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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시간씩 운전해서 투표했다~!!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보다는요, 정말 솔직히 말하면 속이 넘 후련해요! 그리고 그 먼길을 달려 투표장에 갔더니 나랑 꼭 같은 마음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걸 봤을 때 받은 그 감동! 그냥 그거예요. 위로 받았어요. ㅠㅠ "

미국 시각으로 9일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런 글을 트윗을 남겼고, 지금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리트윗과 답장을 받고 있다.

"투표했더니 속이 너무 후련해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총영사관에서 18대 대선 재외국민투표를 마친 우리 가족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총영사관에서 18대 대선 재외국민투표를 마친 우리 가족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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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다호주의 보이지라는 도시에 산다. 투표를 하기 위해 워싱턴주 시애틀 다운타운에 위치한 총영사관까지 가려면 차로 8~9시간은 족히 달려야 한다. 가는 길이 평야지대라면 모르겠는데, 아이다호에서 오리건주를 넘을 때, 또 오리건주에서 워싱턴주를 넘고 다시 시애틀까지 가는 중간중간 마다 여러 산맥을 넘어야 한다.

여름이라면 이 장거리 운전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 겨울에 미국의 산길을 운전하는 일은 사실 위험하다. 특히 남편과 나, 6살, 8살짜리 아이들을 포함한 일가족이 토일요일 이틀 안에 시애틀까지 다녀오는 일은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 계신 내 부모님은 계속 반대하셨다. 나와 다른 후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가는 길이 위험하다고 굳게 믿으셨기 때문이다.

투표 신청을 일찌감치 마친 나도 투표하러 가는 이번 길이 마냥 즐겁고 흥분된 것은 아니었다. 계속 일기 예보를 찾아봤고, 특히 우리가 지나가게 될 산악 지역의 동네에 과연 눈이 올까, 기온이 많이 떨어져 도로가 빙판이 되지는 않을까, 계속 마음을 졸였다.

 18대 대선 재외국민투표를 하기 위해 워싱턴주 시애틀로 가는 길. 오리건주의 산을 넘는 동안 맞은편 차선에서는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트레일러끼리의 충돌 때문에 많은 다른 차들은 도로 위에 정체됐다.
 18대 대선 재외국민투표를 하기 위해 워싱턴주 시애틀로 가는 길. 오리건주의 산을 넘는 동안 맞은편 차선에서는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트레일러끼리의 충돌 때문에 수많은 차들이 정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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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난 일단 출발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투표 신청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난 총선 때 투표하는 남편을 마냥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봤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 "8시간 반 걸려 한 표…귀빈 대접 받았어요" )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5년간 가슴에 뭐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화가 불쑥불쑥 치미는 그런 경험을 줄곧 해왔다. 하지만 미국, 특히 우리 동네에서는 어디 촛불 모임에도 나갈 수 없고, 그저 트위터나 페이스북 담벼락에나 화를 내는 상황이라 답답함과 스트레스만 더해갔다.

그런 내게 작은 힘이나마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어차피 한 표일 뿐이지만, 그 한 표를 던지기 위해 우리 가족이 쏟는 시간과 열정, 그리고 비용의 무게에 비례해서 내가 그간 겪은 짜증과 분노가 많이 가실 것 같은, 그런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지난 4.11 총선을 시작으로 재외국민투표가 가능해졌고, 이번 대통령 선거는 해외 교포들도 참여할 수 있는 첫 대통령 선거였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재외선거인 등 신고·신청이 마감된 10월 22일 현재, 미국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위해 총 5만 1000여명이 투표를 신고 및 신청했다. 이는 지난 4.11총선 당시 2만 3천 여명이 신청했던 것에 비하면 두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시애틀 총영사관에 재외선거 업무를 위해 한국에서 파견나온 김만영 영사는 "이곳에 재외선거인 및 국외부재자를 신고·신청한 사람이 총 3600여명이며, 이 중 9일 일요일까지 실제 투표를 마친 사람은 1895명"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주말인 8일과 9일에 집중적으로 투표가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 영사의 설명에 따르면, 토요일에만 705명이, 일요일에는 484명이 투표를 마쳤다. 기대한만큼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지만, 지난 4.11 총선때 30%대에 불과하던 투표율과 비교하면 훨씬 늘어난 수치다.

올 10월 재외선거관련 공직선거법이 개정, 공포되면서 4.11 총선 때와는 달리 이메일과 우편으로도 (단, 우편의 경우는 국외 부재자만 신고 가능) 선거참가 신청을 받았다. 시애틀의 경우 이번 대통령 선거관련 투표를 홍보하기 위해 대형 한인 교회와 성당, 한인 마트에서 집중적인 선전을 했고, 또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서도 투표를 독려했다.

김 영사는 "이번 대선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날 것에 대비, 더 많은 주차장을 확보하고 투표 장소도 넓혔다"고 덧붙였다.

쉼없는 투표 행렬, 감동이었다  

 18대 대선 재외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시애틀 총영사관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유권자들.
 18대 대선 재외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시애틀 총영사관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유권자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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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8일 토요일 오후 영사관에 도착하니 지난 번 총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투표하러 나온 젊은 부부들이 아주 많았다. 또 유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30~40대의 유권자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영사관 건물과 호텔 주차장 주변, 그리고 영사관으로 향하는 복도를 지나가는 한국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난 총선 당시에는 투표를 하러 온 사람이 우리 밖에 없어서, 투표 참관인들이 박수도 쳐주고 먼 곳에서 왔다고 위로도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경황이 전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쉼없이 영사관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투표를 마친 후에도 사람들은 영사관을 바로 떠나지 않고 이제는 하나의 의례처럼 되버린 투표 인증샷을 찍느라 바빴다. 또한 복도에서, 음료수와 과자 등이 마련된 영사관 접견실에서 삼삼오오씩 모여 투표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다른 지역으로 전화를 걸어 그곳 상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시애틀 영사관에서 만난 74세의 정현근 할머니는 "미국 여행 중인데도 꼭 투표를 하고 싶어 손자와 손자 며느리의 손을 잡고 투표장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투표는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의무"라고 강조하며, "간절하게 당선하기를 소망하는 후보자가 있어서 투표를 했다"고 전했다.

오리건주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3시간 넘게 차로 달려왔다는 20대 중반의 한 청년은 "적어도 우리가 원치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한 표라도 보탬이 되고자 나왔다"고 말했다.

워싱턴 주립대학교에서 복지를 공부한다는 29살의 한 여학생도 "현재 대통령 후보들의 복지 정책을 꼼꼼히 살폈다"며, "꼭 뽑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후보자가 있어서 투표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안 돼 경황이 없지만, 이번 대선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 뿐 아니라 필자가 얘기를 나눈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이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 바꿔야한다"는 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투표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흥분과 감격, 즐거움으로 빛났다.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 "투표장은 작은 축제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투표를 마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으니,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정말 많았다"며 "그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 많이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고 전한다.

뉴욕에서 투표를 한 지인은 "투표가 작은 축제 같았다"며, "투표장에서 본 사람들 대부분이 20~30대 였고, 지역 신문에서는 투표 등록자의 60% 정도가 40세 미만이라고 보도했다"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8일 새벽 시애틀로 가는 도중 오리건주의 산을 넘을 때 맞은편 차선에 큰 트레일러가 눈에 미끄러져 전복된 것을 목격했다. 이 트레일러는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거대한 페드엑스(FedEx: 우편물 운송 회사) 트레일러를 들이 받았고, 페드엑스 콘테이너 안에 있던 온갖 소포들이 도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고 '그냥 집에 있을껄…'하는 후회스런 마음이 한켠에서 들기도 했지만, 시애틀 영사관에서 투표하고 난 후 특히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온 다른 가족들의 환한 표정을 보면서 10시간 가까이 운전하면서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합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위해서 먼 길을 나서 투표했지만, 투표를 통해 내가 받은 것은 위로와 감동이다. 내가 쓴 트윗에 시카고에서 투표했다는 어떤 분은 이렇게 답장을 주셨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어요. 은혜받는 느낌이랄까? 너무나 많이 나와주신 시민분들….감동이었습니다."


태그:#18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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