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식재단 및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입니다. 한식세계화 사업의 감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1. 한식세계화 지원 사업예산의 연례적 집행 부진, 예산 운용 및 사업 효과성에 대한 감사. 
2. 2011년 한식재단의 '뉴욕 플래그쉽 한식당' 개설비 50억 원이 당초 예산내역 대로 사용되지 못한 사유와 이중 49억 6000만 원을 연도 말에 다른 용도로 위법·부당 변경 사용한 행위의 타당성 및 적법성.

'날치기 식당', '영부인 식당'이란 비난 속에서 추진됐던 뉴욕 한식당 설립이 무산됐지만, 예산을 관장하던 농식품부는 50억 원에 가까운 관련 예산을 '불용(不用) 예산'으로 처리해 국고에 반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산집행 종료일 직전 서둘러서 엉뚱한 곳에 무더기로 이 돈을 모두 써버린 겁니다. 그것도 이틀 만에 말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연말에 남는 예산을 보도블록 교체에 쓰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식세계화 사업에서 벌어진 셈이죠.

뉴욕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가까운 이 거리에는 금강산, 감미옥, 강서회관, 한강, 뉴욕곰탕 등 20여개의 한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2010년 말 국회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된 새해 예산안에 정부가 뉴욕에 고급 한식당을 설립하기 위한 예산 50억 원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가까운 이 거리에는 금강산, 감미옥, 강서회관, 한강, 뉴욕곰탕 등 20여개의 한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2010년 말 국회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된 새해 예산안에 정부가 뉴욕에 고급 한식당을 설립하기 위한 예산 50억 원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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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입니다. 김재원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예산집행 종료일을 이틀 앞둔 2011년 12월 29일 총액 40억 원에 연구 용역 28건을 무더기 발주하고, 다음 날인 12월 30일엔 한식재단 홈페이지(www.hansik.org)를 개편하는 계약을 9억6000만 원에 체결했습니다.

당시 김재원 의원 측은 "사업 무산 후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돈 쓸 곳을 찾아내 연말에 한꺼번에 해결한 것"이라며 "예산을 반납하지 않기 위해 해가 넘어가기 전 급하게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농식품부측은 "50억 원의 예산은 꼭 한식당 설립이 아니더라도 한식세계화를 위해 쓰도록 추가 배정받은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홈페이지 개편의 경우 기존에 서버 용량에 한계가 많아 고화질 동영상 등 홍보 자료를 올리지 못했고, 접속자가 많으면 수시로 다운이 됐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10억 원을 들여 서버를 2대에서 5대로 늘리는 등의 작업을 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한식재단 홈페이지 하루 방문자 수는 당시 2600명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3000명도 채 안 되는 방문자에게 한식을 홍보를 하기 위해 10억 원을 써놓고, 예산 남용이 아니라는 정부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농식품부가 뉴욕 한식당 설립비 50억 원을 불용처리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 년도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산을 쓰지 않고 불용처리 하면 다음 해에 관련 예산이 삭감되기 때문에 편법을 동원한 것이죠. 지방자치단체가 연말에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집어엎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실제 농식품부는 2012년도 한식세계화 사업 추진비로 219억 원을 다시 배정받았습니다. 앞서 2009년도 89억 원, 2010년 195억 원, 2011년 269억 등 지난 4년간 한식세계화 사업에 들어간 예산이 총 769억 원에 이릅니다.

그러나 '영부인의 간판사업'으로 시작된 한식세계화 사업은 시작만 거창했을 뿐 인프라 구축처럼 장기 대책이 아닌 홍보나 이벤트성 사업에만 집중하면서 무리수가 이어졌고, 실패한 사업으로 전락했습니다.

김재원 의원은 "한식세계화 실무를 주도한 한식재단의 2010~2011년도 사업비 중 홍보예산 비율이 48.3%나 됐다"고 지적했는데요. 비효율적인 사업 집행 탓에 이명박 정부는 4년간 769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허비했고, 결국 감사원의 감사를 자초했다는 지적입니다.

"마구잡이로 밀어붙여 예산만 따 놓고 결국..."

문제는 '김윤옥 한식당'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의 한식세계화 사업의 실패가 사업 초기부터 충분히 예상됐다는 것입니다.

2010년 김윤옥씨 주도로 출범한 한식재단이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설립 계획을 세우자, 농식품부가 총대를 멨습니다. 정부가 민간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뉴욕에 고급 한식당을 개업하겠다며 50억 원의 예산 책정을 요구한 겁니다. 결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은 물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강력하게 반대해 사실상 백지화됐습니다. 그러나 2011년 예산안이 날치기 처리될 때 슬쩍 얹혀서 50억 원의 뉴욕 한식당 예산이 함께 처리된 겁니다.

50억 원의 예산은 선정된 민간사업자가 뉴욕에 한식당을 만들면 여기에 정부의 지분을 투자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이후 한식재단은 사업자를 물색했지만 불투명한 수익 전망 등을 이유로 응찰자가 없었습니다. 뉴욕 한식당을 위한 국내 사업설명회에는 2개 업체, 뉴욕 사업설명회에는 6개 업체만 형식적으로 참석했고, 사업공모에는 아예 아무도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식당 공간을 임대하지 않고 매입해야 하는데,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에서는 200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제대로 된 사업 타당성 조사나 관계 전문가 의견수렴도 없이 졸속으로 뉴욕 한식당 설립을 추진했다는 지적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결국 뉴욕 한식당 사업은 2011년 10월 13일 최종 무산됐습니다.

당시 정범구 의원은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을 상대로 한 국회 질의에서 "처음부터 많은 위원(의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안 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을 갖고 있었던 사업"이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는 또 "농림부가 마구잡이로 밀어붙여서 예산만 따 놓고 결국 아무것도 안 됐다"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업을 벌여 놨다가 못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2010년 11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8층 한식당 '무궁화' 오프닝 행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의 환영사에 박수로 화답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이참 한국관광공사사장, 피에르 가니에르 스타셰프, 양일선 한식세계화추진단장, 김 여사, 정운천 한식재단이사장.
▲ G20 '한식 세계화' 한식당 오픈식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2010년 11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8층 한식당 '무궁화' 오프닝 행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의 환영사에 박수로 화답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이참 한국관광공사사장, 피에르 가니에르 스타셰프, 양일선 한식세계화추진단장, 김 여사, 정운천 한식재단이사장.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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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자는 뉴욕 현지에서 '김윤옥 한식당'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하여 취재했었는데요. 그때 만났던 현지 한식업계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한 한식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한식세계화를 하겠다는 영부인의 말 한마디에 충성 어린 공무원들이 예산을 무조건 받아놓고 나니 (식당) 매입도 안 되고, (예산) 전용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며 "한심하다 못해 우습다"고 꼬집었습니다.

맨해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아무개(39)씨도 "한국 정부가 정말 한식세계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공무원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자기 밥줄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 같다"고 지적했고요.

이렇게 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하다 실패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1년 7월경 기자와 전화통화를 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플래그십 한식당 사업이 예정대로 되지 않을 경우 예산을 전용할 것인지, 쓰지 않고 불용처리할 것인지 논의 중이다. 워낙 '플래그십 한식당'이 외부로 많이 알려진 상황이라, 전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50억 원의 예산을 쓰지 않고 불용 처리하는 쪽으로 무게를 실었던 것이죠. 그래도 이 공무원은 양심적이었던 셈입니다. 이 공무원의 말과 달리, 농식품부는 차년도 예산확보를 위해 국민의 혈세 50억 원을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서둘러서 낭비하고 말았습니다. 3개월 안에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부인 김윤옥씨와 함께 청와대를 떠나 사저로 돌아갔습니다. 국민의 피와 땀으로 지급된, 결식아동들의 방학 급식비까지 삭감해가면서 가져간 50억 원의 책임은 이제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태그:#김윤옥 한식당, #이명박 전 대통령,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한식세계화, #영부인 한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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