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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의 제1지류이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인 내성천. 영주댐 건설을 위한 준설작업이 한창이다.
 낙동강의 제1지류이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인 내성천. 영주댐 건설을 위한 준설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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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12년 7월부터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변 '텐트'에서 생활하는 지율 스님.
 영주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12년 7월부터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변 '텐트'에서 생활하는 지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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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다. 내성천 모래 위에서 '텐트'를 바라보던 지율(知律) 스님은 "우리집 참 예쁘네"라 말했다.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강둑. 지율 스님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때는 2012년 7월부터다. 영주댐 건설공사로 수몰 위기에 놓인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2011년부터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마을의 한 빈집에 살다가 강둑으로 옮겼다. 여름부터 살기 시작했는데 가을과 겨울을 나고 지금은 봄을 기다리고 있다.

내성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이다. 지율 스님은 낙동강의 젖줄인 내성천이 댐 건설로 변화돼 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지난 1월말 홈페이지(초록의 공명)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눈으로 뒤덮인 텐트였다. 기자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무너지지나 않았을까, 밤새 눈을 쓸어내리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걱정하면서도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보지 못했다. 설날(2월 10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경남 김해에서 영주까지 달렸다. 점심 무렵에야 도착했다. 지율 스님이 마을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마을에는 빈집이 더러 보였다. 조상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오던 사람들이 수몰 대상지가 되면서 떠난 것이다. 논밭에는 지난해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흔적이 보였다. 대신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산허리까지 깎아 길을 내고 강모래를 파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빈집 빌려준 주인들 수공 압력 때문에 힘들어해" 

설날 찾아온 기자들을 위해 지율스님이 차 끓일 준비를 하고 있다.
 설날 찾아온 기자들을 위해 지율스님이 차 끓일 준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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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둑에 텐트가 보였다. '지퍼'로 된 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집 주인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침대 모양의 온돌 바닥이 있고, 그 위에 이불이 깔려 있다. 어디서 주워 온 건지 아니면 누가 갖다 준 건지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고, 가장자리에는 여러 물품이 놓여 있다. 한 켠에는 촛불도 켜놓았다. "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라고 쓴 옷도 걸려 있다.

"천막에는 언제부터 계셨는지"라고 묻자 지율 스님은 "'천막'이란 말은 너무 투쟁적"이라는 반응부터 보였다.

"갈 데가 없어 왔다. 작년 7월부터다. 마을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였다. 2009년 봄부터 낙동강 답사를 했고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에 대해 2011년부터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다가 겨울이 왔을 때 상주에서 1년 정도 지냈다. 작년 여름 장마가 오기 전 둑에 텐트를 쳤다."

"상주도 그랬고, 이 마을에서도 그랬다. 빈집을 빌려준 주인이 힘들어 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수공(수자원공사)이 집주인한테 직접 내보내라고 압력을 가했다. 집주인이 직접 이야기를 하더라. 결국 갈 데가 없어 여기에 왔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더 걱정한다. 태풍과 폭설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더 걱정한다."

지율 스님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수몰될 내성천에서는 모래를 파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율 스님은 "덤프트럭 기사들이 한번이라도 더 퍼다 나르기 위해 새벽 일찍 와서 줄을 서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그만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분들 덕분에 여기 머무를 수 있게 됐다. 마실 물이 없으니까 갖다 주는 사람, 전기가 안 들어온다니까 발전기를 설치해 주는 사람, 나무를 해주는 사람도 있다. 도자기 굽는 사람이 흙을 가져와 구들방처럼 만들어 주었다. 또 환풍이 잘되도록 텐트 지붕을 뚫어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바뀌어 가는 내성천 영상에 담아... 조만간 다큐멘터리 발표

준설작업으로 상처 투성이가 된 내성천을 둘러보며 촬영중인 지율 스님.
 준설작업으로 상처 투성이가 된 내성천을 둘러보며 촬영중인 지율 스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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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 "지금 내성천은 피부 찰과상 정도다. 강은 복원될 수 있다."
 지율 스님 "지금 내성천은 피부 찰과상 정도다. 강은 복원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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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내성천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을 찍거나 캠코더로 영상을 담는다. 지율 스님은 "내성천 공사가 벌어지기 전부터 사진을 찍어 놓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서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다큐멘터리 영상'을 발표할 예정이다.

"제일 아쉬운 건 변화다. 변화된 강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올 변화도 예상할 수 있다. 거칠고 황량하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진행하는 개발시스템을 건강하고 자연과 공존하면서 교육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같은 세대를 살았으니까 그 책임의 몫이 저한테도 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특히 사려 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지금은 작은 것이지만, 그런 목소리가 울려 나오는 곳에 제가 있고, 그 울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에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끝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내성천 파괴가 현재진행형이지만 지율 스님은 '그래도 희망'을 강조했다.

"여기 와서 보는 사람들은 자연파괴가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름다움도 보인다. 망가진 건 산 언덕밖에 없다. 새 길을 내는 공사를 하는데 산 표피만 거둬낸 것이다. 들도 산도 그대로 있다. 우리는 한 부분이 망가진 것을 다 망가진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포기가 빠르다. 지금 영주댐 공정률이 많이 됐다고 하지만 물이 차기 전에는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지금 '그대로 다 살아 있네'라고 보고 같이했으면 한다. 그런 차원에서 아이들과 답사도 다니고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지율 스님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세계습지의 날인 지난 2일 내성천 발원지인 '생달샘'에서 '내성천 습지와 새들의 친구' 발족식을 했다. 내성천을 보전·복원하기 위한 간절한 발원을 담은 것이다. 지율 스님은 지난 1월부터 아이들과 함께 내성천 관찰을 위한 '강 길 순례'에 나서기도 했다.

"조그마한 상처에 피가 나면 다쳤다고 하는 심리와 마찬가지다. 지금 내성천은 피부 찰과상 정도다. 강은 복원될 수 있다. 이곳 주변 논에는 작년부터 농사를 짓지 않았다. 수몰 대상지기 때문이다. 논에 농약을 치지 않으니까 습지가 된 것이다. 새들이 날아오고 고라니와 노루가 온다. 반딧불이도 봤다. 발상의 전환이다."

지율 스님은 "이곳 사람들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 "그러다가 제가 계속해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자료집을 만들어 내니까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50쪽 분량의 <내성천 강 모래 길>이라는 책과 <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는 홍보물을 만들었다.

지율 스님은 2009년 4월부터 낙동강 답사를 시작했다. 4대강사업으로 변하는 낙동강의 모습을 직접 걸으면서 기록한 것이다. 그는 "4대강사업으로 인한 낙동강 주변의 사막화"를 걱정했다. 준설로 강바닥이 낮아지면 지천을 비롯한 주변의 물이 큰 강으로 쏠리면서 주변 물은 모자라게 된다는 것.

"천성산 소송 왜 하느냐고 묻던데..."

지율 스님 "다른 사람들은 왜 소송하느냐고 묻는다.… 할 수 없어 법원까지 간 것이다."
 지율 스님 "다른 사람들은 왜 소송하느냐고 묻는다.… 할 수 없어 법원까지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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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터널과 관련한 소송 이야기를 꺼냈다. 일부 언론과 4대강사업을 추진한 이명박정부 관계자들은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 및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일명 도롱뇽소송) 등과 관련해 '도롱뇽소송 = 2조 5000억 손실'이라고 보도하거나 주장했다.

지율 스님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변호사 없이 진행한 '나홀로 소송'에서 2009년 승소했다. '도롱뇽소송=2조5000억 손실'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론·정정보도를 했음에도 <조선일보>는 천성산터널과 관련해 계속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9월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 도롱뇽 탓에 늦춘 천성산 터널…6조 원 넘는 손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사회·경제적 손실이 2조 5000억 원"이라 보도했다. 이밖에도 지율 스님은 지난해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최근 법정에서 조정 합의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소송하느냐고 묻는다. 처음부터 한 게 아니다. 조선일보와 거기에 글을 쓴 사람한테 편지와 자료를 보내서 잘못된 것이라고 알렸다. 그 뒤 한 교수는 '잘못됐다'며 사과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는데, <조선>은 네 번이나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할 수 없어 법원까지 간 것이다.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 언론사가 와서 인터뷰하자고 하더라. 그런데 하지 않았다. 같이 싸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터뷰하려면 소송에서 진 사람한테 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조선>과 <동아>는 법정판결에 따라 반론보도도 실었는데 또 잘못된 보도를 했다. 한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다. 그들은 필요하다고 하면 만들어서라도 쓴다. 최근에 <동아>와 법정에서 조정합의했다. 결론적으로 이겼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지율 스님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을 상대로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지율 스님은 문 의원이 낸 책 <운명>에서 천성산터널과 관련해 잘못 기술된 부분이 있다고 보고 관련 부분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 소송은 아직 재판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도 그랬고, 법정에 서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갈 때도 막막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전에 싸웠던 변호사를 또 만나기도 한다. 상황 반복이라 힘들다. 판사는 구체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저는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 터널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심정이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했는데, 알고도 또 들어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힘들다. 자료를 다시 찾고,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료를 다시 들춰 보아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한다."

"소중하다는 생각하지 못한다면 싸움하지 못해"

지율 스님한테 힘들게 싸우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과 한진중공업 노동자, 쌍용자동차 노동자,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설날 덕담'을 부탁했다. 지율 스님도 힘들게 살지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했더니 '사랑'을 강조했다.

"천성산(도롱뇽) 소송 끝나고 나서 느꼈다. 패소했지만 아픈 만큼 소중했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소중한 것만큼 움직이는 것이다.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싸움을 하지 못한다. 연대하는 것도 내가 그것이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기에, 그 아픔 속에 들어간 것들을 이해해야 한다.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신데, 그 할머니도 누우면 저를 걱정하신다고 했다. 저는 그 할머니를 보며 명절이 다가오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사람은 다 이해할 것이다."

지율스님은 이어 '언어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얼마 전 '내성천 습지와 새들의 친구' 행사를 하는데, 현수막 내용에 대해 고민했다. '자연과 우정을 회복하기 위한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썼다. 그런 방식으로 언어 순화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언어 폭력성에 길들여져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언어를 더 거칠게 쓴다. 진보나 사회변혁을 해나가려는 사람들이 더 거친 언어를 쓰는 것이다. 자기 식구들이 잘못하면 더 잘 보이듯이, 우리쪽 사람들이 그런 언어를 쓰면 더 화가 난다. 그런 지적을 하면 우익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와서 내성천을 걷기도 했고,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도 다녀갔다. 그들이 내성천에 와서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아픔이 아픔한테 말을 걸고 위로를 하는 것 같았다. 노동자 죽음은 마음이 아프다. 사회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만약에 어떤 일을 하게 되면 피해나 파괴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해를 막기 위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인데, 그런 저항조차 보이지 않거나 못하게 한다면 사회가 무섭지 않나."

지율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텐트 안에서 떡국도 먹었다. '지율 스님의 집'을 나와 내성천 모래 위를 걸었다. 파냈던 모래가 다시 퇴적되고 있었는데 단단하지 않아 발이 쑥 빠지기도 했다.

지율 스님은 모래와 자갈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줍고 있었다. 도자기 파편들이었다. 물에 휩쓸려 굴러 내려오면서 무뎌진 파편들이었다. 텐트 안쪽 가장자리에는 도자기 파편들을 진열해 놓았는데 지율 스님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것이 사람들이 강과 함께 산다는 증거다."

내성천 물에 쓸려 내려온 도자기 파편들.
 내성천 물에 쓸려 내려온 도자기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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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과 함께 내성천 모래를 걷고 있던 윤성효 기자가 갑자기 모래속으로 쑥 빠져버렸다. 오랫동안 다져진 모래밭과 달리 준설작업 후 다시 쌓은 모래밭은 사람의 몸무게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지율 스님과 함께 내성천 모래를 걷고 있던 윤성효 기자가 갑자기 모래속으로 쑥 빠져버렸다. 오랫동안 다져진 모래밭과 달리 준설작업 후 다시 쌓은 모래밭은 사람의 몸무게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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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모래밭에 꽂혀 있는 공사장 붉은 깃발.
 내성천 모래밭에 꽂혀 있는 공사장 붉은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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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율 스님, #내성천, #도롱뇽소송, #낙동강, #4대강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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