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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인데도 오토캠핑을 즐기는 캠핑족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 도림사 오토캠핑리조트에 형성된 텐트촌 겨울철인데도 오토캠핑을 즐기는 캠핑족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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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전남 곡성군 관내 도림사 오토캠핑리조트와 압록유원지 오토캠핑장, 죽곡 카누캠핑장 등 세 군데에서 '청정수도 곡성 백두대간 동계캠핑 팸투어' 행사가 치러졌다. 1월 25일부터 1월 27일에 가진 1차 행사에 이어 두 번째 행사이다.

얼마 전에 행사소식을 접하고 그동안 부랴부랴 겨울캠핑에 필요한 텐트며 침낭, 온열기 등 기본장비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젊은 친구들도 쉬이 결행하기가 어려운 겨울캠핑을 50이 넘어 시작한다고 하니 아내가 못마땅해 했지만 나이 들어서도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다.

23일 주말 아침 좋은 사이트를 확보하기 위해 일찍 짐을 꾸려 아내와 함께 도림사 오토캠핑리조트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공연장을 중심으로 안쪽지역은 이미 캠프시설들이 장악하고 있고 변두리만 빈 사이트가 남아 있다. 그곳마저 놓칠세라 얼른 짐을 풀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구입해서 처음 설치하는 것이라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어렵지 않게 설치할 수 있었다.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가 지나서인지 텐트촌에 반사되는 겨울 볕이 따사롭다. 대충 정리하고 곡성읍내 주말장터에 들르니 말 그대로 시골장터답게 왁자한 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할머니들이 내미는 싱싱한 푸성귀에서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시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늦은 점심이라 시장하던 차에 야외에서 손수 준비한 푸성귀 된장국과 잡곡밥, 그리고 삼겹살이 꿀맛이다. 어디를 가나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순 없다. 텐트 사이를 헤집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싣고 오는 산들바람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밤이 깊은 캠핑장에 흐린 가로등이 초병처럼 지키고 있다.
▲ 도림사 오토캠핑리조트의 밤풍경 밤이 깊은 캠핑장에 흐린 가로등이 초병처럼 지키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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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캠핑장 여기저기를 산책했다. 돔형, 캐빈형, 티피형, 리빙쉘, 루프식 등 사람들의 개성만큼이나 각양각색인 텐트들이 캠핑장에 빼곡히 들어서있다. 경륜을 갖춘 마니아들의 고급스럽고 다양한 장비에 기가 죽을 지경이다.

한쪽에는 곡성군에서 설치한 캬라반과 여행객들이 끌고 온 캠핑카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1차 행사 때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캠핑동호회에서 회원 177팀, 총 742명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날씨도 풀리고 정월대보름이 겹쳐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어 훨씬 많은 회원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에나 즐기던 캠핑이 이렇게 대중화되어 한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여가문화가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도시인들이 가족단위로 나와 주말을 자연 속에서 보내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사람들은 이렇게 철따라 자기들만의 영역을 넓히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지치지 않게 에너지를 충전해 살아가는데, 나는 그동안 세월을 탓하며 늘어가는 주름과 흰 머리카락만 세고 있었다.

땅거미가 내리고 일찍 찾아든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텐트마다 전등을 하나씩 내걸거나 모닥불을 피우며 외로움을 쫏고 있다. 어린시절 고향 뒷동산에서 보았던 보름달이 말갛게 투명한 얼굴로 텐트촌을 비춘다. 여행객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담을 나누거나 오락을 즐기며 깊어가는 밤을 바디질하고 있다. 멀리서 밤기차 지나가는 소리, 잠들지 못하지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꿈결인 양 아득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한겨울에도 이렇게 모여 외로움을 털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직장생활 속에서 배어든 고독을 어쩌지 못하고 이들은 자연 속으로 나온 것이리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정호승 시

등산객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꼬리표가 바람에 나부끼며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 산악회 꼬리표 등산객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꼬리표가 바람에 나부끼며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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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은 새소리에 잠을 깼다. 서리가 텐트 위로 하얗게 내렸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 여행객들은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준비하거나 해바라기를 즐긴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동악산에 올랐다. 도림사를 지나서 주계곡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길 옆으로 암반계류가 장관이다.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깬 계곡에서는 눈과 얼음이 녹은 물이 바위를 할퀴며 거침 없이 쏟아졌다. 산비탈에는 지난 여름 태풍으로 부러지거나 뽑힌 나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등산객들이 적어 산새들마저 숨을 죽인 산길을 아내와 나는 쉬엄쉬엄 올랐다.

풀숲에 묻힌 등산로는 산객들이 표시해 둔 꼬리표가 길안내를 대신해준다. 어느 산악회의 꼬리표에 적힌 '산은 물을 건너지 않으며,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산을 왜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내려오기 위해서 오른다고 말한다. 산이건 인생살이건 오르기는 쉬우나 내려오는 것이 어렵지 않던가.

동악산 정상을 찍고 죽동리 방면으로 내려오는 3시간여의 짧은 산행코스였지만 동악산의 넓은 품이 우리를 따습게 품어주어 즐거운 산행이었다. 1박 2일간의 첫 겨울캠프에서 얻은 활력이 당분간 내 생활에 여유로움을 줄 것이다.


태그:#겨울캠핑, #도림사, #도림사오토캠핑리조트, #동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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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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