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일 오후 3시, 기자는 노량진으로 향했다. 설 연휴가 다가오지만, 노량진 고시생들에게는 '연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량진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김아무개씨(26)는 설 연휴에 집에 가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집에 가고 싶기는 하지만, 설 연휴에 학원에서 특강이 있어 못 갈 것 같다"며 "이번 해에 꼭 시험에 합격해 내년에는 고향에서 설 연휴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노량진에 있는 고시학원들에 문의한 결과 설 연휴 때 학원을 휴강하지 않고 강의나 특강을 할 예정이라고 답한 곳이 많았다. 경찰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A 학원도 설 연휴에 평소처럼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당장 3월에 경찰 공무원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노량진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학원으로 꼽히는 B 고시학원은 설 연휴인 9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과목별로 무료특강을 진행할 계획이다. 명절 때마다 특강을 향한 고시생들의 반응이 뜨겁기 때문이다. 이번 설 연휴에는 특강으로 국어·영어·행정·한국사·수학 과목이 개설됐다. 국어·영어·한국사 과목은 이미 신청이 마감된 상태이다.

B 고시학원 관계자는 "설에 무료 특강으로 각각 500명 정원의 5과목이 개설됐다. 그 중 3과목은 이미 마감된 상태이고 나머지 과목들도 300명 정도 신청했다"며 "수험생활 하는 학생들은 고향에 내려가서 설을 지내기보다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한다. 그래서 학원에서도 명절 때마다 특강을 개설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요청... 그러나 돌아온 말은 "바쁘다"

노량진역 근처 길거리 모습.
 노량진역 근처 길거리 모습.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설 연휴에도 노량진에 남아 공부할 고시생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때마침 노량진역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손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있거나 큼직한 백팩을 매고 있었다. 기자는 노량진에 있는 카페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고시생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노량진에서 고시생들이 공부하기 위해 많이 찾는다는 C카페와 D카페를 우선 찾아가 봤다. 카페에서 대략 20여 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들 '바쁘다', '싫다'라는 말로 기자를 돌아서게 했다. 테이블 앞까지 다가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도 건네 봤지만 책을 내려다보고 있는 고개를 움직이지조차 않던 사람도 있었다.

'공부하는 중이라 그랬나보다' 싶어 길거리로 나섰다.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주변에 '전도' 중인 종교인들이 있어, 혹여나 나도 오해받을까 속사포처럼 '기자'라고 소개하고 인터뷰 의사를 물었다.

"어떤 인터뷰요?" 

몇 번의 인터뷰 시도 끝에 드디어 성공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설 연휴는 어떻게 보낼 건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하며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붙잡을 수도 없을 만큼 단호했다.

오후 6시경. 노량진에서 취재를 시작한 지 3시간이 훌쩍 지났다. 3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났던 김씨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쏟아졌다. 비를 피하기 위해 노량진에 와서 처음 인터뷰 시도를 했던 C 카페로 다시 들어갔다. 아까 인터뷰를 거절했던 사람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누가 넘어져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컵밥 노점상이 들어서있는 노량진 길거리. 노점상에서 컵밥을 먹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컵밥 노점상이 들어서있는 노량진 길거리. 노점상에서 컵밥을 먹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7전 8기의 정신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 누군가에게 다시 다가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마지막으로 노량진에서 학원을 다니고 있는 고향 친구에게 전화했다. 친구는 저녁 식사 시간이라 빨리 와주었다. 내가 3시간 동안 겪었던 인터뷰 '퇴짜' 스토리를 친구에게 털어놓자, 친구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옆에서 누가 넘어져도 눈길 한 번 안준다니까.. 나도 처음엔 당황했었어." 

'멘붕'에 빠진 나를 친구가 위로했다. 친구는 노량진 고시생 생활 4달째. 얼마 전, 빙판길에서 크게 넘어졌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친구도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서러운 기분이 들었단다. 그러나 이내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게 됐고, 이제는 그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고시생들이 자기 생활을 털어놓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것 같다"면서 취재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결국 약 3시간 동안의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내내 노량진 고시생들이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생각났다.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입니다.



태그:#노량진, #고시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