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월 중하순, 들기에도 버거울 만큼 큰 박스에 담은 '하동 대봉감' 한 박스를 받았습니다.
'하동 대봉감'이라는 포장박스를 보자마자 '그분'일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이분은 몇 해째 제게 대봉감 한 박스을 보내는 것으로 겨울채비를 마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염치없이 이 감을 넙죽 받아 항아리 속에 갈무리했다가 세 가지의 조건이 충족될 때 항아리의 뚜껑을 엽니다.
첫째는 겨울이 깊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눈이 오는 밤이어야 합니다. 셋째는 귀한 손님이 오셔야 합니다.
그때 이 대봉감 몇 개만으로도 참 푸짐하고 포근한 밤이 됩니다. 크고 단 이 대봉감은 살짝 얼어서 마치 천연 아이스크림같이 맛있는 밤참이 됩니다.
하지만 올해 감 박스를 열었을 때는 예년처럼 정갈하게 담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터지고 부서진 감들로 어지러웠습니다. 저는 배달 중에 부딪힌 탓으로 여겼습니다만 동봉된 편지를 보고 그것에 태풍의 결과로 인한 농민들의 상처 난 가슴이 담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늘 그곳에서 문득 보내는제 마음을 받아 주시는선생님 계서서 행복합니다. 여름 태풍으로 멍든 농심이고스란히 감에 배였습니다.보기에 험하지만맛있게 보아주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건강하세요.저는 온전한 감은 항아리에 담고 터진 감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수습해서 신문지로 싸서 별도로 서재 앞 테이블에 두었습니다.
차근차근 제가 먹을 심산이었습니다. 심하게 상처 입은 순서대로 씻어먹고 일부는 여전히 발코니 테이블에 남아 있었습니다.
#212월 초 두 차례에 걸쳐 제법 큰 눈이 내리고, 헤이리는 온통 눈밭이 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에 추억을 반추하는 상념에 잠긴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쌓일 만큼 눈이 내리면 야생의 생명들은 먹이를 구하는 일이 곤란해집니다.
눈이 내린 이틀째부터 까치 외에는 한 번도 해모의 먹이를 넘보지 않던 녀석들도 수시로 방문해 해모의 먹이를 나누어 먹습니다. 직박구리와 딱새입니다. 허기진 배를 어찌할 수 없어서 해모밥에 접근하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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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새도 해모밥이 눈온 뒤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때의 비상식량이다. |
ⓒ 이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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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서재 앞에 남겨진 대봉감을 새가 먹은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신문지를 좀 더 걷어 새의 접근이 더 쉽도록 해두었습니다.
다음 날 롤블라이드에 비친 그림자를 보니 그 대봉감을 끼니로 삼은 것은 직박구리였습니다.
지난 태풍이 상처 낸 하동의 감이 눈 덮인 헤이리에서 직박구리의 귀한 식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감을 먹을 먹고 있는 직박구리의 그림자를 보면서 자연의 가없는 보시에 가슴 뭉클해졌습니다.
식당에 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 있는, 두 번 숟가락을 뜨고 밥을 남기는 사람들의 넘치는 풍요가 죄악인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관련글 : <자연이 키우고 사람의 수고로 영글은 대봉감> http://motif_1.blog.me/30124449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