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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붙은 개' 동영상의 일부 장면
ⓒ 동물사랑실천협회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자동차정비소 창고로 온몸에 불이 붙은 개가 달려 들어갔다. 창고에서는 화재가 발생했고 잠시 후 현장에서는 개 사체가 발견됐다. 경찰은 23일 정비소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해 불붙은 개가 창고로 달려 들어가는 동영상을 확보했다. 현재 이 사건을 동물학대로 보고 수사 중에 있다.

불붙은 개사건은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제까지의 동물학대사건 처리과정과 결과를 놓고 볼 때, 범인을 찾는다고 해도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을지 확신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법과 제도가 미비하고, 사회인식이 동물을 보호해야 할 생명체로 보는 인식이 아직까지는 미비하기 때문이다.

'악마 에쿠스 사건'이 떠오른 이유

지난해 5월 20일 에쿠스 승용차가 경부고속도로 상행불선 양재 IC에서 한남대교 방향으로 개의 목을 트렁크에 매단 채 질주하여, 개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악마 에쿠스 사건'이라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이 사건은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명 '에쿠스 사건'이 무혐의처분을 받은 것은 명백히 현행 동물보호법의 한계 때문이다. 당시 피의자는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 제1호(누구든지 동물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에 규정된 범죄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아 불기소되었다.

동물보호법의 목적이 동물의 생명보호에 있으면서도 동물 죽음에 대한 과실범 또는 결과적 가중범이 없어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면 처벌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법은 제 14조에서 '정상의 주의를 게으름으로 인하여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때에만 처벌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법률에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형사제재를 할 수 없다.

에쿠스 사건을 통해 볼 때 운송 중 사고가 생길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과실로 인해 동물이 죽음에 이르렀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과실범, 운송에 대한 의무 조항 등이 세부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불붙은 개 사건 역시 범인이 고의성을 부정한다면 사건이 가볍게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동물보호법상으로는 현재 물리적 폭행만이 학대로 규정되어 있어 장기간의 방치에 의한 질병발생과 이에 따른 사망 등의 사건은 전혀 처벌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동물의 건강과 행복을 규정하는 동물복지라는 정의에서 볼 때 반드시 물리적 폭행이 아니더라도 동물을 고통에 몰아넣는 정황은 무수히 많다. 상세한 학대상황을 규정하고 이를 규제하려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영국의 동물단체 RSPCA는 구조와 돌봄(care)이 필요한 동물들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mistreated(학대당한), neglected(방치된), injured(상처 입은), distressed(고통스러운), 즉 이런 상태의 동물들은 치료·구조의 대상이 되며 이들을 학대한 사람들은 교육(educate), 권고(advice), 경고(warn), 고발(prosecute)의 대상이 된다.

즉 이러한 "불필요한 고통 (unnecessary suffering)을 주는 모든 행위"가 법적으로 학대에 해당하며 이 정의 안에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본성을 해치는 열악한 환경을 제공하는 행위 등도 해당된다.

정신적 고통과 환경적 열악함에 따른 질병발생 뿐 아니다. 이윤과 산업에 연결된 동물은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다.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은 고려의 대상도 아니다. 동물 유기는 어떤가. 해마다 거리로 쏟아지는 유기동물 수만 10만 이다. 동물 유기는 이미 사회속에서 사람과 살아가야 할 동물이 적응할 수 없는 상태에 방치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명백한 동물학대이다.

 상자에 넣은 채 버려진 고양이, 트위터를 통해 사연이 알려지면서 결국 이 고양이들은 입양을 갔다.
ⓒ 제보자 제공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법적 관리와 조치의 대상조차 아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입건된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2002년 1명, 2003년 4명, 2004년 5명, 2005년 11명, 2006년 17명, 2007년 28명, 2008년 50명, 2009년 69명, 2010년 78명, 2011년 113명). 이는 동물 학대행위자가 증가한다는 의미라기보다 '동물 학대가 범죄다'라고 하는 사회적 인식이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회적 인식이 증가한 만큼 그에 따른 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개인 보호소의 개들. 누가 버린 개들인가? 우리 시민들의 책임이다.
ⓒ 동물을 위한 행동

동물보호감시원 제도, 법적 근거는 있지만...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영국의 동물단체 RSPCA 역시 감시관 (inspector) 제도를 통해 경찰의 동물학대사건 수사를 보좌하고 직접 현장에서 동물학대사건을 조사·권고 조치 등을 취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40조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소속 기관의 장을 포함한다),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은 동물의 학대 방지 등 동물보호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소속 공무원 중에서 동물보호감시원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 41조)동물보호감시원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동물보호명예감시원을 위촉할 수 있다.

즉 해당 지자체의 동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해당 지자체에서 위촉한 일정한 교육을 받은 일반인이 동물 학대방지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처벌할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해도 동물보호명예감시원이 자신의 지역에서 벌어진 학대사건들을 감시원과 함께 조사하고 현장을 방문, 학대행위금지에 대한 권고조치를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건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예산과 인력이 문제다. 현재 동물보호감시원으로 임명되는 사람들은 각 시군구의 지역경제과 혹은 축산 관련 업무를 맡은 현직 공무원들이다. 동물학대에 관한 업무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인원보충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의 과감한 예산과 인력투자가 필요한 지점이다.

또한 동물보호감시원과 명예감시원 교육은 일년에 한차례 정도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실무교육과 중간점검을 위한 추가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동물학대 사건을 접하게 될 때 가장 힘든 것은 법의 한계보다 동물학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2005년부터 시작한 자원활동시절부터 수많은 동물학대현장을 접했다. 학대사건 고발접수를 위해 112 번호를 누른 후 경찰이 출동하면 '바빠죽겠는데 지금 개 문제까지 해야 하나? 라는 시선과 '대충 합의하세요'라는 회유와 권유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를 사건처리해야겠다'고 강행하면 어쩔 수 없이 접수 받아준다. 하지만 그 표정 또한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담당수사관이 정해지고 조사를 받는 과정 내내 또 한 번의 냉대를 경험하게 된다. 친절한 수사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경찰의 표정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마지못해 사건을 받아준다는 태도도 상당했다.

법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탓으로 수사관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의견과 판단은 늘 달랐다. 사람이 중심인 사회에서 동물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동물학대는 범죄다.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한 책무다.

폭력, 살인 등 강력사건을 일으키는 범죄자들이 어릴적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많다는 연구가 있다. 인간에 대한 폭력과 동물학대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연구한 조사도 무수히 많다.

"동물 학대, 폭력으로 연결될 가능성 높아"

홍성역 교수의 '범죄자프로파일링'이라는 논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동물의 학대가 심한 사람은 계속되는 학대를 사람에게까지 전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개 또는 고양이 등의 동물을 학대하며 그들이 괴로워하거나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쾌감을 얻는다.

이런 쾌락적 감각이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될 때 살인을 부를 수 있다. " 모나쉬 대학의 심리학자 엘레노라 글론은 '동물학대 범행의 예행단계 혹은 범죄 행위를 촉발하거나 내재적으로 강화 조장하는 예측단계로 풀이할 수 있으며, 동물에 대한 잔학 행위와 사람에 대한 범죄 행위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면 범죄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다" 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신아연, 가정폭력과 동물학대, Social Worker 42호)

동물을 학대하지 않고 그 동물의 생태에 맞는 삶을 살도록 돌봐주고자 하는 마음은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감수성에서 나온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동물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관찰하고 아이들에게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동물을 함부로 만지고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인식은 아이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동물도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위 사진은 한 동물체험관에서 아이가 펜더마우스를 만지고 있는 장면이다. 단지 가벼운 행동이라고 치부할 일일까? 오늘 자신이 만원만 내면 마음껏 만질 수 있는 동물이 있다면 아이들은 과연 타자의 삶이 존엄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개에게 불을 붙이면 그 개는 고통스럽게 죽고 만다. 그런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면 누군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 그런 법질서가 바로잡혀야 사회적 폭력이 제어된다. 우리가 동물학대사건을 가볍게 처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태그:#동물학대, #불붙은 개 ,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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