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정글의법칙 IN 뉴질랜드>팀의 김병만이 진정성 논란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배우 박보영.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정글의법칙 IN 뉴질랜드>팀의 김병만이 진정성 논란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배우 박보영. ⓒ 이정민


'절대 시청자를 놀라게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해프닝이라 여겼던 한 연예기획사 대표의 필화사건이 프로그램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작 논란이 될 줄을, 제작진을 비롯한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라 불리는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화면 속 모습이 얼마나 진짜 같은지에 달려 있다. 동시에, 한 번 그 진정성을 의심받으면 프로그램 전체의 정체성까지 의심받게 된다. SBS <정글의 법칙>이 바로 그런 경우다. '예능과 교양의 만남'이라며 첫 방송 당시 화제몰이를 했던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을 필두로 한 병만족의 생 고생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호평 받았다. 그러나 지금 <정글의 법칙>의 발목을 잡는 것은 그 '생생함'이 되고 말았다.

알맹이는 있지만, '과대 포장'이 문제였다

<정글의 법칙>이 아무리 리얼하다고 해도, 결국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의 설정과 연출을 가미한다는 것은 <정글의 법칙>의 태생적 한계다. 이를 두고 섣불리 이의를 제기할 이는 별로 없다. 병만족이 몇 곳의 생존지를 돌아다니며 '재미'를 보여주려면, 이동 중 좀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받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7월 방송된 SBS <정글의 법칙> 바누아투 편의 한 장면

지난 7월 방송된 SBS <정글의 법칙> 바누아투 편의 한 장면 ⓒ SBS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제작진의 말 역시 설득력이 있다. 예능 하나 찍자고 멀쩡한 사람들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분명 출연진은 최소한의 안전과 생존이 보장된 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고생스러운 생존 체험을 했을 것이다. 박정철도 말했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어딜 가서 이런 걸 하겠다'는 포맷은 있지만, 제작진이 병만족에게 먹이를 잡아서 입에 넣어주지는 않는다"고.

그러나 문제는 '출연진이 겪은 최대한의 생존 체험'이라는 알맹이를 포장한 제작진에 있다. '최초' '돌발 상황' '긴급 상황' 이라는 수식어가 프로그램 속에 종종 등장하면서 시청자는 이를 '각본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환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일례로 바누아투 편에서 "마을이 생긴 이래 외부인이 처음으로 왔다"며 감사를 표하는 말말족의 모습은 병만족을 향한 경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 하나하나가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프로그램 전체에 금이 가게 됐다. 누리꾼들은 너무나 쉽게 "외부인이 처음 왔다"고 말한 그 '최후의 원시부족' 말말족이 문명화된 옷을 입고 백인 관광객과 찍은 사진을 찾아냈다. 이 외에도 자잘하고 사소하게 의심을 품을 만한 '증거'들이 속속 발견됐다. 결과적으로 '출연진의 고생'이라는 알맹이는 있으되, 그것을 담아낸 제작진의 포장이 과하다면 너무 과했던 게 문제였다. 그리고 그 과대 포장 때문에 알맹이마저 진짜인지 의심받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정글의법칙 IN 뉴질랜드>팀의 이지원 PD가 프로그램 진정성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논란의 중심이 된 배우 박보영 소속사의 김상유 대표.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정글의법칙 IN 뉴질랜드>팀의 이지원 PD가 프로그램 진정성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논란의 중심이 된 배우 박보영 소속사의 김상유 대표. ⓒ 이정민


제작진의 '담백함'이 아쉽다

제작진이 뒤늦게 해명 자료를 냈지만, 그 해명마저 반박할 근거를 찾아내는 이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깔끔하게 '오지 촬영이 불가능한 이상, 연출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다만 그것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다,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정공법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프로그램을 향한 성토는 있을지언정 이렇게 후폭풍이 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도, 이 때문에 일어난 논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과대 포장'의 우를 범했다. 

프로레슬링은 누구나 그것이 쇼임을 안다. 하지만 누구 하나 프로레슬링이 조작이다, 가짜다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이 쇼를 위해 묵묵히 흘려온 땀을, 그 노력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리얼'이라는 수식어에 박제되고 만 <정글의 법칙>이 아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느 정도의 설정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포장 없이, 담백하게 출연진의 생존담을 그렸다면 지금과 같은 파문은 없었을 것이다. 그 험한 곳을 몸소 겪으며 보여준다는 것도 엄청난 도전이지 않은가. 정말, 시청자를 놀라게 해선 안 되는 거였다.

정글의 법칙 정법 김병만 논란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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