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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진 민주당은 큰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대선이 끝난 지 20여 일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본격적인 대선 평가 작업에도 돌입하지 못했다. 그동안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잡음으로 다시 한번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의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문희상 비상대책위 체제가 본격 출범하게 되면 뼈를 깎는 반성과 혁신을 약속한 민주당의 대선 평가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대선 과정을 되돌아보고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선거 캠페인과 전략, 리더십, 정책의 측면에서 분석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는 '선거 캠페인 전략의 난맥상'이다. [편집자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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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이었던 지난해 11월 27일, 부산·경남 지역 유세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문재인 후보가 유세내용 등을 총괄하는 메시지팀 전체를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부산서부시외터미널 앞에서 열린 첫 유세에서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문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에 대한 공격을 핵심 메시지로 삼았다. 그는 "박근혜 후보는 5·16쿠데타와 유신독재 잔재의 대표"라고 맹공을 가했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이 원하는 바였다. 문재인 캠프의 의도는 선거 구도를 과거 대 미래의 대결로 가져가려던 것이었지만 오히려 박근혜 캠프가 원하는 '박정희 대 노무현의 구도'만 만들어준 꼴이 됐다.  

결국, 문 후보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불려간 메시지팀은 유세 기조를 바꾸라는 주문을 받았다. 당시 선대위의 한 핵심 관계자는 "나중에 확인해 보니 메시지팀에서 과거 대 미래의 대결로 가려면 박근혜 후보를 유신 잔재의 대표로 낙인 찍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하더라"며 "문제는 사전에 메시지 내용을 전혀 스크린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잘못 끼운 첫 번째 단추... 총선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민주당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선거 캠페인은 초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선거운동 첫날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메시지 기조는 '정권심판론'으로 급선회했지만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 대선에 들고 나온 정권심판론이 4·11 총선 때 실패를 안겼던 버전과 쌍둥이였기 때문이었다.

회고적 성격이 강한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내세운 과거 심판론의 위력은 없었다. 정권심판 후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미래비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이명박 정권의 2인자로 규정하고 '이명박근혜 정권 심판'을 외쳤지만 원칙과 신뢰, 또 불법사찰의 피해자 이미지로 무장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했던 '박근혜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충격적 패배를 당한 민주당은 실패에서 배우지 못했다. 미래 비전 없는 심판론의 한계를 불과 8개월 전에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캠프는 총선보다 전망적 투표 성격이 강한 대선에서도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박근혜 후보는 총선 후에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의제를 잠식해가며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펴왔는데도 민주당은 진화를 포기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60%를 넘었지만 그 중 20%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도 정권교체라고 여기는 현상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문 후보는 선거운동 내내 박 후보를 향해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2인자'라는 반향 없는 메시지만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박근혜 캠프는 '중산층 재건론' 등 민생을 앞세워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른 50대의 불안을 파고들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사회경제적 불안에 대항해 '중산층 복원'이라는 이슈를 주도함으로써 승리했다. 미국 민주당의 전략은 대한민국 민주당에게 타산지석이 되지 못했다.

네거티브에 의존한 캠페인... 민생 메시지는 공허

물론 문재인 캠프의 선거운동 기조가 처음부터 정권심판론에만 기대려고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마련한 전략적 기조는 크게 정권교체를 통한 정권심판, 민생 대통령, 민주·평화·복지국가라는 세가지 틀로 짜였다.

하지만 정권심판 외에 민생이나 민주·평화·복지라는 전략적 기조는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구체적인 메시지로 전달되지 못했다. 오히려 문재인 캠프의 선거 운동을 지배한 것은 민생보다는 네거티브였다.

선거운동이 2주째로 접어들던 지난해 12월 2일 문재인 캠프는 박근혜 후보에 대한 본격적인 네거티브를 시작했다. 박 후보는 물론 일가 친인척의 재산 형성 의혹 등을 제기하며 총공세를 폈다. 캠프 공보라인이 주도했다. 캠프 내부에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공보 쪽에서는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한마디로 잘랐다. 네거티브 공세는 계속 되다, 결국 문재인 후보의 자제령이 내려진 5일에서야 멈춰섰다. 게다가 결정적 한방도 없었고 캠프 해단식에 참석한 안철수 전 후보의 비판만 불렀다.

뒤늦게 하루 한건 민생 정책 발표를 계획하는 등 국면 전환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들고 나온 공약도 반값 등록금, 무상 보육, 골목상권보호 등 새롭지 않아 눈길을 끌지 못했다. TV토론회에서 나온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태도 논란 등 온갖 정치적 이슈에 묻혔다. 50대의 심상치 않은 여론동향을 탐지한 후 선대위 내부에 '50대 위원회'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 개입 의혹... 정치 이슈 올인의 함정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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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에 함몰돼 민생 보다는 권력기관 개혁 등 정치 이슈에 올인했던 총선의 실패는 또 반복됐다. 이번 대선에서는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사찰 이슈를 대신했다. 국정원 직원의 오피스텔을 덮쳤지만 민주당이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정황 증거뿐이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제보를 받은 당의 입장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정원 사건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할 만한 팩트가 있었느냐"며 "국정원 개입의 진실 여부를 떠나 사건을 다루는 태도가 너무 어리숙했다"고 말했다.

결국 선거 운동 전략의 실패는 총선에 이어 대선에서도 충격적 패배를 불렀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정치외교)는 "총선과 대선은 같은 세력(친노)이 같은 전략으로 추진하다 같은 실패를 했다"며 "친노의 정치적 상상력은 고갈됐다고 봐야한다"고 비판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도 "선거 구도와 인물 면에서는 보수에 뒤지지 않았지만 전략의 실패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선대위에서 기획본부장을 맡았던 이목희 의원은 "이번 대선 결과를 결정한 것은 보수 52, 진보 48이라는 구도였다"며 "이 구도를 깨고 보수 49, 진보 51로 전환할 대형 정책 이슈를 만들어 내지 못한 전략 부재가 패인"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전략 실패 부른 선대위 조직 난맥상

그렇다면 문재인 캠프의 전략적 실패를 가져온 요인은 무엇일까. 물론 총선 패배에 대한 반성이 없었던 민주당의 오만과 안일함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가장 직접적 요인으로는 캠프 조직의 난맥상이 꼽힌다. 선거 기간 동안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선대위 조직이 보신주의가 만연한 공무원 조직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팀 별 칸막이가 높은 데다 컨트롤 타워마저 없어 '내가 할 일만 하자'는 분위기가 지배했다는 게 선대위 참여 인사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컨트롤 타워의 실종은 가장 큰 문제였다. 선대위는 전체 선거판의 흐름을 읽고 대응 기조를 정한 후 후보 일정과 메시지, 홍보 전략을 일관성 있게 구사해야 시시각각 변하는 선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캠프에는 이 역할을 맡은 사람이 없었다. 선대위는 공동선대위원장 10인의 합의체로 운영됐고 전략본부장·상황실장·비서실장·공보단장 등 핵심 보직들도 누구 하나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대선 캠프에 끝까지 선장이 나타나지 않았다"(신경민 의원)는 평가가 나온 게 무리가 아닌 셈이다.

또 유일하게 문재인 후보와 호흡을 맞춰본 캠프 내 '친노 9인방'도 10월 말 모두 선대위에서 물러나면서 실무진의 공백도 컸다. 민주당 관계자는 "내 선거라고 생각하고 힘을 바칠 사람들이 모두 선대위에서 축출되면서 선거 끝날 때까지 그 공백이 메워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거판을 흔들 전략과 메시지가 나오지도 않았고 그마나 결정된 전략 기조도 전체 선대위가 공유하지 못했다. 사실 선거 운동 첫날 나온 유신 독재 비판 메시지도 전략기획 따로, 후보 메시지팀 따로 움직인 결과였다. 공보라인은 전체적인 조율 없이 네거티브 공세에 나섰다. 상황실에서는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터트렸다. 캠프가 우왕좌앙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선대위 전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조율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중요 국면마다 '내가 책임질 테니 이렇게 가자'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눈치만 보고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친노 임명직 포기'가 관철되지 않은 이유

공유된 책임은 결국 보신주의를 불렀다. 선대위 의사결정의 신속성도 떨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문재인 집권 시 참여정부에서 임명직을 맡았던 '친노'의 임명직 포기 선언을 둘러싼 논란이다. 선대위 내외부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제기하고 있는 '실패한 참여정부의 부활 저지'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반드시 친노의 임명직 포기선언이 나와야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하지만 논의는 표류했다. 친노 원로들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데다 문재인 후보 역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선대위에서 일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누구 한 사람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악역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며 "여기에는 '보이지 않은 (친노) 비선라인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인데 나만 다른 이야기해서 바보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쓰고 선거를 졌다면 몰라도 선거가 끝났는데도 카드가 남아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41년 만에 보수 대 진보의 일대 일 구도가 정립됐고 그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던 대선에서 민주당은 정권교체 실패했다.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사로잡힌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으로는 총선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전략의 실패, 이를 부른 선대위 조직의 난맥상을 꼽을 수밖에 없다.


태그:#대선 평가, #민주당,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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