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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원작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19세기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중들의 피폐해진 삶을 다루고 있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원작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19세기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중들의 피폐해진 삶을 다루고 있다.
ⓒ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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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직후에 본 탓일까요?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결국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음반을 사서 듣는 것도 아쉬워 두툼한 5권짜리 원작소설까지 읽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이달 초 개봉 7주 만에 국내 관객이 600만 명에 육박하면서 역대 외국영화 흥행 10위권에 들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영화 인기에 힘입어 음반과 책도 수만 장, 10만 권씩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고요. 외국에서도 골든글로브상 3관왕을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더 유달라 보입니다. 단지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선택한 OST 때문만은 아니겠죠.

이미 뮤지컬로도 인기를 끈 영화 <레 미제라블>은 원작을 잘 살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뮤지컬 무대에 담아내기 어려운 19세기 파리 민중들의 척박한 삶이라든지, 총성과 파편이 튀는 바리케이드 전투 장면들도 실감나게 전달합니다.

5부 수천 쪽 분량의 원작소설 내용을 3시간짜리 뮤지컬 영화 안에 담기란 불가능합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들이 빠지거나 압축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 가운데 우리 사회 지도층의 악습을 꼬집는 장면들을 몇 가지 찾아봤습니다.

'국민 경제 기여'로 풀려나는 재벌 총수와 종신형 선택한 장 발장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전과자 신분을 감추고 시장이 된 장 발장(오른쪽)은 자신을 닮았다는 이유로 도둑 누명을 쓴 한 노인을 구하려고 재판정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전과자 신분을 감추고 시장이 된 장 발장(오른쪽)은 자신을 닮았다는 이유로 도둑 누명을 쓴 한 노인을 구하려고 재판정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
ⓒ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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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마들렌 시장이 된 장 발장이 자신과 닮아 누명을 쓴 노인을 구하려고 재판정을 찾아가 "내가 진짜 장 발장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빵 하나 훔친 죄로 19년 감옥살이를 하다 나온 장 발장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유망한 사업가이자 시장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처지였습니다. 더구나 간수였던 자베르 경감에게 의심까지 받던 처지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로 하죠. 그 고뇌와 갈등이 담긴 노래가 <나는 누구인가(Who am I)>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비난을 받고, 침묵을 지키면 저주를 받을 텐데
나를 보고 일하는 일꾼 수백 명이 있는데 내가 그들을 버릴 수 있나?
내가 자유롭지 못하면 그들은 어떻게 살라고."

지난 달 31일 서울중앙지법에선 열린 한 재판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65억 원에 이르는 계열사 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됩니다. 더 놀라운 건 정작 자금 유출을 지시했다고 자백해 검찰에서 더 무거운 징역 5년형을 구형받은 동생 최재원 부회장은 무죄로 풀려났다는 점이었죠.

'회사돈 횡령 혐의' 법원 출석하는 최태원 SK회장  SK 그룹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법원은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 '회사돈 횡령 혐의' 법원 출석하는 최태원 SK회장 SK 그룹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법원은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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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가야 확정되겠지만 1심 판결만 놓고 본다면 장 발장과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형 대신 죄를 뒤집어쓰려 한 동생은 무죄로 풀려나고, 동생과 공범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결백만 주장하던 형은 구속된 셈이니까요.

원작에서 장 발장은 정작 자신이 다시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는 병마에 시달리는 판틴과 버려진 딸 코제트, 공장 직원들과 시민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끝까지 갈등합니다. 자신이 사라지면 그들이 모두 가난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질 걸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됐으니까요.

그럼에도 장 발장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결국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히는 걸로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습니다(영화에서는 바로 탈출한 걸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경찰에 잡혀 다시 감옥에 갇혔다가 탈옥해 코제트를 찾아갑니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경제 범죄로 재판정에 설 때마다 "국민 경제에 끼친 기여와 영향, 경영 공백 등을 고려해" 달라는 논리로 집행유예로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의 양형 이유가 더 눈길을 끕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서 사업영역의 무리한 확장, 과도한 이윤추구적 기업 운영 등을 이유로 계속해서 여론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대기업의 폐해가 피고인의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데 동의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SK그룹을 대표하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우리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피고인의 형사책임을 경감하게 하는 주요 사유로 삼는 데도 반대한다."



'벤처기업가' 장 발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재벌가 편법 상속 

또 한 가지는 당시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원작 첫 권을 펼치면 장 발장 대신 그에게 은촛대를 선물한 미리엘 주교의 삶과 성품에 대한 이야기가 수십 쪽에 걸쳐 장황하게 펼쳐집니다.

당시 미리엘 주교는 나라에서 상당한 연금을 받는 고위직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수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자신은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전과자'라고 따돌림 받는 장 발장을 흔쾌히 맞아들여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 잡혀온 그에게 은촛대까지 선물한 것도 전혀 뜻밖에 벌어진 사건은 아니었던 셈이죠.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미리엘 주교는 은접시를 훔쳐 달아난 장 발장이 경찰에게 잡혀오자 자신이 선물한 거라며 자신의 은촛대까지 념겨 준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미리엘 주교는 은접시를 훔쳐 달아난 장 발장이 경찰에게 잡혀오자 자신이 선물한 거라며 자신의 은촛대까지 념겨 준다.
ⓒ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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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엘 주교의 모습에서 세금 납부도 거부한 채 세습에 혈안이 된 대형 교회 목사님들이나, 공금을 자기 쌈짓돈처럼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저만은 아닐 듯합니다.

사회지도층이 된 장 발장 역시 미리엘 주교의 '미덕'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원작에서 그는 당시 고가였던 유리구슬을 값싸게 만드는 '특허 기술'을 개발해 큰 돈을 법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수성가한 벤처기업가인 셈이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정작 자신은 가구도 몇 개 없는 집에 검소하게 살면서도 마을에 탁아소와 무료 약국 등 사회복지시설도 세우고 가난한 이들을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켜 마을 전체를 부자 동네로 만듭니다.

원작에서 그는 63만 프랑을 은행에 예금해 뒀다가 나중에 대부분 수양딸인 코제트에게 물려주는데, 100만 프랑 이상을 당시 마을과 주민들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당시 파리 지식 노동자의 일당이 3프랑 정도였고 격식 갖춘 저녁 식사 한 끼 값이 1프랑에도 못 미쳤던 걸 감안하면 요즘 돈으로 100억 원이 훨씬 넘는 거액입니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장 발장은 판틴의 딸인 코제트를 구해 수양딸로 삼고 자신의 전재산을 모두 물려준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장 발장은 판틴의 딸인 코제트를 구해 수양딸로 삼고 자신의 전재산을 모두 물려준다.
ⓒ 유니버셜픽쳐스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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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업으로 번 재산의 태반을 2세에게 물려주려한 점은 요즘 재벌총수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자식에게 남기는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사회에 베풀고 정작 자신은 아무런 사치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라 할 만합니다. 기부는커녕 상속세나 증여세내는 것도 아까워 온갖 탈세와 편법 상속을 일삼는 우리 재벌가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입니다.  

1862년 이 책을 쓴 빅토르 위고는 서문에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책도 무익하지 않으리라"라는 예언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혁명으로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 가치가 주변 제국주의 열강의 방해와 보수 세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가난한 민중들의 삶은  양극화로 더 피폐해 가는 모습은 150년이 지난 오늘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레 미제라블>이 책, 뮤지컬, 영화로 거듭나며 끊임없이 사랑받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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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인권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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