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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과는 거리가 먼 물리학자에게는 그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의 이름조차 생소하다. 한국에서는 애초에 그렇게 교육시키지 않았냐고 위안을 삼아 보지만, 현대물리학이 21세기에는 필수교양이어야 한다는 평소 내 주장을 돌아보면 그 생소함에서 유발되는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안희경이 7인의 세계적인 석학을 대담해 정리한 책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오마이북)를 집어 들었을 때 내가 들어 본 이름은 놈 촘스키와 조지 레이코프밖에 없었다. 로버트 서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피터 싱어, 코넬 웨스트, 반다나 시바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로버트 서먼이라는 이름을 보고 문득 영화 <킬빌>의 여전사 우마 서먼을 떠올리는 나 같은 일자무식에게는 이들의 이름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었다. 놀랍게도 로버트 서먼이 우마 서먼의 아버지라니,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라고는 해도 내 어이없는 감각이 때로는 기특한 구석이 있나보다.

인상적이었던 촘스키의 답변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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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답변은 촘스키의 답변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촘스키는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보다 훨씬 잘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답은 그리 먼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목은 책의 프롤로그에도 다시 나온다.

"선생의 표정은 '그걸 왜 나한테 묻나요? 당신이 답인데...'라고 반문하는 듯했다."

석학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2010년 한국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기획한 창의력 센터를 자신에게 맡아 달라고 요청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엄청난 자금 지원과 협조를 약속했어요. 하지만 맡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것이었고..."

그러고 보면 한국어도 모르는 석학들에게 한국 문제를 맡기려고 했던 지금까지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한심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도 촘스키의 본심은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다"라기보다,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아야 한다"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조지 레이코프를 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선거의 핵심이슈였던 무상급식을 레이코프는 우파의 프레임이라고 단정 짓는다.

"무상급식을 이야기하자마자 바로 우파를 돕게 됩니다."

레이코프의 주장은 일반론적인 시각에서 혹은 미국의 경험에서는 옳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넓혀서 말하자면, 프레임이란 우리 뇌 속의 '물질적인 구조'라는 레이코프의 주장은 인지과학의 일반론적인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질화된 구조로서의 프레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거치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다.

정치에서 가장 상위의 프레임이 도덕성이라는 레이코프의 주장은, 도덕성보다는 능력이라며 이명박을 선택했던 2007년의 한국을 설명하기 어렵다. 레이코프는 또한 진보가 보수에 맞서려면 정책으로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도덕성에 기초한 공익 혹은 공공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가주의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 공익이라는 개념은 (물론 왜곡된 형태이긴 하지만) 오히려 보수가 즐겨 써 오던 개념이다.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세뇌시켰다. 그의 딸 박근혜에게 투표했던 내 어머니는 이번 설날 과도한 복지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나를 나무랐다. 이런 생각으로 투표장에 나간 유권자가 내 어머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레이코프 주장의 핵심, 즉 18세기적 계몽주의를 폐기하고 우리의 몸과 뇌와 실재 세계가 연동되어 신체화되고 물질화된 이성주의에 집중한다면 촘스키의 말마따나 한국 사람들이 이미 그 답의 단초를 낸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97년 김대중의 이른바 '뉴 디제이 플랜'과 2002년 대선에 등장했던 '노무현의 눈물'은 내 생각에 가장 레이코프적인 선거 캠페인이었다. 오죽하면 보수진영에서 이미지 정치로 국민을 호도한다고까지 했을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책에 매몰된 18세기적 계몽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1990년대 학생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좌파는 논쟁에서 이기고 조직화에서 패배한다"는 말이 이미 그 당시에 유행어처럼 번졌다. 1993년쯤에 이르면 학내 주요 벽면을 장식했던 대자보가 알록달록해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시각영상매체에 익숙한 X세대'를 위한 배려(?)였다. 좌파는 칙칙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때깔 좋고 엣지 있는 좌파가 되려는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총학생회 선거운동원 복장의 대학별 트렌드까지 조사해서 '깔맞춤'하던 일도 드물지 않았다.

당시의 이런 전력들을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 때 제1야당 캠프의 선거대응은 90년대 대학생들만도 못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레이코프라는 이름도, 프레임이라는 단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한국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들의 지난 경험들에서 유의미한 교훈들을 잘 추상화할 수 있었다면 레이코프라는 석학이 한국에서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단 하나의 생각

그렇다고 해서 석학의 통찰과 한마디가 전혀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지금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고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우리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한국 안에 있는 우리들보다 바깥의 석학들이 더 잘 알 수 있다. 등수 매기기에 익숙한 탓인지 우리는 한국을 모든 면에서 '세계 몇 위'의 나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숫자들은 어떤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것이 인류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우리가 추출해내지 못한다면 통계적인 숫자들은 단지 숫자와 등수 자체로만 머물 뿐이다. 석학의 지혜와 도움, 특히 그들의 추상화된 일반론이 일차적으로 필요한 곳이 바로 여기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숫자와 등수가 아닌 그 속에 내재된 의미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국방은 북한주적, 외교는 한미동맹, 경제는 수출 대기업 등 그 뻔한 레퍼토리로 반세기 넘게 살아오는 동안 우리의 세계사적 위치를 살펴보는 역할은 우리의 몫이 아닌 것으로 돼 버렸다. 우리가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석학들의 한마디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7인의 석학들 중 반다나 시바를 제외한 6명이 지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정작 미국은 대체 왜 그 모양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지금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은 어느 위대한 석학의 빛나는 통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서 그리 먼 데 있지 않은 답을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 답이라는 것도 실체가 없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답을 단지 아는 것보다 약간 어설픈 해법이나마 실제 현실에서 적용해 보고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추구해 나가는 행동과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아닐까?

석학들이 내놓은 통찰과 해법이라는 것도 결국엔 누군가의 부단한 행동과 실천의 결과가 없었다면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석학이라는 분들은 하나같이 행동과 실천이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석학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세상을 바꾸는 단 하나의 생각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바로 그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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