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9년 1월 20일 새벽의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4년이 흘러도 그 시간에 묶여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평범한 주부는 '거리의 시위자'가 됐고, 중국집 사장은' 테러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돌아왔다. 4주기를 맞아 <오마이뉴스>는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의 실제를 살펴본다. 먼저, 경찰을 죽였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0월 가석방된 김재호, 김대원씨를 만났다. [편집자말]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3년 9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된 김재호(57)씨. 그는 출소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떴다. 오랜 교도소 생활로 새벽 기상이 몸에 밴 것이다. 그는 곧장 용산의 남일당 터를 찾았다. 그 자리에는 용산참사의 현장은 사라지고 2m 높이의 철제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펜스 안 공터는 임시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펜스에는 이곳에서 비참한 죽음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우리 금은방이 이쯤 되겠구나 짚어봤어요. 그런데 공허함이 밀려왔어요. 그날 새벽에 흐르던 긴장감, 던져지던 화염병, 경찰특공대 모두 다 사라졌어요.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그날 아침에 체포됐으니… 3년 9개월이 지나 다시 남일당 자리에 섰는데 믿기지 않았어요."

벌써 4년이 지났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용산참사. 참사 당일 구속돼 4년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된 김재호씨와 김대원(43)씨를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문 옆에 설치된 농성촌에서 만났다. 천막 안에는 '용산참사 진상규명', '철거민을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 등 집회, 기자회견에서 쓰이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참사로 희생된 양회성·이성수씨의 유가족, 김영덕·권명숙씨도 천막안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경찰을 죽였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힌 셈이다. 하지만 이날 만난 두 사람은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가졌다. 인터뷰 내내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이를 드러내면서 웃기도 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와 김대원씨(43)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재호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김대원씨는 13년간 중국집을 운영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을 벌이다 수감됐던 철거민 김재호씨(57)는 만기 3개월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가석방됐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김씨는 용산 4구역에서 2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중국집 사장과 손님으로 만나 이제는 '호형호제'

참사가 있기 전, 두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금은방 '진보당'을 운영하던 재호씨는 중국집 '공화춘'을 운영하던 대원씨에게 전화를 걸어 짜장면을 시켜먹곤 했다. 철가방을 들고 대원씨가 배달가면 재호씨는 짜장면을 맛있게 비벼 어린 딸에게 먹였다. 

2006년 4월, 두 사람의 가게가 자리 잡은 용산구 한강로3가 63∼70번지 일대가 용산4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광풍이 불어닥쳤다. 권리금은커녕 보상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쫓겨날 판이었다. 2008년 상가 세입자들은 대책위를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동지가 됐고, 참사로 같은 날 구속되고 같은 날 출소하면서 이제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함께 구속된 나머지 6명은 아직도 각기 다른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두 사람은 출소 후 이들을 한 명 한 명 면회했다. 기쁘게 자신을 맞은 한 사람은 '남일당 헐린 데 가서 천막 쳐 놓고 시위 안 하냐'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듣는 두 사람의 마음은 달랐다. 감옥에 묶여 있는 동지를 대신해 진상규명 촉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에 앞장서고 싶지만 가석방 기간이라 조심스럽다. 두 사람은 오는 19일이 되면 형 만기가 돼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수감생활은 쉽지 않았다. 구속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재호씨의 딸은 우울증에 걸렸다. 아내가 생계를 위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갑자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딸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딸의 소식을 들은 재호씨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딸이 보기 쉽게 만화(이 편지를 묶은 책, <꽃피는 용산>(서해문집)이 1월 중 출간될 예정)도 그렸다. 그리고 출소하는 날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여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이 흥행하고 있다는 신문 보도였다. 잊히는가 싶던 용산참사가 다시 화제가 되면서 구속된 이들이 사면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대원씨는 감옥을 나가게 되면 꼭 이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형 만기가 다 되도록 <두 개의 문>을 관람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대원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내 감정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4주기 전에는 꼭 봐야죠.(웃음)"

지난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철거민들을 제압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철거민들을 제압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수십 년간 쌓아온 상권...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재개발 광풍


당시 두 사람은 재개발 동안 인근에 임시 상가를 지어달라고 요구하면서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싸웠다. 재호씨는 29년 동안, 대원씨는 17년 동안 일궈온 상권을 하루아침에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의 이주는 그들의 생계 기반인 단골과 거래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세입자들은 조합이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제시하면서 협상도 없이 철거를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 재호씨와 대원씨는 조합의 행태에 분노했다.

"조합에서 원체 터무니없는 보상금을 제시하니까 그 돈으로는 다른 곳에서 자리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목숨 걸고 싸우는 거죠. 열심히 살아서 단골도 모으고 상권을 키웠는데… 억울한 거죠."

"건물 주인들은 몇 곱절의 개발 이익을 받죠. 하지만 그 상권을 키운 것은 세입자들입니다. 세입자들도 실질적으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몇 곱절의 개발 이익은 땅 가진 사람만 독차지하고 열심히 노력한 세입자들은 내몰리는 실정, 말이 안 되는 거죠"

두 사람은 '강제퇴거 금지법'을 통해 세입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요구대로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 등 20여 명의 의원이 '강제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지난해 10월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불법적인 철거, 퇴거를 금지하며 위반 할 때에는 형사처벌도 가능하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 법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전국철거민연합에 따르면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17개의 구역에서 철거민들이 내쫓길 위험에 처해 있다. 강제퇴거 금지법의 계류는 제2의 용산참사로 번질 불씨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잠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에 실려 고공투입된 가운데, 철거민들이 농성중이던 가건물이 불길에 휩싸인 채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에 실려 고공투입된 가운데, 철거민들이 농성중이던 가건물이 불길에 휩싸인 채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땅을 가진 사람에서 땅에 사는 사람 중심으로"


이같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소유자'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거주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땅을 가진 부자들보다 실제 땅에서 살면서 지역 사회를 이루는 세입자, 거주자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세입자도 재개발로 얻은 이익을 나눠 가져야 해요. 몇 갑절 오른 땅값은 열심히 일해서 상권을 키워온 세입자들의 피눈물이에요. 땅주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만 불리는 게  맞나요? 땅값 올려준 우리도 분명 권리가 있어요. 땅 가진 사람들을 위한 법, 뜯어 고쳐야 해요"

전문가들도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 지역에서 터를 잡은 거주자들, 세입자들을 재개발 업체와 땅 주인들이 배려해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방안은 없다. 지난해 10월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의 대표 발의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마찬가지로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건물 주인이 철거 또는 재건축을 위해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거절하기 위해서는 상가 임차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한다. 이 법안의 처리 여부는 부동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 때문에 미지수다.

인터뷰를 하던 이날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의 사면과 함께 용산참사 구속자의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재호씨는 "이 대통령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임기 끝나기 전에 최측근들 내보내려고 하는 꼼수다, 정권 바뀌면 본인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모두 사면되길 원해요. 저희는 간첩도 아니고 도시를 파괴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시민이에요. 살기 위해서 망루에 올라갔을 뿐이에요. 진상이 규명돼 우리 이름에 그인 빨간 줄 없어지길 원해요. 또 철거 문제로 싸우는 사람들도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는 20일은 용산참사 4주기다. 이날에 맞춰 구속자가 모두 사면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농성촌의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있다.


태그:#용산참사, #이명박 대통령, #철거민, #김재호씨, #김대원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