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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과 화투 솔광(光)

몇년 전 겨울에 '환경과생명을지키는 전국교사모임'에서 주관하는 습지기행에 참가해 철원 민간인통제구역에 사전 허가를 받고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두루미를 보고, 그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에 반해버렸다. 맨눈으로, 또는 쌍안경과 탐조망원경으로 두루미의 모습과 행동을 보았는데, 도감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고 감동적이어서 영하의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시간가는게 아까웠다. 멀리 있는데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듯한 '뚜루루루~ 뚜루루루~' 그 소리, 타고 가던 차를 세우면 3~4마리 두루미가 먹이를 먹다가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서 멀어지던 광경......

학생 시절 연말연시가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쓰고 받으면서, 어떤 카드를 살까, 누구에게 뭐라고 쓸까 고민도 하고, 뜻밖의 사람한테서 받을 땐 놀라기도 하며, 설렘과 기쁨에 취하곤 했다. 그 연하장에는 흔히 새해를 상징하는 붉고 둥근 해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날아가는 새가 있는데, 그게 바로 두루미다. 또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에서 1월에 해당하는 솔광(光)의 문양에는 태양, 소나무와 함께 두루미가 있다. 화투는 '19세기경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라고 하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거의 없어진 놀이란다. 우리도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치듯이 두루미는 일본에서도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솔광 속 새는 두루미
 솔광 속 새는 두루미

두루미는?

두루미라는 이름은 순우리말로서 '뚜루루루~,뚜루루루~'라고 울어서 유래되었다. 일본말로는 쯔루, 이것도 울음소리에서 따왔다. 한자이름은 학(鶴)이다.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 중국 북동부, 몽골에서 번식하고,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리나라를 거쳐가면서 며칠씩 머문다. 두루미류는 전 세계에 15종이 있는데,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이렇게 3종이 우리나라를 많이 찾아온다.

두루미는 날개끝을 제외하고 온몸의 깃털이 흰색이며, 정수리의 피부가 드러나 빨간 학이어서 단정학(丹頂鶴)이라고 하며 영어로도 머리에 붉은 부분이 있어 붉은 관을 쓴 두루미라고 해서 'red crowned crane'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3천마리 정도 추정되며, 천연기념물 202호이다. 재두루미는 눈 주위가 붉고 머리와 뒷목은 흰색이며, 목 아래부터 몸통은 청회색이어서 재두루미라 하는데, 세계적으로 5천마리 정도 추정되며, 천연기념물 203호이다. 흑두루미는 두루미 종류 가운데 크기가 가장 작은 축에 속하고, 머리와 목만 하얗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색이며, 세계적으로 1만여 마리 정도 추정되며, 천연기념물 228호로 보호하고 있다.

한 발로 서서 자는 두루미,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

양날개를 펼쳤을 때 길이는 약 2.4m . 국내 서식하는 조류 중 덩치가 가장 크며, 전세계 9천 여종의 새들 가운데 두 번째로 크다. 또 1.5m나 되는 울음관이 가슴뼈 안으로 말려들어가 있어서 마치 나팔처럼 깊고 크게 소리를 낼 수 있어 멀리 수 km 밖에서도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흔히 두루미는 수명이 30년-80년이어서 장수를 상징한다. 또 평생을 통한 부부의 사랑으로 행복과 행운의 상징으로 알려져 왔다. 부부 두루미가 마주울기 하거나 학춤을 추는 건 영역을 지키고 부부사이 유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가족을 지키거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종종 약한 편을 내몰고 맹금류에게 대들기도 한다. 평생동안 짝을 바꾸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새로 유명하며 짝을 잃어도 혼자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모이를 찾는 동안 부모는 교대로 주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두루미는 한 번에 1~2개를 낳아 보통 5주 정도, 하루종일 암컷과 수컷이 교대로 알을 품는다. 2개월째 새끼도 혼자서 서서 잠이 들고 3개월이 지나면 날 수 있게 된다.

두루미는 낮에 모이를 쪼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몸집이 크고 이동거리가 길어서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보통 개방된 습지나 초원 또는 농경지에서 서식하고 얕은 호수나 강의 중앙에서 한 다리를 깃털 속에 감추고 최대한 피부노출을 줄여 추위를 피하면서 잠을 잔다. 한쪽 다리를 오래 담가둔다고 절대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발목에는 윈더네트라는 일종의 열교환기관이 있어서 발끝에서 차가워진 정맥피가 그대로 몸통의 심장까지 가지 않고 열교환 기관에서 더운 동맥피에 의해 한번 데워진 뒤 체내로 들어간다. 이때 동맥피는 거꾸로 적당히 차가와져서 발끝으로 간다. 이 덕분에 두루미들은 혹한의 계절에도 동상에 걸릴 걱정이 없다.

'살아있는 화석' 두루미, 멸종위기!

5500만 년 전부터 있어왔던 두루미는 공룡과 함께 살았고 공룡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우리나라의 마을, 들판, 산, 강, 나루터 이름에 학(鶴)자가 들어간 지명 꽤 많다. 이렇듯 수 천년 동안 한민족의 새로 널리 사랑받아왔던 두루미류는 한국전쟁 이전까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보는 겨울철새였지만, 이제 만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있다. 현재 두루미의 월동지는 강화도, 연천, 철원 일대다. 전문가들은 이곳을 두루미벨트라 부른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은 철원 평야이다. 과거에는 더 아래쪽 충청도와 완도 남쪽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는데 그런 지역에서는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거의 DMZ 주변에 한정되어 분포한다. 흑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봄과 가을에 이동할 때는 낙동강을 이용하여 일본 또는 주남저수지와 을숙도까지 이동한다. 그런데 그 경유지에서도 4대강 사업 등의 영향으로 상황이 나빠져서 점점 도래하는 개체수가 줄어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두루미가 다시 돌아오는 날을 학수고대!

우리는 왜 두루미를 보호해야 하는가? 두루미는 '우산종(umbrella species)'이다. 몸집이 큰 종이 필요로 하는 면적의 서식지를 보전하면 그 서식지에 함께 살고 있는 여러 가지 작은 종들도 자연적으로 보호받게 된다. 이는 종 다양성 보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며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두루미가 머무는 논을 지키면 경작지 외에 습지로서의 중요한 역할도 지킬 수 있다.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대 주는 논은 두루미와 철새들의 밥상이기도 하다. 개발 명목으로 자연과 습지를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돌아볼 때가 왔다. 두루미가 안심하고 날아올 수 있는 땅이 우리와 우리의 미래세대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땅이다.

일본 최대의 두루미 서식지 이즈미 시에서는 1960년대부터 아라사키 간척지에 날아드는 두루미에게 이 지역 농민들이 모이를 주기 시작했다. 보호활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지금은 두루미보호지로 겨울 논을 내주는 것이 농사짓는 것보다 이익이 될 정도가 되었다. 농민들과 두루미가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도래하는 재두루미와 흑두루미의 개체 수가 1만 2천을 웃돌아 밀도가 너무 높아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또한 전남 순천시에서는 전봇대 제거와 음식점 철거 등 철새의 안정적인 서식과 순천만 보전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순천시와 이즈미시는 상호 방문을 비롯해 '두루미 보호 등을 위한 우호교류에 관한 협정'을 맺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훌륭한 사례다. 이런 수고가 좋은 결실을 맺어 예전처럼 한반도 전역에서 두루미를 볼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鶴首苦待, 학의 목처럼 한껏 목을 늘여 간절히 기다림) 한다.

근하신년(謹賀新年)!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길...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열린전북]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두루미, #화투, #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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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생태학교 공동대표....교육, 자연, 생태, 깨달음, 자연건강, 텃밭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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