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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설날을 맞아 우리 가족은 1박2일 여수시 화양면 이천에 있는 그린하우스 펜션촌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특별한 설날을 보냈다.
 10일 설날을 맞아 우리 가족은 1박2일 여수시 화양면 이천에 있는 그린하우스 펜션촌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특별한 설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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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난 지 이틀째다. 비록 연휴가 짧아 아쉬웠지만 이번 설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특별한명절이었다.

설날, 콩가루 집안 된 사연

지금까지 명절을 집에서만 보냈던 우리 가족.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안식구들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되었다. 모처럼 명절을 펜션에서 맞이했기 때문이다. 설 전날 형수님은 에피소드까지 생겼단다. 예전 같으면 한참 시댁에 가야 할 시간이지만 시간이 널널해 목욕탕에 들른 형수님은 잘 아는 언니에게 오해도 받았다.

"자기 왜 전 지지러 안 가고 여기서 뭐하고 있어?"
"우리 가족은 이번 명절 펜션에서 보내기로 했어"
"뭐 그런 집안 이 다 있어! 명절날... 완전 콩가루 집안 아니여!"

한 달 전인 1월초 카톡에서 나눴던 가족채팅 대화 내용. 펜션에서 설을 보내자는 안건에 한뿌리인 형제.자매는 집에서 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시집온 형수.제수씨는 밖에서 하자는 의견으로  엇갈렸다.
 한 달 전인 1월초 카톡에서 나눴던 가족채팅 대화 내용. 펜션에서 설을 보내자는 안건에 한뿌리인 형제.자매는 집에서 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시집온 형수.제수씨는 밖에서 하자는 의견으로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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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에서 설을 맞이한 우리 가족은 졸지에 콩가루 집안으로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펜션에서 명절을 보내게 된 이유는 어머님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7남매를 둔 어머니는 명절 때만 되면 늘 마음의 짐을 안고 사는 눈치다. 20여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섬에서 이사를 나온 어머니는 홀로 7남매를 다 시집, 장가 보내고 섬과 어머니 집 그리고 자식 집을 오가며 지내신다.

해마다 큰형님 집에서 명절을 보내온 터라 형수님께 많이 미안하신 눈치가 역력했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형제들은 각자 집에서 돌아가면서 명절을 보내자는 의견도 여러 차례 나왔다. 허나 다짐뿐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은 이번 명절은 꼭 펜션에서 보내자고 총무인 막내에게 털어놨다.

어머니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복딩이(복덩이의 전라도 사투리)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7남매 자식들 시집. 장가 다 보냈지, 손자들도 주렁주렁하지 아직까지 속을 썩이는 자식들이 없지 자네는 진짜 복딩이여"라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우리에게 "자식들 못 가르친 것이 한이다"며 미안해 하신다.

내년이면 칠순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펜션 제안에 재미있는 반응이 나왔다. 주로 같은 뿌리인 형제·자매는 집에서 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시집 온 형수·제수씨는 밖에서 하자는 의견으로 갈렸다. 한 달 전인 1월 초 카톡에서 나눴던 가족채팅 대화 내용이다.

여동생 : 오늘은 뭐야?
막내 : 이번 설은 어머니가 펜션에서 보내자는데 다들 어떠세요?
형제3 : 난 반대다. 이 많은 식구들이 어떻게...
형제4 : 명절은 집에서 보내는 것이 최고징.
여동생 : 펜션은 무리인 듯... 올 설에 내려 가볼라 했드만 무리인가?

"아내 :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형수님 : 펜션 갈 수 있음 가요.
"제수씨 : 저도 펜션 한표용^^~
"형제2 : 그래도 내려와야지. 그럼 전망 좋은 곳 있음 알아봐라.

펜션서 맞은 명절... "설날 아닌 여행 온 기분"

새해 떡국과 함께 펜션에서 먹은 굴죽이 별미다
 새해 떡국과 함께 펜션에서 먹은 굴죽이 별미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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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는 큰형님은 채팅에서 빠졌지만 가족들의 찬반 의견은 분분했다. 처음에는 냉기마저 감돌았지만 이내 가족들은 긴 시간 동안 진진한 대화를 나눴다. 가족 간에 서운한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국 이번 명절은 어머니 뜻대로 하자며 펜션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설날을 맞아 1박2일 가족 여행이 시작되었다. 10일 오전 여수시 화양면 이천에 있는 그린하우스 펜션촌에 집안 식구들이 모였다. 펜션 너머로 바다 위에는 2개의 무인도가 솟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장관이다. 밖으로 나오니 사사로운 생각들은 삭 가신 듯한 느낌이다. 왠지 설날이 아닌 여행 온 기분이다.

펜션에 도착해 먹은 첫 음식은 굴구이다. 막내는 싱싱한 돌산 굴을 준비했다. 형님은 굴을 씻고 여동생과 막내는 굴죽을 쑤기 위해 생굴을 깠다. 굴이 참 여물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큰형님은 독감에 걸려 저녁식사 후 곧바로 집으로 갔다. 형수님은 조카 수술로 인해 명절을 병원에서 보냈다. 또 파키스탄에서 선교중인 여동생은 카톡 동영상으로 대신 새해 인사를 보내왔다.

설날 눈썰매장을 가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손주들과 함께 즐겁게 눈썰매를 타신 어머니의 모습
 손주들과 함께 즐겁게 눈썰매를 타신 어머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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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가족들과 함께 눈썰매장을 갔다. 우리가 찾은 곳은 여수의 유일한 눈썰매장인 에코힐즈다. 리프트가 없어 튜브를 끌고 올라가는 불편함이 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춥다며 썰매장에 안 가겠다던 어머니는 연신 함박웃음이다. 나이를 잊고 손자들과 어울려 눈썰매를 타시는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양이 아름다운 펜션촌에 저녁이 찾아왔다. 저녁이 되자 숯불구이 파티가 벌어졌다.

"돈 많이 벌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

가족들은 개콘의 인기 유행어를 내뱉으며 정초부터 기분 좋게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키조개와 함께 구워먹는 숯불구이 맛이 그만이다. 밖에 나오니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형수님, 제수씨 등 여성들이 더 편하다. 명절날 집에선 술상을 차려야 하지만 밖에 나오니 남자들이 직접 해야 한다.

밖에서는 원래 여자들이 대접 받아야 한단다. 어머니는 또 집에서 안 보내니 설날 뒤 자식들이 떠나고 뒷 정리할 것이 없어 좋다고 하신다. 특히 우리 가족 주부들은 올 설에는 '명절증후군'은 없을 것 같다. 이내 가족회의가 열렸다. 올해는 시골집을 펜션으로 지어 앞으로는 명절을 섬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런 저런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다보니 밤이 깊어간다.

손주들에게 주려고 준비하신 어머니의 세뱃돈.
 손주들에게 주려고 준비하신 어머니의 세뱃돈.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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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이 밝았다. 이제 세배시간이다. 7남매를 둔 어머니는 손자만 20명이다. 그래서 설날이면 손주들에게 나가는 용돈도 장난이 아니다. 어머니께서는 새해 아침 손자와 자식들에게 복(福)돈을 봉투에 담아 챙겨 주신다. 자식과 손주에게 세배를 받으시는 어머니, 용돈을 받는 손주들 얼굴 가득 행복이 묻어난다. 이제 설은 지났지만 지금도 이어지는 가족들의 세배 소리가 귓가에 아련하다.

"어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그린하우스 펜선에서 1박2일을 보낸후 가족과 함께 한컷
 그린하우스 펜선에서 1박2일을 보낸후 가족과 함께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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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설날, #가족 , #명절증후군, #그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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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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