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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눈위에서 노는 큰 아이의 모습.
 쌓인 눈위에서 노는 큰 아이의 모습.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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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내가 사는 아이다호의 보이지시에 눈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보이지시 교육청에서는 밤새 내린 눈 때문에 통학이 어렵다고 판단, 아침 일찍 방송국과 학교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이 지역의 모든 학교가 휴교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사방에 엄청나게 쌓인 눈때문에 이미 마음이 설렌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매일 아침 방송되는 NBC '투데이쇼'에서는 보스턴에서 작년보다 10배나 많은 독감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또 의학 전문기자들이 병원을 찾아가 독감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의사와 간호사들과 인터뷰했다. 미 전역에 독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며 빨리 독감 백신을 맞으라고 독려했다.

독감 백신 맞는 방송 진행자들

급기야 NBC '투데이쇼' 진행자 네 명이 모두 나란히 앉아서 간호사로부터 독감 백신을 맞는 모습이 나왔다. 그들의 익살스로운 진행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올해 우리 가족 네 명 모두는 독감 백신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NBC 투데이 쇼의 진행자 네 명이 나란히 앉아서 독감 백신을 맞는 장면.
 NBC 투데이 쇼의 진행자 네 명이 나란히 앉아서 독감 백신을 맞는 장면.
ⓒ 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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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질병통제예방 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이하 CDC)에 따르면 11월 중순 현재 전체 미국인의 37%인 약 1억 1200만명이 독감 백신을 맞은 것으로 집계됐다. CDC에 따르면 이번 독감 시즌을 대비해서 약 1억 3500만대의 백신(주사약)이 생산됐고, 이중 1억 2800만대는 병원과 약국, 보건소 등으로 공급됐다.

<아이다호 스테이츠맨>에 따르면 지난해 독감 시즌에는 미국 아이들의 52%가, 어른의 경우에는 단 39%만이 독감 백신을 접종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CDC에서 매우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1월 5일 현재까지(최신자료), 각 주마다 독감이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를 보여주는 지도.
 CDC에서 매우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1월 5일 현재까지(최신자료), 각 주마다 독감이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를 보여주는 지도.
ⓒ 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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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0개주 중 47개주에서 독감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주에서는 그 독감의 확산 속도가 다소 감소됐다고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독감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13일 현재 아이다호주의 경우, 8명의 노인들이 플루(독감) 관련 질병으로 사망했고, 의사들은 독감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다호 보건부의 니키 포빙 대변인은 "지난 몇 년간 보았던 것보다 올해 독감이 더 심각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이다호의 경우 독감 백신은 부족하지 않으며 공급 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아이다호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2003년-2004년에 28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이 주에서는 매해 독감으로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TV, 신문, 인터넷 등에서 독감의 심각성을 쉴새 없이 접하다보니 이웃에서 독감 때문에 학교에 결석한 아이들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같은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들 중 1학년짜리 3명과 유치원생 1명이 독감 때문에 학교에 수일째 결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교 다음 날 학교에 갔다온 아이들에게 결석한 아이들이 없냐고 물으니,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한 두 명씩의 반 친구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의 친지들도 미국 독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뉴스에서 봤다며 카톡과 전화 등으로 우리 가족을 걱정한다.

지금이라도 독감 백신 맞아? 말아?

상황이 이러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보통 11월에 백신을 맞는다는데, 1월 중순이 다된 지금이라도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게 아닐까? 백신의 효과는 2주후부터 나타난다는데,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일단 아이들이 다니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가 먼저 두 아이의 생년월일을 확인하더니 일주일 후에야 주사를 놔줄 수 있다고 했다. 꼭 백신을 맞아야 하냐는 내 질문에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대답만 간단히 해줬다. 간호사의 말대로라면 우리 아이들은 적어도 3주 후에나 면역 체제를 갖춘다는 건데, 의사와 약속을 하고 일주일을 기다리고 애들을 학교 수업 중에 빼와 병원에 데려가고 다시 학교에 데려다주고 등등이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예약없이 바로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 싶어 동네 약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눈여겨봤던 '독감 백신' 광고판을 단 약국을 중심으로해서.

동네 약국들 앞에 나와있는 독감 백신 광고판
 동네 약국들 앞에 나와있는 독감 백신 광고판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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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점으로 그 중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월그린(Walgreens)지점에 전화를 했다. 약사는 6살인 둘째 아이에게 줄 주사약은 월그린에서 취급하지 않고,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줄 수 있는 '고농축' 백신은 있다고 했다. 그러나 9살인 첫째와 그외 연령대에게 줄 주사약은 다 떨어졌다며 다른 지역의 월그린으로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그래서 집에서 조금 더 떨어진 월그린으로 전화를 했더니 역시 약이 다 떨어졌다며, 6살 아이까지 독감 백신을 맞히려면, "경쟁사이긴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라이트 에이드(Rite Aid)에 전화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다행히 집 근처의 라이트 에이드에서는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주사약이 남아 있었다.

올해 CDC에서는 독감 백신의 효과가 약 62%정도라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서 독감에 걸릴 10명 중 6명에게는 백신이 효과를 나타내고 4명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의학 전문가들은 올해 독감 백신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좋은 편"이라고 평가하며, 생후 6개월이 넘으면 백신을 맞을 것을 권고한다. 백신으로 독감을 반드시 예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의 강도는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폐렴이나 독감으로 인해 생명에 지장을 주는 질병까지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작년에 우리 가족 4명은 모두 독감 백신을 맞았다. 나와 남편은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식으로, 아이들은 주사로 맞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감기에 걸렸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차례. 그 중에는 약한 감기도 있었고 독감이라 해야할지 말지 의심스러울 만큼 심한 감기도 있었다.

이번 겨울 아이다호도 한국처럼 지난해와 달리 매우 춥다. 작년12월 중순부터 눈도 많이 내리고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영하 10도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리 가족 모두 약간의 기침이나 콧물을 흘리는 정도를 제외하면 다행히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큰 아이는 매주 스키장에서 땀이 나도록 스키 훈련을 받고, 나와 남편도 추운 날씨에 상관없이 자주 밖에 나가 운동을 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특히 환절기면 언제나 꼭 감기에 걸려 애를 먹이던 작은 아이도 한 두해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적게, 감기에 걸려도 덜 앓고 금방 털고 일어난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백신에 대해선 국가에서 정한 일정에 따라  잘 맞고 있지만, 올해 독감 백신에 대해 나는 그리 심각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들이 너무 많은 예방 주사를 맞는 것은 아닐까라며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나만의 감'에 의존하면서 말이다.

11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게일 콜린스의 칼럼
 11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게일 콜린스의 칼럼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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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백신"

지난 11일 <뉴욕타임스>에서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인 게일 콜린스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독감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에 대해 "지독한 독감에 대한 경고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독감 대비를 위해 얼마 만큼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줘야하고, 얼마 만큼 겁을 줘야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매 겨울 독감을 겪어내고 있다"고 적었다.

그녀는 뉴욕시의 보건 책임자인 토마스 팔리의 말을 빌려 "우리는 매년 유행성 독감을 겪는다"며 신문에 자극적인 제목이 붙는다면 그것은 공무원들이 "백신을 맞으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려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콜린스는 또한 지난 1월 10일, 뉴욕의 앤드류 쿠오모 주지사가 백신 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좀 늦은 거 아닌가? 여러분들은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의 하나인 뉴욕 주지사가 독감 주사를 11월 쯤 이미 맞았을 것이라 믿고 있지 않았나?"고 비꼬았다.

사실 올겨울 독감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이 100명을 넘었다는 현실 앞에서 콜린스같은 입장을 공공연하게 내보이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칼럼에 대해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한 독자는 "많은 주제에 대해 콜린스가 가진 유머와 관점을 나는 항상 즐겨왔다. 하지만 3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이번 독감 시즌에 병에 걸린다는 사실 앞에서 이번 칼럼은 재밌지 않다"고 소감을 적었다.

이틀전 뉴욕대학교의 의료윤리학 책임자인 아서 캐프란은 NBC뉴스에서 "독감에 대해 우리의 최선의 방어책은 백신이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백신 접종을 거부한다. 어떤 이들은 백신이 잘 듣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백신의 성분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저 백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그냥 운에 맡기겠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백신은 단지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며 백신 접종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는 또한 "백신에서 효과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종을 하면 그 만큼 독감이 퍼지기 어렵기 때문에 백신 접종은 내가 사는 지역사회에 유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신의 혜택을 얻지 못하는 경우란 몸이 허약한 노인들, 항암 치료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경구용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사람들로 이들은 이미 면역이 약해진 상태여서 백신에 대한 반응으로 충분한 양의 항체를 만들기 힘들다고 캐프란은 설명했다.

다른 백신과 달리 독감 백신은 매년 새로 맞아야 하고, 한 시기에 접종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몰려 주사 한 대 맞기도 불편하고 피곤하다. 그러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플 수도 있고 집단 면역이 커지면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도 적어질 것이란 백신 전문가의 지적을 흘려 듣기는 어렵다.

이번 독감 시즌은 2월이 지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일이라도 라이트 에이드를 방문해야 겠다.


태그:#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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