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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1월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 마이크 뿌리치는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1월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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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을 분명히 지키고 있다."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을 받고 있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는 지난해 12월 12일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관련기사 : 민주당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서 여론조작"). 민주통합당과 언론에서 제기했던 '국내정치 개입 의혹'을 단호하게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경찰에서 한 달 이상 김씨를 수사한 결과, 김씨는 국내 정치현안 등과 관련해 120여 건의 글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은 이것이 '대북심리전 활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씨의 인터넷 댓글 달기 활동은 국정원의 '정치 관여 금지'를 규정한 국정원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떨치기 어렵게 됐다.

심리정보국 4개팀 70여 명 활동... 국정원은 '심리전단'으로 축소 발표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이 불거지자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김씨가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소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가 소속된 곳은 정확하게 '심리정보국'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조직단위를 '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관련 조직이 '단'에서 '국'으로 확대 개편된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의혹을 추적해온 정치권의 한 인사는 "공식 직제에서 국장급 조직으로 편제할 경우 정치공작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해 (형식적으로는) 단장 밑에 단장을 두는 편법을 썼다"며 "실제로 내부에서는 국장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 2011년 11월부터 심리전 전담부서인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했다. 2급인 단장이 지휘하던 조직을 1급인 국장이 지휘하는 조직으로 덩치를 키운 것이다.

심리정보국은 민아무개 국장 아래 두 개의 '단'을 두었다. 구아무개씨를 단장으로 하는 제1단은 심리전 기획부서이고, 이아무개씨를 단장으로 제2단은 원래 안보1·2·3팀 등 3개팀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2단에는 안보5팀이 더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와 관련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조직을 얘기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며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

20여년 간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A씨는 "국정원에서는 심리전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심리정보단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된 것이다"라며 "70여 명이 소속돼 있는 심리정보국 제2단에서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노트북-스마트폰 지급... 외부에서 인터넷 댓글 달기 작업 진행

역삼동 오피스텔앞에서 대치중이다.
 역삼동 오피스텔앞에서 대치중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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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보국에 소속된 요원들은 개인별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받았다. 이는 아이피(IP)가 추적되는 국정원 청사나 개인 자택이 아닌 카페 등 외부에서 작업하려는 조치다. A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요원들이 집에서 작업하다가 적발된 경우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A씨에 따르면, 요원들은 오전 8시 30분께 국정원에 출근해 전날 자신들이 작업한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한 뒤 서류봉투에 밀봉해 상급자에 보고한다. 이후 서울 강남 일대와 경기도 미사리 카페촌 등으로 나가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홈페이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댓글을 다는 작업을 벌인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집에서 작업해 USB 등에 저장한 뒤 PC방과 카페에서 한꺼번에 대량으로 댓글을 달기도 한다.

요원들이 외부로 나가기 전에 이들에게는 '일일 작업 지시서'가 전달된다. 일일 작업 지시서에는 하루 동안 포털사이트 등에 달아야 하는 '댓글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전문 형태의 작업지시를 매일 가지고 나가서 특정 아이템과 관련해 특정진영의 논리로 대글 달기 작업을 진행한다"며 "한 건당 두세 시간 정도 작업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정원 감찰실은 지난해 12월 심리정보국 제2단 소속 요원들의 차량을 상대로 보안감찰을 벌여 차량 안에서 지시서를 발견한 적도 있다.

심리정보국의 전신인 심리전단은 대북 심리전을 벌이는 조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촛불집회 직후인 지난 2008년 가을께부터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국내심리전을 시작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촛불 차단'을 위해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국내심리전을 본격화한 시기는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하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주요한 정치현안들과 관련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명분은 '대북심리전'이지만, 실상은 '국내정치 개입'이었던 셈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특정후보를 겨냥한 인터넷 댓글 공작이 있었느냐 여부다. 민주통합당 쪽은 "이들이 주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비방하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지만, 국정원은 "대북심리전 차원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거기에 달린 댓글의 반응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전직 국정원 요원 A씨는 "지난 2011년 말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한 것은 총선과 대선 등 선거를 염두에 둔 조치다"라며 "최종 목적은 대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국내정치 개입인지 대북심리전인지는 경찰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며 "지금처럼 경찰이 수사로  말하지 않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라고 지적했다.

대북심리전 전문가가 국내심리전 지휘했다?

심리정보국은 국정원 3차장 아래에 설치된 조직이다. 3차장은 대북공작과 과학·산업·방첩 업무를 맡고 있다. 현재 이종명 3차장은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 지난 2011년 4월 국정원 3차장에 발탁되기 전까지 합동참모본부(합참) 민군심리전 부장으로 대북 심리전을 총괄해왔다. 합참 민군심리전부는 지난 2011년 1월 기존에 '과'(課) 단위로 운영됐던 민군작전과와 민군작전계획과, 심리전과를 통합해서 발족된 부서다. 평시에는 대북 심리전을, 전시에는 적 지역 민심 안정화 정책을 주요 업무로 한다.

이종명 3차장은 국정원 3차장에 내정된 후 예편하긴 했지만, 국민의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바뀐 이래 현역 장성에서 차장에 오른 첫 사례였다. 내정 당시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군의 요직을 거치면서 조직을 화합하고 결속시켜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합참 민군심리전 부장으로 대북심리전을 맡아왔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대북공작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대위 때인 85~87년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 파견돼 장세동 안기부장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육사 35기로 제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제 12보병사단장, 합참 전력발전부장을 지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한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에는 군사작전지원 실무 총책임을 맡기도 했다.

국정원의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이 커지면서 대북심리전 전문가인 국정원 3차장이 심리정보단(심리전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하는 가운데 국내정치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


태그:#국정원, #인터넷 댓글 공작, #심리정보국, #심리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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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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