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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시한을 앞두고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초박빙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리서치뷰가 12일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48.5%, 문재인 후보는 46.9%를 기록했다. 오차범위 내다.(전국성인남녀 3000명 대상,  ARS/RDD 100% 휴대전화 진행,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1.8%p. 응답률 11.4%) 같은 날 진행된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는 둘의 격차가 더 좁다. 박근혜 후보는 48.2%, 문재인 후보는 48.0%. (인구비례 무작위 추출한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2000명 대상,자동응답(ARS)전화조사로 유선전화 및 휴대전화 임의걸기(RDD) 방식, 표집오차 95% 신뢰수준에 ±2.2%p)

이런 상황에서는 투표율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일은 누가 하고 있을까? 정치인과 선거운동원들이? 아니면, 시민단체?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다. 어떤 정당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어떤 단체활동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투표율 높이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1일, 그런 사람을 만났다.

자발적인 투표하기 캠페인 시작한 디자이너

SNS 페이스북에서는 얼마 전부터 투표를 호소하는 여러 디자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걸려 있는 링크 (https://www.facebook.com/votedesign)를 따라가 보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이라는 페이지가 나온다. 이 페이지에는 다양한 투표참여 디자인이 등장한다. 작가들도 여럿이다. 궁금하다, 이 사람들. 정체가 뭘까?

막연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이, 지인의 전시회에 들렀다가 의문점이 풀렸다. 기자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디자인 작가 신의철(32)씨. 형식적인 "요새 뭐하고 지내나?"는 안부인사에 돌아온 대답.

"투표참여를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랬다. 기자가 페이스북에서 간간이 본 디자인 중 대부분은 그의 디자인이었다. 영어라면 자동적으로 시야에서 벗어나는 무의식의 작동으로 인해 디자인 옆에 붙어 있는 'Shineuichul'을 내가 아는 신의철과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약속 잡고 신촌 한 카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래픽 디자인 작가인 신의철씨. 페이스북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페이지(https://www.facebook.com/votedesign)를 운영 중이다.
▲ 투표참여를 위한 디자인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신의철씨 그래픽 디자인 작가인 신의철씨. 페이스북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페이지(https://www.facebook.com/votedesign)를 운영 중이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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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가 뭔가?
"영상 그래픽 디자인 작가다. 대학과 콘텐츠진흥원, 모션 그래픽 전문 아카데미에서 강의 중이다. 영상디자인 기술관련 책을 쓰고 있기도 하다."

- 잘 나가는 작가인가?
"(웃음)글쎄...에프터이펙트 관련 책을 4권정도 썼고 한 3만권정도 팔렸다. 예전에는 '공공의 적 강철중'에 들어가는 그래픽 작업을 했다. 알지 모르겠는데 '사랑 따윈 필요 없어'라는 영화의 타이틀을 제작했다. 들어 봤나?"

- 알다마다. 우리 문근영님이 나온 영화 아닌가?
"맞다. 그런데 예전에는 상업적인 작업을 했는데 최근에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번 전시회도 그 일환이다."

- 그럼 이제 상업적인 작업은 안 하나? 생계에는 지장 없나?
"상업적인 일은 이제 안 한다. 물론 생계에 지장은 있다. 전에 상업적인 작업을 할 때는 별로 걱정 안 했지만, 6개월 전부터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는 좀 어려워졌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니 불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상업적인 일은 기업 일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 기업이 정말 잘났는지 모르겠는데 그 기업이 잘났다고 이야기 해주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접었다."

이 사람. 순수한 걸까? 철없는 걸까?

"투표, 젊은층에겐 너무 올드해...바꾸고 싶었다"

-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페이스북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이라는 페이지를 열고 투표참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런 일, 왜 하나?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거의 다 기업 일만 하고 시키는 일만 한다. 자기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한다. 대선에서 투표율을 높여야 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나 혼자라도 먼저 움직이고 싶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작품
▲ 두눈 부릅뜨고 쥐켜보고 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작품
ⓒ Seon Je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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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투표율 높이는 운동을 펼치는 이유는?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잘 안 한다. 내 생각엔 젊은 사람들에게 투표가 너무 올드한 느낌으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가진 디자인 실력으로 투표라는 것을 좀 더 젊고 밝게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투표가 올드하고 나이든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역할, 디자인이 할 수 있다고 봤다."

- 혹시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
"물론 있다. 투표율이 높으면 여당에 불리할 것 같아서."

- 여당이 왜 싫은가?
"당연히 싫다. 모든 것들이 너무 많이 변했다. 뭘 하면서 계속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되고, 주위 사람들도 다 힘들다고 이야기 한다. 강의를 하면서 어린 친구들을 보면 너무 힘들어 보인다. 반값등록금, 그런 공약 했으면서 안 한 척 하고.이런 여당이 심판 받으면 그 아이들이 기를 좀 펼 수 있지 않을까?"

- 여당이 싫어진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였던 것 같다. 그때 촛불시위에 어마어마하게 나갔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못했다. 소통이 안 되는 정부. 그런 정부에게는 더 이상 이야기해도 안 되겠다 싶었다. 천안함 사건도 컸다. 나에게 강의를 듣는 학생 또래 장병들이 죽었을 때, 의혹이 있는 것을 다 밝혀내야 하는데 그냥 덮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팟캐스트나 인터넷 등을 통해 접한 정보를 보면 정부의 발표와는 많이 달랐다. 4대 강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의 지적도 다 무시하고...".

- 혹시 정당에 소속되어 있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
"정당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앰네스티에 후원만 하고 있다.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도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지지하지 않는다. 그 외 정당들은 그 때 그때 다르다. 지금도 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는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편이다."

"총선 결과 보고 화가 났다"

- 투표캠페인은 언제쯤 시작했나?
"총선 날 개표방송을 보면서 열 받아서."

- 아니 왜?
"새누리당이 더 많은 의석을 얻었다. 심판하지 못한 것이다. 투표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혼자 페이스북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먼저 디자인 하는 지인들을 초대했다. 페이스북에서는 페이지가 접근성이 더 좋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페이지로 옮기고 디자인을 올리기 시작했다."

- 같이 하는 사람은 몇 명 정도인가?
"같이 한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페이지를 열어 놓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올리는 공간이다. 디자인을 올린 사람을 다 세어 보지는 않았는데....올린 작품은 대충 80개 쯤? 디자인 한 사람들은 한 20명 정도?"

- 어떤 사람들인가?
"초기에는 디자인 하는 주변 지인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먹고 살아야 해서 주로 돈 받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명 안 됐다. 그런데 점점 모르는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작품을 올렸다. 디자인 하는 분도 있고, 포토샵 정도로 쉽게 만드시는 분도 있다."

- 반응은 좋은가?
"글쎄....페이지 통계를 보면 일주일에 1500 명 정도가 보는 것 같다. 전에 안철수 진심캠프에 한 번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하루 3만 명 정도가 봤다."

"투표, 누군가는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것"

- 자, 이제 작품 이야기 좀 들어보자.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

역사에서 누군가는 우리에게 투표권을 주기 위해 죽었고, 누군가는 그걸 방해하기 위해 갖은 공작정치를 펼쳤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투표에는 그만큼의 역사적 무게가 실려 있다.
▲ 김구 선생님을 생각하며 역사에서 누군가는 우리에게 투표권을 주기 위해 죽었고, 누군가는 그걸 방해하기 위해 갖은 공작정치를 펼쳤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투표에는 그만큼의 역사적 무게가 실려 있다.
ⓒ 신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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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로 작업 하고 있는 거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 얼굴에다 투표를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투표할 수 있게 만들었던 사람, 또 그걸 방해했던 사람....김구, 박정희, 김재규, 장준하, 이한열, 김대중, 김근태...그런 사람 얼굴에 투표라는 글자를 넣었다. 투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해왔던 일인지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투표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인터뷰가 한 참 무르익고 있을 때, 그의 디자인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 한명이 찾아왔다. 한해랑(30)씨. 일러스트 디자이너다. 그렇다. 둘은 연인 관계다.

- 반갑다.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일러스트 회사에 다니고 있다."

- 이런 인터뷰 하면 회사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걱정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 회사 선배들이 썼던 모자도 회사에 걸려 있다.(웃음)"

-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나? 남자친구가 하자고 해서?
"그런 것도 좀 있다(웃음).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사이즈도 작고 거창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라도 투표율 높이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

- 보람을 느끼나?
"사람들이 '좋아요'를 많이 눌렀을 때 기분이 좋다. 사람들이 내 디자인에 반응을 보이면 내 생각을 지지해 준다는 느낌도 받는다."

-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나?
"한해랑 : 틈틈이 생각하고 있다가 여유가 생기면 작업한다. 하루에 30분 정도 투자한다. 신의철: 난 매일 아침이나 저녁에 한 시간 정도 투자한다."

- 올린 작품 이야기 좀 들어보자. 이 디자인은 어떤 의미인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들에게는 투표가 힘
▲ Super Save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들에게는 투표가 힘
ⓒ 한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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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랑:  약한 사람들이 돈 많은 사람들한테 당하는 기사를 많이 읽는다. 돈 많은 사람들은 증거를 코 밑에 들이대도 다 빠져나가고 돈 없는 사람은 매번 당한다. 저 사람들한테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만들었다. 우리가 가진 게 이거(투표)다. 그런데 왜 안 쓸까? 돈 없고 빽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 하고 싶었다."

"이후 작업 목표는 사회를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

- 좋은 디자인이 많다. 그런데 좀 다른 접근 방식은 없을까? 오프라인과 연계한다거나.
"페이스북에 투표관련 그룹이 많다. 내용을 공유하고 있고, 서로 정보를 제공한다. 문제는 오프라인으로 끌어오는 방법인데, '나는 꼭 투표 하겠다'는 입장을 끌어내는 방식이면 좋겠다. 예를 들면 투표를 했다는 인증 같은 것? 투표한 사람에게 멋있게 디자인 한 배지를 나눠 주는 거다. 길 가다 같은 배지를 보면 '아 저 사람도 투표를 했구나. 나도 했는데'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직접적이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하면 어떨까, 이런 걸 하면 좋겠다."

- 그런 걸 하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 돈은 많은가? 

"없다. 생각 못 했다. 돈에 대해서는."

- 기부를 받아볼 생각은? 그렇지만 만일 기부를 받게 되면 지금보다 힘과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텐데?
"기부를 받아볼 생각은 미처 못해봤다. 만약 돈이 있으면 힘들어도 오프라인 운동까지 해보고 싶다."

- 디자인 작업은 대선 끝나면 끝나는 것인가?
"신의철: 계속 할 것 같다. 대선에서 끝나지는 않을 거다. 앞으로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작업은 계속 할 거고 사람들도 계속 모을 생각이다. 아마 투표시간 연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걸 시작으로 '사회를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조금씩 넓혀 갈 계획이다. 이게 첫 시도다. 페이스북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넓혀 나갈 생각이다."

페이스북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신의철·한해랑씨
▲ 신의철(32), 한해랑(30)씨 페이스북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신의철·한해랑씨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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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바꾸는 이름 없는 이들

인터뷰 동안 기자가 본 것은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어두운 골방에서 작전 짜는 배후세력의 손이 아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이름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 만일 그런 이들이 없다면 우리 정치가 한 걸음이라도 전진할 수 있을까?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신의철씨는 기자에게 "자기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이름 없는 더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은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 한국 정치를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힘이 12월 19일에 확인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아래는 신의철씨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다. 링크를 클릭하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디자인을 볼 수 있다. 저작권은 없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https://www.facebook.com/votedesign



태그:#투표참여, #디자인, #신의철, #한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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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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