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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책표지.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책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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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과학 기술문명이 선사한 지극한 결실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곳곳에는 여전히 암흑의 구름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자살폭탄 테러로 진행 중이며,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사태는 격화일로에 있다.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유로존의 위기는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고, 1:99의 세상은 변할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아메리카에서 빈발하는 총기난사, 제3세계 소년 노동자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억압과 착취. 티베트의 문화⋅정신적 권리보존을 위한 승려들의 분신자살도 종결되지 않았다. 와중에 인접 국가들의 크고 작은 영토분쟁과 역사논쟁은 해당국가 거주민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기 일쑤다.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야만적인 행태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종식될 것인가. 인간이 과거와 다름없이 다른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거기서 얻은 잉여가치로 자신과 가족의 배를 불리며 만족해하는 추악한 양상의 본원적인 모순은 폐절될 수 없단 말인가. 인간다움 내지 인간적 가치의 함양과 그것의 보편화와 세계화는 정녕 불가능하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정신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의 대담을 기록한 서책이다.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새삼 소개할 필요도 없고,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2011)로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011년 12월 전 체코 대통령 뱌츨라프 하벨이 주도한 '포럼 2000' 행사에서 만난 두 사람이 1948년 '세계 인권선언' 이후의 보편적 가치에 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짤막한 소제목에서 우리는 서책의 함의와 의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눈길을 맨 먼저 사로잡는 대목이 '상호의존'이다. 아직 상영되고 있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되풀이되는 명제가 생생하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궁에서 무덤까지 타인들과 묶여 있고, 우리가 저지른 악행과 우리가 베푸는 선행이 새로운 미래를 탄생시킨다."

마치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를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그 자체로 온전히 독립적인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낳은 결과입니다. 만물은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유일한 법칙은 연기(緣起)의 법칙입니다." (본문, 20쪽)

달라이 라마의 말에 동조하면서 에셀은 '상호의존'이 21세기 모든 인간에게 연관되는 명제임을 확인하면서 새로운 형제애의 개념으로 그것을 승화시킨다. 1948년 당대에는 전혀 깨우치지 못했던 자연에게까지 상호의존과 형제애의 개념을 확장시키면서.

들끓는 세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로 규정해도 좋을 듯하다. 반면에 인류는 석유화학과 내연기관에 기초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시기를 활짝 열어 젖혔다.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을 한 20세기를 뒤로 하고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였다. 21세기 첫해 9월 11일 세계는 경악하고 탄식했다. 역사적인 9.11사태!

달라이 라마는 그와 같은 충격적인 사태진척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21세기 현대사회는 연민, 관용 같은 인간적인 심성의 계발보다 지적이고 학문적인 탁월성만 강조되는 사회입니다. 인간적 감수성, 연민, 비폭력 같은 것이 발전해나가는 데에는 여성의 구실이 특히 중요합니다." (본문, 29쪽)

9.11사태 이후 세계는 숨 가쁘게 돌아갔고, 그 흔적은 오늘까지 지구촌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지구촌에 단 하루라도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때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의 대담자들은 중국이 가하는 폭력과 그것에 저항하는 티베트 승려들의 분신사태를 지극한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살해당하거나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어 죽거나 굶어죽은 티베트인들은 100만 명이 넘습니다. 중국 자료에 따르면, 1959년 3월부터 1960년까지 라싸 지역에서만 87,000명이 사망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32쪽)

티베트 승려를 중심으로 한 저항과 중국의 무한폭력 그리고 강대국들의 침묵 카르텔은 티베트 사대를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반면에 달라이 라마는 언젠가 중국 공산당과 독재자들이 사라지고, 선량한 중국인들이 티베트인들의 저항을 지지할 것이라 확신한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폭력의 양상은 단순히 무기나 완력의 형태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물질적 불평등과 거기서 기원하는 허다한 사회적 불평등이 다채로운 폭력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날로 크게 벌어지고, 거기서 발원하는 고통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고스란히 전파된다. 정의가 결석한 사회의 폭력적 양상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에셀은 물러서지 말고 세상의 변혁에 나서라고 촉구한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용기를 보이면 세상이 차츰 혹은 문득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행동하지 말고 남들과 함께 행동하십시오." (본문, 35쪽)

세상이 이토록 혼란스럽고 아귀다툼으로 화하게 된 근본원인을 달라이 라마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에서 찾는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 결국에는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거대한 심연의 이분법이 보편적인 형제애 정신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두려움과 미움의 감정에 휘말려 심신 미약상태에 빠져든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달라이 라마는 '마음의 과학'이라는 처방을 설파한다.

"마음의 풍경이 명료하게 밝혀지고 통제되면 우리는 연민, 용서 같은 긍정적인 감정까지 키워갈 수 있고, 그래서 분노, 멸시, 두려움, 증오 같은 파괴적인 감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종교가 아니라 마음의 과학입니다." (본문, 41쪽)

폭력적인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폭력으로 대응하지 말고, 용감하게 불굴의 의지를 보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폭력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은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폭력 원칙을 지키려면 아주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유엔을 개혁하고 사무총장은 반성하라?!

잘 사는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격차를 극복하려면 무엇인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에셀은 말한다. 나아가 그런 문제는 개인 뿐 아니라, 국가 간에도 발생하기 때문에 부강한 나라의 정부는 가난한 나라의 정부와 협력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개혁을 촉구한다.

"인구와 경제·문화적인 면에서 가장 책임 있는 20-25개국이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이 되어야 합니다. 거부권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사국의 다수결로 의결해야 합니다." (본문, 70쪽)

에셀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저에는 시리아 내전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인권에 눈을 감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 이스라엘 침공에 적극 대응하려는 안보리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미국처럼 강대국의 패악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엄중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유엔헌장 제99조에 따르면, 유엔 사무총장에게는 유엔이 전향적으로 발전하도록 할 책무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본문, 72쪽)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에 따라 재선에 성공한 반 총장의 무기력한 사무총장 직 유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세계 최고⋅최대의 국제기구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라면 자신에게 고유한 자유의지와 역사의식, 확고한 미래전망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자리보전이나 할 요량이면 왜 거기 머물러 있단 말인가?! 돈 혹은 명예 때문에?!

21세기가 야만과 폭력에서 해방되는 아름다운 시간대가 되려면 우리는 자유와 평등, 존엄과 형제애를 한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다운 깨달음과 내면적인 가치지향을 통해 의미 있는 삶을 향해 치달려가야 할 것으로 믿는다.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 두 사람의 성찰과 가르침이 우리에게 커다란 빛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덧붙이는 글 |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달라이 라마,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 2012.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이 나눈 세기의 대화

달라이 라마 &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2012)


태그:#달라이 라마, #스테판 에셀, #비폭력, #유엔,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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