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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 산 고양이 관련 책을 읽고 있다.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 최근 일본에서 산 고양이 관련 책을 읽고 있다.
ⓒ 박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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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37)은 서울 응암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상북, 이하 이상북)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심야책방>을 출간한 저자이기도 하며, 매거진 <주간 경향>에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삐딱한 책장으로 유명한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헌책방을 꾸려나가는 30대 남자,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멋대로 산 보낸 그의 20대

그는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IT계열 대기업에 10년을 일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불현듯 사표를 냈다.

"회사 다닐 땐 씀씀이가 컸다. 이것저것 수집을 많이 했는데 시계부터 신발, 허리띠, 만년필, 향수, 심지어 오토바이까지 수집했었다."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의 그와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다. 돈이 많이 들 텐데 그런 수집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자동차 수집하는 사람도 많았다는 말로 응수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세계에 속해 있을 땐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가 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회사를 가려고 신발장을 열었는데 신발이 이삼십 켤레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개중에는 수집용으로 산 거라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것들이 꽤 있었다. 그걸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코앞인데 누가 내게 '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물으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하고. 신발 모았다, 이렇게 말할 순 없는 것 아니겠나. 물론 그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회사 차원에서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는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한 달이 걸렸단다. "고심 끝에 사표를 냈는데 내고 나니 무척 힘들었다. 그땐 빚도 많아서 더 그랬다." 크던 씀씀이를 작게 줄이는 데도 애를 먹었다. 이젠 좀 적응이 됐을까. "사실 지금도 적응이 잘 안 된다. 그 때를 생각하면 완전히 적응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어렵지 않을까." 이쯤 되니 그는 단순히 직업을 바꾼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으로든 삶의 층위를 옮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회사 다닐 때 알던 사람 중 연락하는 사람은 한 두 명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만나면 이미 계급이 다르니까 재미가 없다. 그러니 자연스레 잘 안 만나게 된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말이 있다. 그는 자신의 20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에게 자신의 20대를 평해 달라 부탁했다. "한 마디로 제멋대로 살았다. 돈을 벌고 쓴 것 외엔 아무것도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경험이라 생각한다. 해 보고 안 해 보고의 차이는 크니까. 후회는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이기도 하고, 나중에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 여기고 있다." 이런 20대를 보낸 그가 제일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되게 교과서적인 얘긴데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돈이 많으면 만족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더라. 환상 같은 건데 그걸 알면서도 놓질 못한다." 돈이든 자기 자신이든 만족하기란 어렵다. 사람들은 누군가보다 내가 낫다는 걸로 위안을 받고 그걸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기도 한다. 그것도 그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인데 말이다. "자신과 다른 이를 상하좌우에 두고 비교하면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떤 것이든 주변에 비교 대상이 있어선 안 된다."

20대에 혹은 지금까지 못해 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티베트다. 평화로운 곳이더라.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티베트에선 무엇을 깨달았나. "티베트에 대한 사전조사를 할 때 그곳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밖에 안 씻는단 말을 듣고 무척 더러운 나라일 거란 생각을 하고 갔다." 물이 없어서 그런 것이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었다. 너무 깨끗해서 씻을 필요가 없는 거였다." 내가 못 믿겠단 표정을 짓자 그가 말을 이었다. "공해가 전혀 없으니까 더러워질 일이 없는 거였다. 사람들이 뛰어다니지도 않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티베트는 고도가 높고 건조하며 햇볕이 강렬해 자주 씻을수록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이 심해질 수 있어서다." 그 일을 통해 그는 편견에 대한 걸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지금은 티베트 사태 때문에 안 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30대, '이상한' 헌책방을 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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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대에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았던 그가 헌책방을 연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는 글씨를 모를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고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그림일기란 걸 쓰는 데 글 쓰는 칸이 세네 줄밖에 없었다. 쓸 말이 많은데 자리가 비좁아 따로 한 권을 마련해 일기를 썼을 정도였다." 보통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일기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과일 뿐인데 이때부터 그는 책을 좋아하는 헌책방 주인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이미 두 권의 책을 냈고, 잡지 <주간 경향>에 '애서가의 서재' 코너를 담당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 그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 "글쓰기는 내게 삶의 해방구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고 지칠 때 술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폭식하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그러지 않나. 나는 힘들 때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딱히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도 글은 계속 쓴다."

그렇다면 <주간 경향> '애서가의 서재' 코너의 애서가들은 어떤 경로로 섭외를 하는 건지 궁금하다. "대부분 헌책방 손님들이다. 헌책방에 손님으로 오는 사람 중에 애서가들이 엄청 많다." 인터뷰를 하려면 애서가마다 기사화할 만한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걱정을 내비치자 그는 인터뷰이가 아무리 사소한 얘기를 하더라도 글로 엮을 수 있다 자신했다. 그는 "땅에 떨어져 있는 휴짓조각이나 먼지 하나 가지고도 장편 소설 하나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이상북'에는 철학서, 인문서가 많다. 철학서를 읽고 난 후에 뭔가가 달라졌다고 느낄 때가 있는지 물었다. "많이 느낀다. 폭넓은 사고를 할 소양이 길러지는 것 같다." 도대체 철학서는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을까.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작가가 살았던 시절의 역사서를 읽고 이해하려고 했다. 역사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당시에 어떤 철학이 유행했는지를 알게 되면 문학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을 공부할 마음이었다기보다 문학을 잘 이해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앨리스 책들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이 외에 좋아하는 문학을 묻자 그는 카프카의 <변신>을 꼽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변신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 전까진 주로 한국 문학을 읽었는데 크게 달랐다. 두 가지 충격을 받았는데 첫 번째는 시작하자마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인공이 벌레가 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주인공이 죽자 가족들이 좋아하면서 끝나는 것이었다." 비범한 책이란 생각에 그는 원문인 독일어로 읽기 위해 독일어를 독학했다고 한다. 독일어로 <변신>을 읽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는 그에게서 책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

'이상북'에 흐르는 문화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이상북을 들른 첫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책방에 들어와 그에게 거리낌없이 말을 거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몇 분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어쩐지 그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이 많은 지금, 손님과 안부를 주고받는 책방 주인의 모습은 더 이상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에 들은 바로 그 여고생은 이곳의 초창기 멤버격이란다. "중학생 때부터 오던 애예요. 근데 벌써 대학 갈 나이가 됐네요." 이런 작은 교류들이 그 마을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북에선 한 달에 두 번씩 '심야책방'을 운영한다. 이날은 밤새 책을 읽고 자정에 열리는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이다. 평소에는 독서모임과 작은 전시회가 열리며 학교를 마친 아이들에게는 놀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상북은 주민들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이상북이 공동체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듯했다.

문화는 강제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걸음이 쌓이고 쌓여야만 생기는 오솔길처럼 문화 또한 하나의 흐름이 되기 위해선 많은 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 그는 "삶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사람들이 책도 많이 읽을 수 있다"며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말했다. "읽을 만한 여유가 있어야 책도 읽는 거지. 여유가 있으면 읽지 말라 그래도 읽을 거다."

10년 후에도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마음 같아선 계속 하고 싶지만 솔직히 10년 뒤에도 이곳이 여전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책에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것 같긴 하다." 또 다른 인생의 목표나 꿈은 없을까. "사실 딱히 없어요. 헌책방을 하면서 정말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동안엔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회사 다닐 때 누렸던 돈의 힘을 알고 있는 그다. 그때보다 지금이 행복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하다. 백퍼센트."

삶의 궤적은 너무나 다양하다. 어떤 일을 10년 동안 하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는 게 우리 인생이다. 인생의 성공은 누가 먼저 행복해지느냐에 달렸다. 오늘 어떻게 하면 뜬구름 같은 행복에 먼저 도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자.


태그:#박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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