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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경전 『업보차별경』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단정하고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나는 데는 열 가지 선업을 지어서 그리 되느니, 첫째는 화를 내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의복을 많이 보시함이요, 셋째는 부모와 어른에게 공경심을 가짐이요, 넷째는 성현의 도덕을 소중히 대함이요, 다섯째는 항상 성현의  절집이나 법당을 잘 수리함이요, 여섯째는 집안을 항상 청정히 함이요, 일곱째는 수도실 터나 수도실 들어가는 길을 평평하게 골라 줌이요, 여덟째는 성현의 사당을 지성으로 쓸고 닦음이요, 아홉째는 못 생긴 사람을 보고 천하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공경심을 일어냄이요, 열째는 잘 생긴 사람을 보면 곧 전생의 선업으로 그리 된 줄 알아 감탄하는 마음을 일어냄이니라.

그런데 업보차별경에 나오는 얼굴 단정보(端正報) 열 가지 선업 중에 청소와 관련 있는 선업이 4개나 나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본의 겐코지(建功寺)의 주지에다가, 정원 디자이너이며, 다마 미술대학 환경디자인과 교수인 마스노 슌묘 스님이 쓴 <스님의 청소법>에도 '걸레 한 장으로 삶을 닦는'이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청소' 등의 부제가 달려 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청소
▲ 마스노 슌묘의 <스님의 청소법>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청소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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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청소가 단순히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치우고 없애 깨끗이 하'는 물리적인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닦고, 우리 마음을 닦고, 우리 인격을 닦는 행위라는 차원 높은 활동으로 그 의미를 새기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스노 슌묘 스님은 불교의 선 사상과 일본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뤘지만 마음의 풍요로움은 얻지 못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청소'를 통해 심플하고도 풍요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청소가 그토록 고양된 삶의 활동일 수 있는가? 슌묘 스님은 선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수행의 하나로 '청소'를 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선(禪)이란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덜어내는 행위이므로, 우리 마음속에 쌓아둔 온갖 욕망과 집착을 놓는 수행이 곧 선인데, 청소 역시 눈앞의 더러움과 어지러움을 치우고 닦아내며, 내가 가진 물건들을 정리함으로써 덜고 또 덜어내는 선 수행과 닿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한 점 흐림도 없는 거울 같은 마음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마음에는 여러 가지 티끌과 먼지가 쌓여갑니다. 예를 들면 선입견이나 집착 같은 것입니다. 선입견이나 집착에 휘둘려 괴로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입니다. 더러움 하나를 털어내면 그만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티끌 하나를 걷어내면 그만큼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마음의 흐림을 닦아 반짝반짝 빛낸다는 생각으로 청소를 합니다. 정돈된 공간에서 지내면 마음의 흐림 역시 생기기 어렵겠지요. 청소란 더러움을 털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1장 17쪽)

슌묘 스님은 승려답게 심플하게 사는 삶을 매우 소중한 삶으로 여기고 있으며, <스님의 청소법> 역시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쉽고 평범한 내용으로 심플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진리는 본래 어렵지 않고 간이하다 하였는데, 그렇다면 슌묘 스님이 말하는 심플함이 곧 진리의 형상이 아닐까? '맛은 물맛이 제일이요, 색은 흰 색이 제일이요, 마음은 조촐한 마음이 제일'이라는 말씀을 연상케 한다. 

'청소란 마음을 닦는 것, 걸레질은 수행과도 같다, 좌선이 고요함의 수행이라면 청소는 움직임의 수행, 청소로 일상의 진리를 실감하다, 청소와 깨달음의 깊은 관계, 청소를 통해 음덕을 쌓는다, 무심히 청소하는 것이 곧 수행이다.' 등 슌묘 스님의 청소관은 수행과 조금도 어긋나 있지 않은데, 이러한 인식과 마음가짐 없이 건성으로 하는 청소는 고역일 뿐!

평천하가 수신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며, 진리의 깨달음이 내 발밑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겨울 하늘같은 엄정함이 바로 이런 슌묘 스님의 청소관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변혁과 일상의 변혁이 곧 세상을 변혁하는 것과 통하며, 나 자신과 일상의 변혁이 없이, 이론과 기술과 제도만으로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좋은 세상의 길이 먼 길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스님의 청소법>에는 슌묘 스님의 다양한 청소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아침 청소를 강조하고 있다. 길게도, 너무 힘들이지도 말고, 아침 5분 청소를 권장한다.

우선 아침에 5분만 일찍 일어나볼까요. 그리고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기나 걸레 등의 도구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청소를 해봅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단 일분일초가 아까운 아침이니 오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중하여 단번에 끝내는 것이 포인트입니다.…그 5분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2장 102쪽)

이렇게 아침 청소를 하면 보름 만에 자세가 바뀌고 100일 만에 습관이 형성된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사는 곳을 꾸준히(지속성이 매우 중요하다.) 청소하면 점점 내 마음이 단정해지고 심플해지며, 군더더기를 내려놓게 되고, 정리정돈의 창의력도 생기며, 마음이 더욱 안정될 뿐 아니라 마음의 힘도 생겨나게 될 것이다. 이러니 내 얼굴이 어찌 단정하고 맑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치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장소나, 청소하기 힘든 장소나,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소를 정성껏 청소하면, 그 장소가 맑아질 것이고, 그 장소를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맑고 환하게 될 것이며, 결국 그 맑고 환한 기운이 나에게 와서 내가 단정하게 될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슌묘 스님이 청소하고 '정리하면 운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라 한 말과 다르지 않을 터! 절간의 수행승만 청소할 것이 아니라, 환경미화원만 청소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두가 청소하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고역이 아닌 수행으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장소에서, 흩어진 마음을 정리하고, 집착의 물건을 버리고, 탁해진 마음을 닦고, 그리고 그 속에 단정하고 따뜻한 기운이 흐르게 해야 할 터!

새 해엔 미뤄둔 청소로 시작해야겠다. 동녘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지만, 집안의 먼지를 털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닦음으로써, 우리 마음의 해가 환하게 떠오르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는 공간이 곧 신성한 공간이 되게 하고, 우리가 곧 신성한 사람이 되게 했으면 좋겠다. 청소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뭔가를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고작 청소라 해도 한결같이 손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 이를 수 있는 경지가 반드시 있습니다.(2장 62쪽)

덧붙이는 글 | <스님의 청소법>, 마스노 슌묘, 예담, 13,000원



스님의 청소법 - 걸레 한 장으로 삶을 닦는

마스노 슌묘 지음, 장은주 옮김, 예담(2012)


태그:#청소법, #청소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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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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