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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국립공원의 가리산이 그들의 집 뒷산이다.
▲ 심마니부부의 집으로 가는 중 설악산 국립공원의 가리산이 그들의 집 뒷산이다.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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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현씨를 처음 만난 건 남해 금산의 보리암에서다. 동지 전날 저녁 내내 공양간에 둘러앉아 팥죽에 넣을 새알심을 만들던 당시만 해도 난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자정 무렵 밤 기도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그녀가 조용히 내 옆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에서야 그녀의 목소리에 귀가 쏠렸고 꼿꼿하게 앉은 모습과 얼굴을 자주 바라보곤 했다. 가무잡잡하게 볕에 그을린 듯 보이는 얼굴은 이제 겨우 서른을 넘겼을까 싶게 앳되다. 반면 지나치도록 차분한 어조와 대화의 내용으로 봐서는 마흔을 훌쩍 넘겼을 법한 생의 원숙함마저 묻어났다.

그녀는 2박3일간 새벽 아침 오후 저녁 자정까지 다섯 번의 예불시간을 빠짐없이 참석했다. 대부분 시간을 법당에서 보내던 그녀는 짬짬이 공양간의 일손을 도왔다. 그도 아닐 시간에는 예불을 함께 올리던 여신도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일이 전부였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해 보여도 안은 어느 집보다 아늑하다.
▲ 심마니부부의 집 겉으로 보기엔 허름해 보여도 안은 어느 집보다 아늑하다.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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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기도를 위한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잠시 쉴 요량으로 방에 들르는 신도들이 부쩍 많았다. 그녀는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다정했고 친절했다. 셋째 날이 되자 오후에 남편을 따라서 절을 나간다고 했다. 이틀 전 자신만을 보리암에 데려다 주고 남편은 부산의 절에 머물고 있는 상태인데 오후가 되면 남편이 데리러 온다고 했다.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던 그녀에게 올해 나이가 몇이냐 물었다.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서른여섯 살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남편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고 한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다. 어려서부터 늘 병을 달고 살았던 그녀는 생을 포기한 상태로 절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제 남편은 약초와 삼을 캐는 사람이에요. 심마니에요."

대부분 A선생님이 직접 꾸미셨다고 한다.
▲ 실내모습 대부분 A선생님이 직접 꾸미셨다고 한다.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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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남편은 약초와 산삼을 캐는 심마니다. 당시 병약하고 뼈만 앙상하던 그녀를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간호했고 지금은 건강하다 못해 오히려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다. 조심스레 남편의 나이를 물었다.

"저하고는 스물한 살 차이에요. 하지만 나이차를 모르고 살아요."

자신에게 늘 다정하고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덕분에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 얘기를 나누던 중 남편의 전화를 받은 그녀는 언제고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연락처만을 남겨두고 부랴부랴 절을 떠났다.

그녀와 헤어지고 얼마 후 다시 만나기를 청했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다만 집이 몹시 허름하니 실망하지 않을 마음이면 된다고 했다.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후 강원도 원통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다. 버스에서 내리자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한 여자가 뛰어온다. 그녀다.

두 번째의 만남임에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활짝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수수한 시골아낙이다. 차에서 기다리던 그녀의 남편(A 선생님)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와 나는 보고 싶어서 죽을 뻔 했던 사람마냥 주거니 받거니 보리암에서 못다 한 얘기들과 후의 일들을 전했다.

망가진 가스통을 난로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 LPG가스통 난로 망가진 가스통을 난로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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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선생님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달리 짧게 다듬어진 머리에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온화한 이미지다. 어조는 차분하고 조용했으며 두 여자의 대화사이에 간간히 농담 한 마디씩을 섞을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들의 집은 겉에서 보기에도 군데군데 집주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고 아담한 집이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외관에서 보는 이미지와 다르게 아늑하고 깔끔하게 정돈돼있다. 거실로 쓰이는 공간 중앙에 LPG가스통을 개조해서 만든 작은 난로가 있어 안이 훈훈했던 모양이다. 난로 위에 놓여 진 검게 그을린 주전자의 주둥이에서는 김을 모락모락 내뿜고 있다. 입구의 우측으로 부엌이 있고 그 옆으로 안방과 손님방이 이어져 있다. 손님방으로 쓰이는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타고 부뚜막에는 커다란 솥에 온수로 쓰일 물이 끓고 있다. 졸음이 쏟아질 만큼 더 없이 따뜻하고 아늑했다.

미현씨가 차려온 저녁상은 마치 사찰의 상차림과 닮았다. 더덕무침, 냉이무침, 감자볶음, 깻잎절임 그리고 김치와 배추된장국으로 소박하고 정갈했다. 더덕은 산에서 캔 것을 저장해 두었다가 그때그때 먹으며 냉이도 밭에서 캔 것을 데쳐서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꺼내서 무침을 한다. 감자와 배추 무는 땅에 구덩이를 파서 겨우내 보관해둔다.

저녁상을 물리고 셋이 난롯가에 모여 앉았다. 난로 위에 밤을 굽고 땅콩을 굽고 구워진 것들과 함께 차를 마셨다. 미현씨와 달리 좀체 입을 열지 않을 것 같던 A 선생님이 대화를 이어갔다.

4대째 약초와 삼을 캐고 농사를 지으며 산골 외딴집에 살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후반에 암 선고를 받고 병원치료를 받다가 결국 산으로 들어와서 쭉 지내고 있다. 주 수입원은 산삼이나 장뇌삼이지만, 늘 캐는 것은 아니다. 봄이면 더덕 당귀 두릅 엄나무순 그리고 각종 취나물을 체취해서 내다 팔고 여름철이면 주로 야생오미자를 따다가 판다. 일 년 내내 약초나 삼을 캐러 다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집 주변의 밭농사도 함께 짓는다. 쌀을 재외하곤 대부분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심마니들은 부자가 없어요. 딱 먹고 살만큼밖에 벌지를 못해요."

답답하거나 할때면 부부가 함께 자주 찾는 곳이다.
▲ 소설 '은비령'속에 등장하는 설악산의 능선 답답하거나 할때면 부부가 함께 자주 찾는 곳이다.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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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산삼을 캐더라도 중간상을 거쳐 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큰 이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몇 년 전 170년 된 시가 1억2천만 원 상당의 산삼을 캤다. 중간상에게 넘겨지고 일주일 후 산삼을 썩은 채로 다시 그의 손에 전해졌다. 이유는 판매를 목적으로 전시된 동안 사람의 맨손이 닿아서다. 특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손으로 산삼을 만지게 되면 그 즉시 썩는다. 결국 시가 1억2천만 원의 산삼은 175만 원에 팔렸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썩어도 산삼은 산삼이다.

실제로 값이 나가는 산삼은 캐기 전에는 꼭 선몽을 꾸게 되는데 영락없이 꿈에서 본 자리에 산삼이 자리하고 있다. 산삼과 장뇌삼이 있는데 장뇌삼 중에도 산삼의 씨를 체취해서 싹을 틔워 산에서 키운 것은 산양삼이라 부른다. 그리고 인삼의 씨앗을 틔워 산에서 키운 것을 장뇌삼이라 부른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약초나 삼을 캐지 못하는데 기온이 낮은 강원산간지역은 보통 6월까지도 군데군데 눈이 남아있다.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어릴 적 즐겨보던 TV프로 중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도 했고 <TV문학관>을 보는 듯도 했다. 과유불급이라더니 몸에 좋은 음식과 차를 너무 마신 모양이다. 잠은 푹 잤지만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두통이 심했다. 평소 저혈압이 있는데 아무래도 혈압이 오른 모양이다. 잠시 자리를 비우던 A 선생님은 이끼로 감싼 산양삼을 한 뿌리 내보이셨다. 집에 온 손님인데 아픈 모습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거다.

"아무래도 이 삼 임자는 보살님인 모양이네요."

받을 수 없다고 한사코 마다했지만, A 선생님은 이미 마음을 굳히신 모양이다. 혈압은 어느 정도 잡아줄 것이고 앞으로 1년간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직접 농사 지은 쥐눈이콩까지 봉투에 담아주셨다. 원통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주고 버스표까지 손에 쥐어주고서야 "봄이 되면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미현씨 부부는 차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치 거사라도 치른 듯 목욕재계를 마치고 홀로 주방으로 갔다. 가족들 모르게 주방 구석에서 그 쓴 삼을 아작아작 꼭꼭 씹어서 삼켰다. 삼을 먹기 전후로 닭고기, 계란, 된장을 먹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몸에 해롭다 생각되는 모든 음식을 멀리했다. 삼이라곤 홍삼액기스가 전부였던 나로선 화장실 가기도 아까웠다.


태그:#강원도 인제, #심마니부부, #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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