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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새벽 6시 이후 정지된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과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이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둥지 틀고 살던 자신들의 삶터를 지키고 싶어, 살아보겠다고 망루에 올랐던 이들은 삶터에서 내쫓기고 죽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자들은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갔다.

남일당 망루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던 철거민들
▲ 가운데가 김재호씨 남일당 망루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던 철거민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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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는 1956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고 성년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시계 기술을 배우고 1984년 용산에서 터를 잡아 진보당이라는 이름의 금은방을 개업했다. 이후 아내와 딸과 살던 평범한 소시민이다. 2007년 도시정비 사업으로 가게가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동료와 함께 망루에 오른다. 망루에 오른 지 하루만인 2009년 1월 20일 새벽 6시 특공대의 강제진압으로 용산참사의 비극이 일어난다. 남일당 강제 진압 현장에서 옥상에 매달린 채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김재호씨는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죄목으로 5년 형을 선고받고 3년 9개월 구속되었다가 가석방되었다.

김재호씨가 딸에게 보낸 그림편지를 엮었다.
▲ 꽃피는 용산 김재호씨가 딸에게 보낸 그림편지를 엮었다.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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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용산>은 사랑하는 외동딸과 생이별한 김재호씨가 당시 아홉 살이던 딸에게 3년 9개월 동안 그려 보낸 400편의 만화 편지를 엮은 것이다. 금은방을 경영하던 재호씨는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전문적으로 만화를 그려본 적은 없다.

딸을 무척 사랑해서 아내 대신 엄마처럼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자장면을 시켜 먹여 딸바보 아빠라 불리던 재호씨였다. 자상한 아빠였던 재호씨는 감옥에서 딸에게 긴긴 편지를 써 보낸다. 어느 날 면회 온 아내로부터 초등학생인 딸이 편지가 너무 길어 읽기 힘들어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재호씨는 만화를 좋아하는 딸에게 긴 편지 대신 그림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김재호씨는 1345일의 수감생활 동안 구치소에서 팔던 10가지 칼라 펜을 이용해 총 400여 통의 그림편지를 딸에게 그려 보냈다.

그의 그림편지에는 단란한 가정을 해체시키고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를 생이별 시킨 사회 부조리 고발, 억울한 철거민의 마음, 아내와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 감옥 밖 생활에의 추억이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담겨있다.

아빠를 유난히 따랐던 외동딸 혜연은 감옥에 있는 아빠를 면회 왔다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단 10분간 이야기해야 하고 아빠를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혜연의 '아빠를 단 한 번만 만져봤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은 독자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혜연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명랑하고 자신감 넘치던 혜연은 아빠인 재호씨가 자기를 버리고 멀리 가버렸다는 생각으로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고 우울하고 소심한 아이로 변했다. 혜연만이 아니라 유가족과 자녀들 또한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 내상을 안고 산다.

북콘서트에서 박래군, 김재호, 김미화씨가 토크를 하고 있다.
▲ 박래군. 김재호, 김미화 북콘서트에서 박래군, 김재호, 김미화씨가 토크를 하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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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남일당 망루에서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특공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재호씨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지만 그날로 잡혀가 감옥에 가야 했다. 감옥에 갇힌 철거민 가족이나 졸지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들은 강제 진압당한 철거민들이 왜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가야만 했는지, 망루에 오른 다섯 명의 철거민이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용산참사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사실 앞에 더 이상 무슨 설명을 덧붙여야 할까.

2012년 10월 26일 가석방으로 출소한 재호씨는 출소하고 나니 아직도 감옥에 남아있는 6명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고 전한다. 남일당 망루에 올랐던 용산참사 당사자인 재호씨는 자신의 책 <꽃 피는 용산>이 생이별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사랑하는 딸 혜연에게는 치유가 되기를, 2009년 1월 20일 새벽, 악몽의 시간에 정지된 채 용산참사 4주기를 앞둔 유가족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아직도 감옥에 있는 동료 6명에게는  조속한 석방이 이뤄질 수 있는 작은 희망의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추천사를 쓴 박래군 (용참사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도 용산참사 당사자인 김재호씨의 말 걸기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 수많은 이들이 용산참사의 실체를 이해하고 그 진상을 규명할 힘을 모아내도록 불씨를 지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재호씨 바람대로 <꽃 피는 용산>을 통해 멈춰 선 죽음의 자리에서 희망의 꽃이 피어나길 바란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국가 폭력이 저지른 용산참사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진실이 규명되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꽃피는 용산-딸에게 보낸 편지/ 김재호 지음/ 서해문집/16,000원



꽃피는 용산 - 딸에게 보낸 편지

김재호 지음, 서해문집(2013)


태그:#꽃피는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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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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