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베를린>에서 베일에 싸인 통역관 연정희 역의 배우 전지현이 29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영화 <베를린>에서 베일에 싸인 통역관 연정희 역의 배우 전지현이 29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연기의 꽃이 활짝 피었다. 꾸준히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며 '배우'로 입지를 굳히려 했지만 10년 가까이 '시대의 아이콘' 이미지에 머물렀던 전지현. 그 성실함은 <도둑들>(2012)에 이어 <베를린>(2013)에서 빛을 발했다. 20대의 그가 '신비주의의 표상'이었다면 30대에 접어든 그는 한층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이다.

잿빛도시 베를린과 닮은 련정희..."류승완 감독에 먼저 제안"

전지현은 <베를린> 속 배경인 '베를린'과 가장 닮았다. 음울한 회색빛 도시의 색깔을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아이를 잃은 엄마이자 덫에 빠져 자신을 의심하는 '공화국 영웅' 표종성(하정우)의 아내 련정희 역을 소화한 전지현의 모습을 보고야 왜 류승완 감독이 "(국외 로케이션에서) 전지현을 외롭게 두려 했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지현이 과연 아픔 있는 유부녀 연기를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계속 가지셨던 것 같아요. 련정희의 분위기를 계속 자아내길 바라셨던 것 같은데. 제가 신인도 아니고 그런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껴서 그게 연기와 직결되느냐…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감독님의 방식이자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정우 씨가 정말 재밌었거든요. 현장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서 감독님이 아쉬우실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웃음)"


류승완 감독의 전작이 그렇듯 <베를린>에서 여성 캐릭터인 련정희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알았음에도 전지현은 류승완 감독에게 <베를린>에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먼저 밝혔다. 연출자로서의 색깔이 확고한 사람과 함께하는 게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고, 류승완 감독의 스타일이 궁금했다고. "지금도 사실 감독님과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털어놓은 전지현은 "나도 쉽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닌데다, 감독님도 표현이 서툴다. 그러나 이미 마음은 알고 있기에 다음 작품에도 얼마든지 출연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끔찍한 뉴스 보며 캐릭터 몰입 "확신과 믿음 있으면 자신감 생겨"


전지현에게 가장 고생스러웠던 장면이 무엇인지 물었다. 갈대밭을 걸어가다 계속 넘어지는 표종성 때문에 업혔던 련정희마저 아프지 않았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역은 아니었지만 아프기보다 더워서 고생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정이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한여름에 촬영해 땀이 뚝뚝 흘렀다는 것.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한국에 돌아와 세트에서 촬영하던 감정 신이었단다.

"국외 촬영이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 국내에서는 감정 신이 많아 힘들었어요.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가 있고, 감정 전달이 잘 되어야 해서 항상 부담이 있었죠. 표종성에게 칼을 들이밀며 '가혹하면 죄 받습네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동안 참았던 련정희의 감정이 폭발하는 중요한 장면이거든요. 오전에 찍고 끝난 줄 알았는데 오후에 또 찍었어요. 굉장히 부담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았어요."

련정희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상상을 거듭했다는 전지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몇이나 되겠느냐"며 상상력의 중요성을 역설한 그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감정을 100%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확신과 믿음이 있으면 연기할 때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다만, 련정희를 연기하기 위해 끔찍한 뉴스 등을 많이 떠올렸다는 게 전지현의 설명이다.

"결혼 후 잘된다고? 성숙한데다 감정 표현도 거침 없어져"

CF 속 여신일 줄 알았던 전지현은 인터뷰 내내 솔직했다. 신중하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던지기보다 떠오르는 대로 말했고, "여자들은 점심을 먹어도 이런 걸 먹어줘야 한다"며 허니브레드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먹었다. "칼로리 높은 음식 대신 이슬만 먹을 것 같다"고 하자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며 웃었다.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인간 전지현'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결혼하고 잘되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시기적으로 잘 맞았죠. 사실 <도둑들>과 <베를린> 모두 결혼 전에 선택한 작품이에요. <베를린>은 결혼 후 촬영했지만. 결혼하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생각해보면 여자로서 한 단계 성숙했다고 할까요. 자신감도 있고, 감정 표현도 거침없었던 것 같고.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어른스러운 감성에 부족함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 같아요."

극 중 상황이나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달라지겠지만, 전지현은 "관객이 나이 들고 성숙해지듯 나 역시 정체하지 않고 이질감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작품과 연이 닿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지만 드라마건 영화건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싶다고.

"한국 영화의 입지는 <엽기적인 그녀> 이후 굉장히 낮아졌는데, 케이팝이나 드라마는 대단해요. 어딜 가나 한국 노래가 나오고 TV를 틀면 한국 드라마가 나오죠. 소재가 넘쳐나는 것 같아요. 배우라면 당연히 좋은 소재에 눈길을 돌리기 마련이죠. 한 장르에 뿌리를 박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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