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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는 처음으로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택시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는 처음으로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택시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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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실천 법안'에 현직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가 대중교통법 개정안(택시법)을 국회에 재의결하라고 요구한 상황에서 여당은 어떻게든 '신·구권력의 정면충돌'로 비화되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을 다시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한 것. 국회 재의결에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222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의요구를 의결한 데 대해 정부는 입법취지와 재정부담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브리핑에서 "대중교통이란 대량수송이 가능한 교통수단이 일정한 노선과 시간표를 갖고 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택시는 개별 교통수단으로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며 "택시법은 교통혼잡 및 환경오염 방지, 에너지 절감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려는 대중교통법의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다"고 이유를 밝혔다.

임 실장은 이어 "택시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재정부담이 수반되는 법률"이라며 "특히 대중교통지원을 위한 재정부담의 대부분은 지자체가 부담하고 있고 시·도지사협의회와 대부분의 시·도가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법 처리와 관련해 각료들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국무회의 결정은 사실상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무회의의 재의요구안을 재가해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

정부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각종 지원을 가능하게 대중교통법을 개정하는 대신, '택시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는 대안을 낼 예정이다. 국토부가 낼 특별법 제정안은 ▲ 택시업계에 대한 재정지원 ▲ 택시 총량제 실시 ▲ 법인택시 구조조정 ▲ 기사에 대한 운송비용 전가 금지와 장시간 근로 방지 ▲ 조세감면 ▲ 복지기금 조성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택시법') 개정안을 거부한 가운데, 22일 오전 중구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택시들이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택시법') 개정안을 거부한 가운데, 22일 오전 중구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택시들이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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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재의결 추진"... 여당은 "정부 특별법 내용 보고 판단"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자료사진)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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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중교통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 것이어서 당장 여당에서 거부권에 대한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여당보다는 야당의 반발이 컸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거부권 행사는 사회적 합의를 깨고 갈등을 촉발시킬 뿐"이라며 이 대통령을 비난한 뒤,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에 따라 반드시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 사안은 이명박 대통령도 5년 전에 실정을 파악하고 공약한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후보자 시절 여러번 구두 공약을 했다"며 "박 후보 당선 이후 의원 222명이 법안에 찬성해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선인 공약 실천의 주요 주체 중 하나인 여당이 다소 어정쩡한 입장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정부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지만, 정부가 낼 택시지원법의 내용을 검토해 정부 대체입법을 받아들이든지, 국회로 돌아온 택시법을 재의결할지 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정부는 특별법으로 대체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니 특별법 내용을 보고, 이에 대해 택시업계나 민주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어봐야 한다. 이후 최종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며 "국회의원 222명이 찬성해서 통과된 법을 (정부가) 어지간하면 수용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어정쩡한 태도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의 재의결 요구사태가 여론에 '뜨는 권력'과 '지는 권력'의 정면충돌로 여겨지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 친이명박계 새누리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번 일로 신·구권력이 공약 이행을 두고 정면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의 재의 요구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는 걸 기록에 확실히 남기게 됐고,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니 일단 정부가 낼 특별법 내용을 봐야 국회로 돌아온 법을 재의결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내는 특별법의 내용에 박 당선인의 공약 내용이 얼마나 반영되는지가 대중교통법 재의결 여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고, 여당과 정부가 타협점을 찾으면 들어설 권력과 물러날 권력이 서로 체면을 세우는 선에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택시업계 즉각 반발, 25만대 상경시위 예고

여당이 신·구권력의 체면살리기는 방안을 고민하는 동안 이 법에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은 총파업을 불사하며 반발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21일 비상대책회의를 통해 정부가 대중교통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총파업을 벌이기로 한 바 있다.

이날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들 택시단체는 "대책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며 "오늘 오전 중으로 파업 날짜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총파업이 현실화되면 전국의 택시 25만대가 서울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태도 예고됐다.

대중교통법 개정안에 반대해온 버스업계는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진 않았지만 택시법 재의결이나 정부가 낼 특별법 내용에 따라 다시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국버스운송조합사업연합회는 지난해 12월 대중교통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앞두고 파업을 예고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태그:#택시법, #박근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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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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