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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에 이곳 동유럽 리투아니아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날을 타국에서 맞이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인들끼리 요리경연을 하자고 한 것은 아마도 대부분이 타지에서 처음 맞이하는 명절에 음식을 해먹는 분위기가 그리워서, 혹은 그 음식들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서로 뭘 만들 건지 물어 보고, 견제(?)에 들어가는 눈치였다.

 기숙사 키친에서 보이는 카우나스 시가지 풍경
 기숙사 키친에서 보이는 카우나스 시가지 풍경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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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오늘 아침까지도 쉬운 메뉴로 대충 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뭔가 특별한 설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전도 부치고, 동그랑땡도 만드는 설날 분위기가 내고 싶어졌다.

바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검색을 하다 보니 여기에서 만들 수 없는 한국 음식이 참 많았다. 지난 학기를 이미 여기에서 지냈고 한 학기를 더 머무를 예정인 한국인 오빠에게 여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에 대해 물어 보았다(그는 리투아니아 교환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동그랑땡은 여기 마트에서 두부를 구할 수 없어서 패스. 깻잎전도 만들고 싶었으나 깻잎을 구할 수 없어서 패스. 깻잎전이 안 되면 호박전이지! 하다가 마트에 가 보니 애호박이 하나에 6리타(1리타는 440원 정도)나 해서 옆에 있던 가지로 만드는 가지전으로 메뉴를 급 변경했다. 가지는 애호박보다 훨씬 탐스럽게 생겼는데도 3리타 정도였다. 그리고 수정과는 정말 기발하게도 머릿속에 떠오른 메뉴였다.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만들기가 쉬워서 바로 결정했다.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대형마트에서 파는 계피(시나몬)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대형마트에서 파는 계피(시나몬)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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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재료를 사 와서 바로 주방에서 만들기에 돌입했는데도 조리시간이 다 합해서 2시간 정도가 걸렸다. 레시피 검색하고 장 보러 다녀온 시간까지 합하면 오늘은 반나절을 요리하는 데 쓰고 나머지 반나절을 사람들과 음식 먹는 데 쓴 셈이다.

먼저 쌓아 둔 설거지를 하고, 계피를 씻어서 쪼개서 물에 끓이고, 생강차 청과 건더기를 계피와 다른 냄비에 따로 끓이고, 가지와 고명으로 쓸 파프리카와 양파와 야채를 다듬고 밀가루와 계란을 준비하고, 열심히 튀겼다. 어제 저녁에 오늘 요리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귀찮아하던 사람들도 옆에서 열심히 창작의 고통을 겪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 룸메이트는 감자 가는 강판에 손을 갈며 부상투혼을 발휘했다.

가지전 준비중인 모습 오늘만은 모두가 식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 가지전 준비중인 모습 오늘만은 모두가 식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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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키친에서 수정과를 끓이고 있다. 수정과는 생각보다 레시피가 간단했다.
▲ 기숙사 키친에서 수정과를 끓이고 있다. 수정과는 생각보다 레시피가 간단했다.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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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다 되어서 서둘러 음식을 담아서 요리를 들고 모이기로 한 장소인 6층 키친으로 가니 이미 키친에 있는 큰 상 하나에 온갖 정성들인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상 주위에는 한국인들과 생각보다 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둘러서 있었다. 우리가 초대한 친구들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Celebration of New Year's Day를 한다는 것을 풍문으로 듣고 찾아온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는 비타우나스 마그누스 대학에 한국어 교수님으로 계신 현정임 선생님도 자리해 주셨다.

다들 모이자 사진을 찍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튀김, 전, 해물볶음, 소고기볶음, 불닭, 파프리카밥, 카나페에 약밥까지 온갖 다양한 음식이 가득했다. 다들 매일매일을 500원도 아껴가며 사는 가난한 학생들인데 오늘은 다들 큰 맘 먹고 음식에 투자한 결과였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리투아니아에서의 한국 설날맞이 음식들
 한 상 가득 차려진 리투아니아에서의 한국 설날맞이 음식들
ⓒ 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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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아서 선 채로 상 주위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먹었다. 현지인 친구들은 매운불닭을 먹고 연신 손을 내저으며 "Oh, spicy!!!"를 외쳤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불닭을 만든 친구가 외국인들이 많이 올 것을 생각해서 일부러 안 맵게 만들었다는데도 이들에게는 매웠나 보다.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냐고 물으니 소고기볶음을 가리켰다.

 정성들여 만든 가지전과 수정과
 정성들여 만든 가지전과 수정과
ⓒ 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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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가지전은 외국인들보다는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나는 수정과를 외국인들에게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한국의 전통 음료이고 명절에 많이 만들어 먹는다면서 한 모금씩 권했다. 달고 향긋해서 괜찮다는 반응이었고 재료가 뭔지 물어 보며 호기심을 보여서 으쓱해졌다.

비록 이곳 마트에서 떡을 구할 수 없어서 떡국도 없고, 만두도 없고 동그랑땡도 없지만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설날에는 이렇게 푸짐한 음식들과 함께 잔치가 벌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타지에서 보내는 첫 명절이 앞으로도 마음 속에 풍성하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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