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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내인생이 바뀌는 대학?
▲ 내인생을 바꾸는 대학 또는 내인생이 바뀌는 대학?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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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치자.

"미국의 유명대학 이름 세 개만 말하시오."

이 정도의 퀴즈는 거저먹는 문제쯤 되겠다. 동부의 아이비리그대학 이름이야 8개 모두를 알진 못해도 몇 개는 안다. 하버드나 예일 , 코넬 정도는 댈 수가 있을 거다. 첫 번째 정답에 만족하는 사이 두 번째 질문이 날아올 수 있다.

"그럼 말보로, 뉴 리드, 세인트존스란 대학 이름은 들어보았는가?"

자, 이제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고? 처음 듣는다고? 사실은 나도 잘 몰랐다. 나 역시 책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 -로렌 포트>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된 이름들이다. 오늘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할까 한다.

리뷰에 앞서 방어막을 쳐야겠다. 이 글은 심오한 내용이 없다. 거창하게 미국과 한국교육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그럴 능력 자체가 없다. 그냥 최근에 읽은 책을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메모하는 글이다. 자. 출발한다.

이 책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그것도 미국. 책제목 밑에 부제가 붙어있다. "작고강한 미국대학 40"이라 되어있다. 메이저 대학이 아닌 알토란 같은 작은 대학 탐방기임을 알 수 있는 제목이다.

요즘은 해외 유학이 뉴스도 되지 않는 세상이다. 유학을 떠나는 나라도 다양해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뿐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 , 독일과 같은 곳으로도 많이 다녀오는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미국 유학파 외에도 유럽 유학파들도 제법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신자유주의 분위기가 강한 미영 지역의 미국유학파는 이미 한국에 차고도 넘친다.  너무 많아서 문제다. 소수이긴 하지만 유럽파들이 가세하면서 조금 숨통은 트이는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미영 지역 대학보다는 유럽의 국립대들에 더 호감이 간다. 유럽의 대학들은 서열을 없애고 큰 틀에서 평준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파리 1대학, 파리 2대학, 3대학처럼 대학이름 뒤의 숫자는 서열이 아니라 각 대학의 주력분야와 특성을 나타낼 뿐이다. 너무 부러워 배가 아플 정도다.

우리가 대학 서열을 없애는 일은 언제쯤 가능해질까?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우린 매년 70만명 정도를 성적에 따라 줄 세워 입학시키는 나라다.

19세에 던진 입학원서의 서열이 남은 평생을 결정한다. 쭈~ 욱. 첫째는 이렇다. '서울대' 냐 아니냐?  첫째 단계에서 미끄러졌으면 두 번째 단계를 타야한다.  그래도 '스카이' 안에는 드느냐 아니냐? 두 번째 단계에도 속하지 않으면 세 번째 단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나마 '인 서울'이냐 아니냐?, 하는 거다.

세 번째 단계에서도 놓쳤으면 마지막으로 매달려야 할 게 있다. 그건 최소한 '수도권'이냐 아니냐? 하는 절체절명의 단계를 말한다. 이마저도 아니면 쓸쓸히 '기타잡대'로 분류되는 대학엘 가야한다. 가감 없는 한국의 현재다.

한국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급격히 우울해지니까. 다시 책이야기로 돌아가자. 유럽은 건너뛰고 미국이야기만 하자. 미국도 유럽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의 활로를 찾아서 운영되고 있는 대학들이 있다 한다. 그게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작고 강한 미국대학 40'의 이야기이다.

패자부활전이 있는 미국의 대학

이 책을 보면서 내 시선을 가장 강하게 끈 것은 영재들만 대학의 혜택을 누리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영재들이 선호하는 학교들이다. 고등학교때 A를 받은 학생들이 1차적으로 들어가는 곳은 역시 하버드나 예일과 같은 학교들이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은 고교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소위 명문대에만 일색으로 진학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외의 상당수 우수 학생들이 아이비리그 외의 작은 규모의 대학들에 기꺼이 진학한다. 또한 고교 때 우수한 성적을 받지 못한 중하위권의 학생들을 위한 장치가 있다. 대학진학을 원하고 진정으로 다시 공부해 보고픈 학생들을 받아주는 우수한 작은 대학들이 존재한다는 것.

여기서 잠깐. 우리와 다른 미국의 대학 체계를 살펴보자. 미국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 명문대학과 같은 종합대학과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작은 대학들로 나눠져 있다 했다. '작은 대학'이란 우리로 치면 단과대학 정도의 규모의 교양학부대학들을 말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에서는 19세때의 겨울에 만세를 부르는 아이들과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 두 종류로 나뉜다. 또한 우리는 19세때 결정된 서열이 졸업 후의 취업과 결혼은 물론이고 여생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걸 안다.

미국의 대학시스템은 다르다. 고교때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학생들도 패자부활의 기회가 남아있다. 작은 대학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아이비리그에 간 다른 학생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드물지 않게 보여준다.

통계 수치로도 그렇다.  작은 대학 졸업생들의 각종 진로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대학원 진학율,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률, 취업 후 진급성취도, 문화예술 NGO분야 지도자의 수, 유명기업 임원수 배출비율 등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궁금해진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종합대학들은 그 유명세에 비해 큰 결점을 가지고 있다. 90년 이후 이들 대학은 대부분 연구중심대학으로 변모했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은 학부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강의보다는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말은 연구성과가 교수의 실적이 되고 그것이 교수경력과 진급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가르치는 일 보다 연구에 목을 매달게 되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교수들은 학부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을 강사들이나 조교들에게 위임해버렸다. 큰 기대를 안고 입학한 우수한 성적의 대학생들은 유명한 교수로부터 직접 강의를 들을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작은 대학들은 달랐다. 강의실의 학생과 교수의 비율이 10대 1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니 열의 있는 교수들로부터 직접 강의를 받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이 대학들은 연구중심의 대학이 아니다. 강의 중심의 대학이다.

학생과 교수는 일상적으로 미팅을 가지고 상담, 글쓰기 지도를 받는다, 수시로 발표지도도 받는다. 협업도 가능해서 커리큘럼을 짜는 문제부터 학생들은 교수와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격차를 줄이는 열쇠, 교양 고전 공부

고교 학점 면에서 중위권의 학생들, SAT 점수가 낮은 학생들도 이들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다. 심지어 학습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받아들여 훌륭한 졸업생으로 배출하거나 대학원에 진학시키는 학교도 많다.

40개 대학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학교를 운영한다. 비슷한 대학이 없다. 비슷한 점이라고는 캠퍼스가 지나칠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는 것. 아! 부러워라. 그리고 학생수가 300명에서 1500명 정도로 작다는 것 정도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공통점도 있다. 교양 고전을 많이 읽게 하고 토론하게 한다는 것, 또 지독할 정도로 글쓰기를 많이 시킨다는 게 그 공통점이다. 교양고전 공부는 기적을 일으킨다. 생각해보자. 세계의 석학과 천재들이 남긴 고전을 공부하는 일은 신비로운 체험이다. 고전은 당대의 사회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천재들의 기록이다. 그들과 대화하고 논쟁하는 과정은 인식의 전환, 지평의 전환을 가져온다. 나아가 사고력과 인지능력, 논리력 그리고 상상력의 놀라운 성장을 가져온다.

좀 단순하게 말하면 미국의 힘은 아이비리그가 아니라 이 작은 학교들에서 나오는 것 같다. "문제투성이의 미국이 무너지지 않는 건 그나마 연방대법원과 대학 덕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또 다른 비결, 글쓰기

조금 전 글에서 이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지독할 정도로 혹독한 글쓰기를 시킨다고 했다. 열정 있는 젊은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첫째도 둘째도 글쓰기를 강조한다. 심하게 말해서 글쓰기가 수업의 처음과 끝이다.

학생들은 각 과목마다 교수들과 함께 교안을 작성하고 발표문을 다듬는다. 공동으로 글쓰기를 연마하고 각 개별로 과제물을 글쓰기를 통해 점검 받는다. 각 학년마다 교수와 학생들은 작은 쪽지부터 리포터와 논문을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적절한 단어를 다루는 방법과 문장을 꾸미는 요령을 익힌다. 생각을 다듬는 법도 단련 받는다. 짧은 양의 글부터 많은 분량의 글까지 교수는 학생을 내버려두지 않고 훈련시킨다.

졸업할 때가 되면 자신의 논지를 가지고 교수들을 설득하는 내용의 논문으로 교수를 압박하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4학년쯤 되면 교수와 공동저자로 나서기도 한다. 어떤 때는 공동 발표자로 나서기도 한다. 단 4년의 트레이닝으로 말이다. 이 모두가 지독한 글쓰기의 과정이 가져온 결과이다.

이들 대학의 경우 대학원 진학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 60%이상이다. 대부분 아이비리그 대학원에 진학한다. 아이비리그 대학원은 이들 작은 대학 출신 학생들을 선호한다. 그들은 우수하게 공부하고 준비해서 대학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공부의 자세를 갖추고 들어오기 때문에 대학원에 들어와서 성취도가 높다. 성취도가 높다보니 학생들 자신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이런게 선순환이고 진정한 패자부활전인 것이다.

통계에 의하더라도 아이비리그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비해 이들 작은 대학들의 학교 만족도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 많은 작은 대학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가게 된 건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제가 달라지고 성공하게 된 건 바로 대학을 통해서 였죠."
"졸업을 하면 더 이상 교수님과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워요."

그만큼 학생과 교수의 관계는 긴밀하다.

우리 집 딸들의 대학입학을 앞두고...

미국에는 많은 작은 대학이 있다. 저자는 그 중에서 우수한 그리고 제대로 된 교육철학이 있는 40개 대학을 뽑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졸업생들의 기부 비율이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능가하는 대학이 많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게 폭넓은 장학금 혜택을 주고 있고 생활자금까지 주는 대학이 많다. 우리의 현재 실정과 또 대비되는 순간이다. 엄청난 대학등록금 때문에 대출자가 되어버리는 우리네 대학생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설사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대학에서 받을 수 있다면 덜 억울할 거다. 이미 우리네 대학은 취업준비 기관으로 변한 지 오래다. 스펙을 쌓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커다란 고시원이 되어버렸다.

우리 집에도 몇 년 안에 대학을 가게 될 두 딸이 있다. 대학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딸들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딸들이 이런 대학을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책장을 쉽게 넘기기가 어려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작은 대학들이 있다면 정말 망설임 없이 두 딸을 보낼 수 있겠건만 아직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슬슬 머리가 아프고 성질이 나기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 - 작고 강한 미국 대학 40

로렌 포프 지음, 김현대 옮김, 한겨레출판(2008)


태그:#내인생을 바꾸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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