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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정의를 위해 용기 있게 나서도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패배주의, 즉 '대한민국은 안돼, 기회주의만이 살고 정의는 진다'는 싫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정의를 위해 용기 있게 나서도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패배주의, 즉 '대한민국은 안돼, 기회주의만이 살고 정의는 진다'는 싫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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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진정한 보수가 있는지 여전히 의문"

- 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인데도 '반공주의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점이 이채롭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나?
"종북좌빨론을 깨뜨리려고 그런 거다. 나를 봐라. 난 철저한 반공주의잔데 내가 봤을 때, 야당은 좌빨 아니다. 그냥 보수다. 보수끼리 서로 싸우는 건데 왜 상대방에게 좌빨이라고 하느냐. 그것은 공정한 경기가 아니라는 거다. 서로 깨끗하게 누가 더 실효성 있고 더 좋은 정책을 내느냐, 누가 더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줄 거냐, 누가 더 좋은 인물을 내세웠는지를 보자는 건데 자꾸 그런 것들을 다 희석시키는 색깔론을 얘기한다. 그게 아주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반공주의자다'라고 한 거다.

반공주의자인 내 눈에 저 사람들은 절대로 빨갱이가 아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각종 위원회 등에 참여해서 다 봤다. 봤지만 저 사람들은 절대로 좌빨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려는 사람들인데, 왜 저 사람들 보고 좌빨이라 하느냐? 이것을 설득하기 위해서 일부러 저를 극단적으로 반공주의자라고 내세운 거다. 물론 레드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그런 것을 설명하려면 많이 복잡하다. 그래서 단순하게 나는 반공주의자다, 난 공산주의가 싫다고 한 거다.

아버지가 공산주의를 피해서 내려온 분이고, 우리는 공산화되면 제일 먼저 죽을 사람들이다. 게다가 저는 신분적으로 제일 먼저 죽인다는 경찰이지 않나. (공산주의 세력은) 항상 군보다 경찰을 먼저 죽인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저한테 '공산당 말 믿지 마라, 절대로 북한 믿어선 안 된다'고 얘기했다. 아버지는 진짜 반공주의자였다. 다만 저는 우리 세대와 지식인의 특성상 그런 무분별한 반공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반공주의자라고 이야기한 거다."

- 1993년부터 98년까지 영국에서 유학했다. 영국에서 본 보수주의자와 한국에서 본 보수주의자는 어떻게 달랐나?
"일단 과연 한국에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그 의문이 여전히 뒤따라온다. 대한민국은 아주 불행하게 정부가 탄생했다. 국민들의 자유의사에 의해 형성된 정부나 채택된 헌법이 아니었다. 북한의 존재와 국제적 정세 때문에 보수라는 것이 건강하게 형성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냉전시대의 틈바구니를 이용한 권력주의자들이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고, 능력도 없었다. 그러면서 힘을 가지고 권력을 휘둘렀고, 돈을 챙겼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왜곡해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 그것도 불법적으로 영득했다든지, 권력의 남용을 통해 얻은 것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수란 이름을 이용했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파헤치려고 하면 그들을 빨갱이라고 낙인찍는다. 그게 아주 편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알아서 '쟤네 빨갱이야'라며 알아서 다 제거해준다. 그것이 지금까지 흘러온 것은 대단히 불행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제가 이번에 분노하게 된 배경에도 그런 것이 있다. 새누리당이 정말 보수인가. 저들이 제가 속한 경찰집단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의혹들을 가지면서 이건 보수가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가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 본 보수의 모습은 길거리 순경이 수상이나 부인이 몰고 가는 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그들의 신분을 알면서도 딱 차를 세우고 딱지를 끊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보수의 모습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있다. 영국 황실에서는 늘 왕세자들이 제일 먼저 가장 험한 일선 전투 현장에 간다. 포클랜드 전쟁 때 그랬고, 아프간전 때도 그랬다. 그래야 국민들이 믿고 따른다. 저들이 목숨 걸고 땅, 나라, 주권을 지켜주려고 하니까 그들의 리더십을 허용해준다. 그들이 소수이지만, 다수를 통치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봐주는 거다. 그게 보수의 모습이다. 

진보는 다수가 소수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좋은 세상 만들자는 거다. 보수는 그게 아니다. 똑똑하고 도덕성 있고 철학을 가진 소수가 운용할 때 다수가 행복하다는 거다. 그런데 만약에 그 소수가 기본인 똑똑함과 도덕성과 정직함과 정의로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약한 자와 없는 자를 위해 자기 것을 나누는 정신이 없다면 이미 보수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린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은 절대로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고, 물론 자기들도 안 가고, 세금도 가급적 안 내려고 하고, 재산은 해외로 빼돌리고. 그게 무슨 보수냐? 그들이 도대체 뭘 지킨다는 거냐? 그러면서 힘없는 대중한테는 '당신들이 일선 전방부대 가서 우리나라 지키고, 직접세는 안 되고 간접세가 포함된 담배 많이 피우고 술 많이 마셔서 세금 내라'는 것 아닌가?

제가 봤던 유럽의 보수는 본인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정직하다. 물론 일부 개인들의 문제는 어딜가나 좌우를 막론하고 다 있다. 만약 자기들 내부에 문제가 있다, 비리가 있다, 어떤 권력형 부패 현장이 목도되면 자기들이 내쳐버린다. 그들 때문에 국가 전체의 불신이 야기될까봐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재벌들도 그렇고 권력층 내부도 그렇고, 새누리당도 그렇고. 비리행위나 불법행위를 저지른 내부자를 감싸버린다. 검찰도 그렇지 않나? 자신들의 이익, 자기와 연결된 자기 편의 이익만 지키겠다는 것은 가족주의적 이기주의지 보수주의가 아니다."

"한국에서 보수는 오히려 빨갱이들과 같은 짓 하고 있어"

- 보수의 가치 혹은 특징으로 평화, 신사를 꼽았는데 한국의 보수는 어떤가?
"당신들이 진짜 보수라면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 정말 우리나라에 보수가 있을까? 보수를 내세우는 분들이 오히려 빨갱이들 같은 짓을 하고 있다. 몰려 다니면서 무력시위를 하고, 폭력을 저지르고, 상대방의 자유를 억압하고, 너 말하지마, 네가 하는 말은 듣기 싫어, 네가 하는 말은 다 못 믿겠어 하며 입을 봉하고.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폭력보다는 평화, 무례보다는 신사, 그리고 전체주의나 억압보다는 자유를 옹호한다."

- 한국의 보수는 개혁진영이나 진보진영에 '빨갱이'나 '종북 좌빨'이라고 공격한다. 이런 거친 언어의 구사가 결국 스스로 한국 보수의 천박함이나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맞다. 자신감의 부족이다. 스스로가 자신있다면 절대로 그러한 자신의 가치에 위배되는 폭력적인 언사, 표현, 행동은 하지 않는다."

- 그동안 "보수가 당당해져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그런데 왜 한국의 보수가 그렇게 당당하지 못한 것인가?
"보수집단 내 권력구조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층을 점하고 있는 자들이 그들이 내세운 보수의 가치에 따라 자기들이 가진 실력과 능력으로 올라갔는가?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의 보수들에서 보듯 정치의 경우 가장 아래 단위인 당원, 청년당원으로부터 시작해 시의회 선거나 도의회 선거를 거치면서 능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인정받아 결국 당수가 되는 과정을 안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민주통합당도 똑같다. 여야 가리지 않고 모두 마찬가지다.

한번 점하고 난 것을 놓고 싶지 않은 거다. 자기들끼리 계파다 뭐다 하면서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 당당하지 않은 거다. 토론을 통해 상대후보와 제대로 된 정책 대결, 인물 대결을 하겠다는 모습을 보였나? 없다. 그들이 이렇게 당당하지 못한 이유는 현재 그들의 체제와 구조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그게 혁파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땅에 진정한 보수가 서려면 불법과 반칙이 결국 이긴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힘센 자에게 줄 서고 충성을 바치면 옳지 않더라도 결국은 나에게 보상이 돌아온다는 불의한 관행과 인식이 깨져야 한다.

자신들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보수정신을 믿고, 자신들을 비판하거나 대척점에 있는 상대편과 당당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균형감 있는 보수가 될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진정한 보수주의에 가장 가까운 인물"

- 진보진영에서는 그렇게 보수층의 권력구조가 잘못된 것은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청산해야 할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부패하고, 정당하지 못하고, 품격도 없는 보수주의가 계속 온전해왔다는 것이다.
"맞다. 맞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좀 더 현실적이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사유재산의 원천을 강탈이라고 본다면 모든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역사에서 오랫동안 엉킨 복잡한 실타래를 칼로 막 끊어서 조각을 만들어 풀어헤치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교각살우다. 지금은 혁명시대가 아니다. 그러면 답은 뭘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부터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제가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3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와 화해하고 인정하라는 거다. 현 기득권과 재산들을 모두 와해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극단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까? 그것도 보기에 참 안쓰럽다.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진보진영도 '저들은 우리의 적이야, 발가벗겨야 하고 뺏어야 해'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대다수 민중, 민초들에게 과연 그것이 좋은 것일까? 저는 아니라고 본다. 화합과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기득권층, 권력층, 재벌들을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 전제는 뭘까? 그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모두 와해하고 없애는 혁명적인 방법은 안 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에서 추구하고 실현했듯이 과거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용서하고, 고칠 것들은 고치고, 내놓을 것은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진보적인 정치세력과 보수적인 정치세력 사이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 자신이 생각하는 보수주의와 가장 가까운 역사적 인물이 있나?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분은 평화주의자이고, 대화와 계몽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깨어나야 진정한 독립이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힘으로 무력으로 강압으로 바꿔내고 혁명을 일으키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다수 민중들이 좀 더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고 깨어나서 합리적이고 평화적으로 세상을 조금씩 좋게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이다.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

- 신채호 선생의 방식과는 대척점에 있다.
"그렇다. 일부에서는 최근의 모습을 보고 저보고 신채호 선생과 닮았다는 하는 분들도 있다. 저는 도산적인 접근을 하고 싶은 거다."

그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는 이유

- 커밍아웃한 뒤부터는 좀 전투적이어서 신채호 선생을 닮았다고 하는 것 아닌가?(웃음)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제가 언론·방송과 접촉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당히 많은 언론계 종사자들과 만나면서 언론·방송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 BBC 프로그램을 연구하느라고 BBC 방송국의 PD들, 작가들과 상당히 많은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영국 BBC가 운영되는 체제, 윤리강령 등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제 지도교수가 관장했던 학회에서 영국과 캐나다의 방송법을 비교하는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제 전공은 아니었지만 관심이 가더라.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상업적인 외국의 오락물 방송 비중을 제한하는 것이 방송의 자유를 해치는 것인가 등의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놀랐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송과 언론의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하는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는 당연해서 논의할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여왕을 욕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다이애너비의 죽음이 여왕 일족과 정보기관의 합작이라고 얘기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오히려 문화의 건전성과 교육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외국 오락물 방송 비중을 제한하는 것이 과연 언론·방송의 자유를 침해하느냐에 집중해 논의하는 것을 보고 사치스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쭉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제가 이 분야까지 설레발치고 나설 건 아니라고 생각해 관망해오고 있었다.

저에게 짐처럼 계속 남아 있었던 게, 저를 취재하고 인터뷰했던 시사프로그램(MBC <PD수첨><시사매거진 2580> 등) 담당 피디와 작가들이 파업이나 해고 등으로 현장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뭔가 망치로 쾅 얻어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저한테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물론 저를 보수 쪽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데 가끔씩 제가 알고 있는 그분들의 이름이 나오고 그분들이 외치는 절규가 들리면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럼에도 '이건 내 영역이 아니야'라고 저를 다독거려왔는데 이번 사건이 딱 터지면서 제가 직접 당사자가 됐다. 내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생각하게 된 거다.

하고 싶은 얘기를 지금 해야 하는데 내가 왜 두려워하고 있지? 왜 내가 자기검열을 하고 있지? 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지? 왜 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자야 하지? 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직을 던져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지?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된 거다."

- 서구사회에서는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20세기 초반에 마무리됐다.
"그렇다."

-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 그게 아주 안타깝다. 방송통신위원장과 각 방송사 사장의 선임부터 아주 유치했다. 1960년대도 아니고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자유의 현황인가? 미국의 프리덤하우스에서 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언론자유 순위는 169개국 가운데 70위였다. 정말 부끄러운 일 아니냐? 그것은 모두 지난 5년간 행해진 것들이다. 그게 무얼까? 내가 좀 불편한 이야기들은 떠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듣기 좋은 얘기들만 나왔으면 좋겠다, 이거 아닌가? 이건 독재다. 절대왕정 시대의 왕이나 하는 생각인데, 그게 통용되고 있다는 게 아주 가슴 아프다."

"애국과 자유를 내세우면서 왜 개인 자유를 말살하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조금 천천히 올 수는 있다. 시간이 걸리고 조금 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안돼, 여기 정의는 없어'라는 소리는 하지 말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조금 천천히 올 수는 있다. 시간이 걸리고 조금 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안돼, 여기 정의는 없어'라는 소리는 하지 말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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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보수가 지켜야 할 자유권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왜 북한 공산주의를 비난하나? 비판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아오지 탄광 갈 정도로 폐쇄된 사회라고 교육받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짓을 똑같이 하나? 보수가 뭔가? 우리가 반공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공산주의 북한이 잘못되었고, 그들이 전체주의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반대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애국과 자유를 내세우는 자칭 보수라는 분들이 개인의 자유를 무참하게 말살하고 있고, 무슨 얘기만 하면 저건 빨갱이니까 말 못하게 하라고 한다. 그건 자기들이 타도해야 한다고 떠드는 북한 빨갱이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걸 왜 못볼까. 왜 거울을 들여다 보지 않을까. 그분들은."

- 표 교수 블로그에 달린 댓글 보면 '이 빨갱이야 입 닥치라'라는 댓글들이 적지 않더라.
"저는 그분들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잘못이기보다는 소수 권력자들의 농간이 그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순진하고 순수한 우리 국민들에게 빨갱이를 향한 두려움, 특히 한국전쟁의 경험이 현재진행형이라고 자꾸 반복하고 있다. 저 야당 무리들은 그때 우리가 겪었던 좌익 빨갱이다. 이성적으로 들여다보려면 시간도 걸리고 어렵고 힘들지만 본능적으로, 감정적으로는 그냥 따라가면 편하다. 그러다보니 웬만큼 불편하고 골치 아픈 얘기를 하면 '쟤 빨갱이다' 그러면 아주 편하고 좋은 거다. 저도 그렇게 된 거다.

그걸 한 번 생각해보라. 내가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당신들이 날 어떻게 봤나? 나를 당신들의 수호자라고 보지 않았느냐. 당신들이 빨갱이라고 얘기하는 진보나 시민단체나 야권 측에서 무슨 얘길하면 제가 나서서 다 방어하지 않았냐?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당신들에게 불편한 얘기를 하니까 당신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한다. 그럼 내가 변한 걸까? 그걸 저는 자꾸 던지고 싶은 거다."

- 한국의 보수우파는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단점이 있다. 지적한 것처럼 복합한 이야기를 성찰하지 않으려고 한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역사를 단선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에서도 발견된다.
"맞다. 진보도 문제다. 그런데 제가 왜 자꾸 보수의 문제를 지적하느냐 하면 보수가 다수이고 강자니까 그렇다. 다수 강자부터 바뀌어야 한다. 약자나 소수의 처지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그들의 의견이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라면 결코 다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데 자꾸 그걸 밟고 탄압하고 통제하니까 그들이 자꾸 자리를 잡고 커지는 거다."

"대한민국은 기회주의만이 살고 정의는 진다'는 싫다"

- 가장 좋아하는 가치가 '정의'라고 했는데 표 교수가 살아온 한국 사회에 정의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정의가 없는 사회는 없다. 정의는 있다. 다만 그 정의가 얼마나 크게, 많이, 잘 지켜져 왔고 보장돼 왔느냐 또는 얼마나 많이 정의가 훼손돼왔느냐는 있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고, '정의가 있었느냐'라는 질문은 적절치 않다."

-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얼마나 충만해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그 정도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가 있을까? 비교해서 이야기하자면 분명히 과거보다는 나아졌다, 분명히 계속 나아지고 있다. 그래서 희망적이라고 본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물론 유럽적인 수준의 정의와 우리나라의 정의의 수준을 비교하면 분명히 우리가 뒤처진다. 예를 들어 강자라는 이유로 옳지 않은 것이 처벌받지 않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나? 유럽적인 수준에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있다. 특히 돈의 위력에 의해서 행해지는 불의한 일, 누가 봐도 저건 문제가 있고 옳지 않아 보이는데 돈의 힘으로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매수해서 처벌을 피해가는 일이 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 검찰의 잘못된 행동들이 처리된 것을 보면 일반인들이 지는 책임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노사 간의 분쟁에서도 노동자들의 잘못이 있지만 사측의 문제는 밝히지 않는다. 표면에 드러나는 노동자들의 문제들만 주로 정의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이런 것들을 본다면 우리는 유럽 등 선진국들의 정의수준에서 많이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다."

-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역사"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동의하나?
"내 마음과 똑같다고 할 수 없지만 동의할 여지가 많다. 저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온 거니까. 정의를 위해 용기 있게 나서도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오히려 그런 패배주의, 즉 '대한민국은 안돼, 기회주의만이 살고 정의는 진다'는 싫다. 비록 그런 면이 과거에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우리가 침묵하고 있어서 그렇지 정말 정의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고, 거기에 또 한 사람이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동조해주고, 그렇게 해나간다면 우리도 결국 정의를 이 땅에서 구현할 수 있다.

지금은 그것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저도 지금 그 방향을 향해서 제 모든 것을 던지고 나섰다. 결국 지금 정의가 작긴 하지만 (조금씩) 구현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말한 것은 공감한다. 하지만 그랬던 것은 과거다. 노 대통령도 대선에서 승리했지 않나. 그것이 정의의 승리 아니었나? 저도 지금 작은 승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패배주의를 가질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조금 천천히 올 수는 있다. 시간이 걸리고 조금 더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안돼, 여기 정의는 없어'라는 소리는 하지 말자. 그게 제 생각이다."

백범 김구, 왜 귀국한 뒤 가장 먼저 경주 최부자 만났나?

- 한국의 보수는 대체로 현대사를 성공한 역사라고 평가하고, 한국의 진보는 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실패한 역사로 본다. 역사를 바라보는 이러한 차이를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고 본다. 찾아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 건가. 서로에게 좋지 않다. 그런 대칭적이고 상충적인 역사관을 서로 유지하는 한 진보는 절대로 다수가 될 수 없다. 영국의 노동당처럼 정말 한번 국가를 자신들의 이념에 맞게 만들어 보고 운용해볼 기회를 절대로 가지지 못한다. 반대로 보수도 자신들의 정당함, 자신들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한다. 서로간에 그런 냉전논리, 제로섬 게임, 우리가 올라가면 너희들 다 죽을 거야, 너희가 올라가면 우리가 끝장날 테니 절대 못 줄 거야, 이러고 계속해봐야 결국 일본 자민당 장기독재 같은 행태가 될 수도 있다. 이제 그걸 깨야 한다.

분명히 두 쪽이 다 일리가 있다. 반면에 그들만이 다 옳은 건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들이 정말 악인들, 나쁜 놈들만 승리하고 자리를 차지해왔을까? 그 이전으로 돌아가서 부자들, 지주들에 관한 것도 있을 것 아니냐?  처음에 혁명이 일어날 때 지주들 다 때려 죽이자고 일어났는데 착한 지주들도 있었다. 백범이 귀국해서 가장 처음 만난 게 경주 최부자였다. 지주였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독립운동에 헌납했다. 이런 분들도 있다. 그런 것들을 좀 서로 폭넓게 한 번 보자는 거다. 일단 서로가 상대방을 적으로, 상대방이 날 죽일 거야라는 방어심을 가지니까 인정하고 않는다.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면 저들에게 우리가 양보하는 것이고 끝장날 거라는 위기의식들이 있다.

그래서 중간 지대가 있어야 그게 풀린다. 제가 그 중간지대를 하고 싶다.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아주 건강한 중간 완충지대가 만들어지면 보수에도 '안심해, 괜찮아, 당신들 다 때려죽이지 않을 거야, 쟤들 이야기 한 번 들어보자'고 테이블로 불러오고, 진보에도 '저 사람들이 그렇게 악하고 나쁘고 반칙 쓰고 결국은 뒤통수 칠 거야라고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우리를 믿고 좀 이리 와봐'라고 해서 그들을 좀 화해시키면 대한민국 역사도 통합의 역사가 될 수 있다.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 다시 건국 이후에 자리 잡게 된 부분들을 제기하고 지적하면 이쪽에서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옥석을 가리면 된다. 본인들도 독립의 중요성, 일제의 위법과 탄압은 인정하지 않나. 그러면 사실 여부를 가리자.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다면 이것을 할 수 있다. 그 보장이 중간지대 아닌가."

- 그 중간지대를 만들려면 보수나 진보에는 소통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
"맞다. 소통하기 위해선 여유를 가져야 한다. 상대방을 좀 인정해도 괜찮다, 우리가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그런 당당함과 여유를 가져야 소통할 수 있는 자세가 생긴다. 그다음에 나의 의의와 주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하면서 상대방의 주장과 의의를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소통 아니겠나?"

"한국의 보수는 소통할 의사가 없다"

- 여전히 보수와 진보 모두 소통능력에서 미숙하거나 부족해 보인다. 
"양쪽 다 그렇다. 저같은 경우에도 보면 알지만 조금만 자기한테 어긋나는 걸 얘기하면 서로 욕한다.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제가 하는 것들이 자신들과 어긋난다고 보니까 일제히 빨갱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 진보에서는 과거에 저를 철저하게 보수, 수구 꼴통이라고 봤다. 그런 것들이 그들이 자기고 있는 소통능력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저는 자주 화해하고 소통해보려는 제스처를 많이 해봤다. 하지만 진보 쪽에 계신 분들 중에 합리적 진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의원은 '여성과 아동에서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며 내가 하는 얘기를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너머 뒤편까지는 가닿지 못하는 한계와 벽을 저는 느꼈다.

마찬가지로 보수 쪽도 자신들 편이라고 인식할 때는 저를 무조건 환영하고, 무조건 동지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를 발견한 순간부터 완전히 저를 바깥으로 콱 밀어내 버린다. 이 사람들은 소통이라는 것을 할 의사가 없는 거다. 능력의 문제를 탓하기 이전에 소통해서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바뀔 부분은 없는지, 오해는 없는지를 대화할 의사 자체가 없다."

- 그런 자세, 태도가 제일 나쁜 거다?
"그렇다. 제가 약하고 지게 되면 대단히 불행해진다. 하지만 강하고 이겨나가면 저는 그런 중간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표창원 인터뷰③] "'박정희=악인'으로 접근해선 정의 구현할 수 없다"로 이어집니다.


태그:#표창원, #너무내용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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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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