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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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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고소했다. 지난 23일 국정원 감찰실장 명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제출된 고소장에 의하면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비판하면서 표 전 교수가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표 전 교수가 국정원을 비판하면서 언론 기고문을 통해 국정원위기의 원인을 "정치관료가 정보와 예산, 인력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거나 국제 첩보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무능화·무력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썼는데, 이러한 표현이 국가기관인 국정원의 명예를 크게 훼손했다는 취지이다.

처음 이 사실을 접하고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기사를 통해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 팩트'임을 확인한 순간 내가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분노'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국정원 사람들은 '바보 집단'이 아니다. 표 전 교수를 고소한 국정원의 감찰실장 역시 분명 대단히 유능한 사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감찰실장이 표 전 교수를 고소하도록 정책적인 결정을 한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집단의 사람'들 역시 무능할 리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국정원의 고위 간부가 정말 지금까지 있어왔던 법적 사례와 재판 결과를 확인도 하지 않고 재차 '바보들의 행진'을 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처럼 또 다시 전 국민적인 비난을 받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덕적 비난을 넘어 '국가적인 비극'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이 담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의 중대한 역할을 감안한다면 이는 인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왜 국정원은 표 전 교수를 상대로 되지도 않을 고소를 감행한 것일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진실이 아니라 그 너머에 감춰진 의도를 나는 읽고 싶어졌다. 

국가기관의 '명예훼손'소송, 그 결과는?

먼저 사실부터 확인해보자. 명예훼손을 이유로 국가기관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사법부는 지금까지 어떻게 판단했을까.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2건이다. 지난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집회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정운천 장관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 훼손'을 이유로 MBC <PD수첩> 제작진을 형사 고소했다. 또한 이듬해인 2009년 9월에는 국정원이 박원순 현 서울시장(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민사 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할 것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한 2009년 당시 '국정원의 민사 소송' 제기 이유다. 이번에 표 전 교수를 상대로 국정원이 제기한 고소 내용과 거의 흡사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희망제작소의 정부기관과의 사업 계약이 일방 해지되고 또한 모 기업과 약속했던 후원 사업이 무산되는 과정에 국정원의 부당한 영향력이 있었다는 의혹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다. 그러자 국정원은 사실이 아닌 주장을 했다며 박원순 상임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제기된 소송의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가기관의 '완패'였다. '국가기관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들 기관의 주장에 대해 사법부는 '모두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피디수첩'과 관련한 판결에서는 "보도 내용이 공직자들의 명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악의적인 공격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명예훼손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했고, 박원순 상임이사를 상대로 한 국정원의 민사소송 판결에서는 "국가기관의 업무 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는지 여부는 국민의 감시 대상이므로 이런 감시와 비판 기능은 보장돼야 한다"며 역시 패소 판결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비슷한 사례가 이미 패소 판결을 받았음에도 국정원은 왜 표 전 교수를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는 것일까?  국정원이 노리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비판의 싹을 없애버리겠다는 국정원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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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전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고소 행위에 대해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 역시 가해자와 또 다른 연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트위터 계정에 국정원의 그릇된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려는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 번째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 들었던 '분노'의 감정을 비집고 나온 그것은 '공포'였다. 두려움이었다. 그렇다. '국정원이 표창원 전 교수를 고소한 진짜 의도가 바로 이것이었구나'하는 '오싹한' 깨달음이었다.

국정원이 정말 형사 고소한 대상은 표 전 교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은 표 전 교수에게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인' 국민들에게 '그만 그 입 다물고 얌전히 살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짧지만 가장 확실한 방안이 바로 '표 전 교수를 상대로 한 겁주기식 형사 고소'인 셈이다.

여전히 그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냐를 두고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수원에서 발각돼 망신을 사고 있는 '진보인사 미행 사건' 등을 통해 국정원은 많은 국민들 속에 '한심하고 미련한'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 표 전 교수의 지적처럼 '무능하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감이 결국 표 전 교수 고소건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정부와 그 국가기관에 대해 무능하다고 '비판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비판의 목소리가 합리적이라고 한다면 국가기관은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하게 수용하면 되고, 그 비판이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면 그 역시 국민들이 판단하면 그만이다. 국가기관이 지금처럼 비판을 억압하고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것은 독재의 전형이다. 국정원의 표창원 전 교수를 상대로 한 고소는 그래서 비극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국정원은 지금 당장 표창원 전 교수에 대해 고소를 취하해야 한다. 무능하고 부끄러운 국정원의 모습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태그:#표창원, #비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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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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