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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있다.
 공식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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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언제 오냐?"
"오전 11시쯤 가서 선거 하고 점심 먹고 갈께요"
"빨래 챙겨서 가져오고"
"네. 추운데 너무 일찍 다녀 오시진 마시구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음. 신중히 잘 하시고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라니까."
"음. 아들 이민가는 거 보기 싫으시면 잘 하시라고요."
"왜? 2번이 되어야만 세상이 달라진다든?"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그저 젊은이로서 희망이 안 보인다는 얘기로 어설픈 통화를 마친다.

새벽 같이 일어나 투표장으로 향하실 어머님과 아버님.  내 아버지는 중학교 다니는 손녀들에게 2번 찍으라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라며 역정을 내실 정도로 본인 생각이 강하신 분이시다. 젊은 시절 큰 돈도 벌어 보셨고 부도라는 좌절도 여러 번 겪으시며 인생역정의 굴곡이 깊은 탓인지 70이 훌쩍 넘긴 지금도 몸도 마음도 정정하다 생각하고 계시다. 실제로 또래 분들에 비하면 그러하기도 하고 말이다.

일찍 선거장에 가시지 말란 말 속에 내 얘기 좀 들어보고 내가 응원하는 후보를 찍어달라는 사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 나 개인의 욕심일 것이다. 내가 진보를 외치고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리길 원하듯이 (극단적 운동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나도 좀 인정해 줘 정도의 작은 외침일 뿐이다.) 부모님들의 의견도 인정받아야 마땅할 테니 말이다.

불연 듯 떠오르는 영화 속 한 장면이 있다. 영화 26년. 여러 장면 속에서 울기도 했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던 영화. 하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장면은 경호실장 마상렬의 절규다.

"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신은 죽어서는 안돼."

당신이 무너지면 내 지난 인생은 다 뭐가 되냐며 울부짓던 마상렬의 모습.

내가 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걸 받아들이기엔 사람은 너무나 약한 존재이다. 죽음의 순간에 각하를 외치며 쓰러지는 모습에서 '저 인생 헛살지 않았지요.' 하며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 간절함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어쩌면 기호 2번은 빨갱이라는 우리 부모님들 또한 경호실장 마상렬과 같은 심정일지 모른다. 70년을 그리 믿고 살아오신 분들인데, 그분들에게 당신 거짓인생 살았다 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짓이지 않은가. 그들 또한 또 하나의 피해자일 뿐이다.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  흔히들 이번 선거는 50대 50이라 얘기하는데 내 마음 속 그분이 당선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그 어느 분이 당선 되든 간에 절반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그 분께 단 한 가지 바라는 건 깨지고 나뉘어진 우리 세대들을 진정한 통합과 상생의 길로 이끌어 가시길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부모님 생각만이 옳다, 내 생각만이 옳다라는 편견을 넘어설수 있도록 진정한 지혜와 리더십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실망에 젖어 있을 우리들의 부모님들과 우리들의 자식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시길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그리고 희망이 없어 이민을 갈 것이라는 불필요하고 철없는 얘기가 노모에게 마음의 큰 상처로 남지 않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태그:#세대갈등,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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