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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장남 된 지인이 짓고 있는 어머니 집입니다.
 졸지에 장남 된 지인이 짓고 있는 어머니 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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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고 있다."

막걸리를 앞에 두고 이야기해서였을까. 오랜만에 만난 지인, 뜬금없는 말을 건넸습니다. 집이 없으면 모를까, 본인 소유 건물과 아파트가 있는 그가, 집을 짓겠다니... 필히 무슨 사연이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지난해 4월에 형님 상을 당했습니다. 형님은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급하게 손을 쓰긴 했지만 무의미하게 그길로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고인이 됐습니다. 이후 그는 얼떨결에 '신분'이 상승됐습니다. 보잘 것 없던 차남에서 한 집안의 장손으로 말입니다. 장손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조선시대로 치자면 이건 출세 중에 출세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현실은 냉엄했습니다. 사업하던 형이 쓰러지자 사방에서 빚 독촉이 빗발쳤습니다. 선산과 밭 이외에도 어머니께서 사시던, 태를 묻고 자랐던 집마저 날아가게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형님이 남긴 빚은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겨우 선산과 밭 등은 지켰으나 집은 건질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행이 이모가 임시 방편으로 집을 대신 구입해 준 덕에, 집에서 쫓겨날 위기는 모면했답니다. 형편 풀리면 다시 그 집을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피붙이가 무섭다더니, 이모가 이럴 줄 몰랐어. 남보다 더해."

상황이 어느 정도 풀려가는 듯하던 지난해 말, 그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그가 힘들게 토해낸 사연인 즉, 사정이 나아져 이모에게 집을 다시 사려는데 이모가 시세보다 더 비싸게 집값을 부렀다는 것. 이모에게 사정을 말해도 나아지는 건 없었답니다.

그는 "세상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세상이 무서운 걸까요, 돈이 무서운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모는 마침내 최후 통첩을 그에게 날렸습니다.

"돈을 더 얹어서 집을 사든가... 아니면 다른 데 팔 테니 알아서 해라."

그는 겨우 이모를 달래 위기는 넘겼으나, 문제는 당장에 챙겨야 할 돈이었습니다. 부담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이 남에게 넘어가는 꼴은 지켜볼 수 없었답니다. 우여곡절을 넘긴 그는 한탄했습니다.

자식 노릇, 장남·차남-남성·여성 구분이 어디 있을까

"서울 사람은 피붙이고 뭐고 없는 거냐? 돈 앞에서는 피붙이가 남보다 더하다."

서울 사람이 문제가 아니죠. 돈 앞에서는 부모고, 자식이고 다 필요 없는 냉정한 현실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천륜을 거스르는 소식 앞에 '어쩌다 요지경이 됐을까'라며 비탆던 심정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만한 세상이니까.

'모든 문제의 출발은 자신이요, 그 해결책 또한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성현들의 가르침입니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세상이 어디 그렇나요. 사람에 흔들리고, 돈에 흔들리는 마련. 그래서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 아닐까요. 결론은 남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이라는 겁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요.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쓰러져 가던 집을 헐고 어머니의 새집을 짓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집은 3월에 완성될 예정입니다. 그는 졸지에 맡게 된 장손이자, 장남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외동이 많은 현실에서 장남과 차남,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어쨌거나 그들 부부가 기특합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옆에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잘했다. 장하다. 부럽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집, #장남,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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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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