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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아저씨가 걸어가는 긴 골목길
▲ 긴 골목길의 새벽 모습 '노가다' 아저씨가 걸어가는 긴 골목길
ⓒ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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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마지막 날 태백산의 한쪽 어느 어스름한 곳에서 동트기 1시간 전에 잠에서 깬다. 눈뜨자마자 이를 닦고 닦고 닦으면서 한참을 그냥 의자에 앉아 있는다. 이게 내 하루의 시작이다. 멍하게 있는 것도 잠시,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이불을 개고 챙길 것들을 문 앞에 잘 놔두고.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겹겹이 옷을 입는다. 방을 나서며 내 방에게 "잘 다녀올게~" 하고 인사하고 불 끄고 나간다.

문 밖은 컴컴하다. 해뜨기 직전의 새벽, 가장 어두운 새벽. 그런데 새벽공기는 더 이상 컴컴하지 않다. 긴긴 골목 끝으로 걸어가는 동안 컴컴한 새벽녘 터널 속에 푸르름이 스치듯 피어난다. 더불어 얼어붙은 내 마음에도 서서히 온기가 차오른다.

오늘 아침은 다른 날과 달리 특별히 든든히 배를 채우고 가야할 것 같다. 왜냐하면 기온이 보통이 아니다. 아랫배에 태울 에너지조차 없으면, 일하다 얼어버릴 수 있겠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편의점의 먹을거리 도시락 2500원, 컵라면 500원. 참 착한 가격이다. 3000원을 넘지 않아도 꽤나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다.

오늘 아침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간다. 왜냐? 손발이 얼지 않기 위해! 배에 저장할 에너지 공급원 편의점 도시락, 참 잘 나왔다.
▲ 편의점 도시락 오늘 아침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간다. 왜냐? 손발이 얼지 않기 위해! 배에 저장할 에너지 공급원 편의점 도시락, 참 잘 나왔다.
ⓒ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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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다고 맛이 떨어지느냐? 어허! 아니될 말씀. 우리나라 대~기업을 뭘로 보고. 고객을 만족시키는 입맛은 가히 '노벨식감상'(?)을 주고 싶을 정도이다. 화학조미료의 환상적인 배합 노하우는 정말 탁월하다. 어떻게 이 가격에 이런 도시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대기업의 고객사랑(?)에 잠시 고개를 조아린다. 이렇게 먹고 나면 아침에 추위를 확실히 덜 탄다.

인력 사무실엔 아직 몇 분이 안 오셨다, 앉아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들어와 어느새 스무 명 가까이 찬다. 인력 사무실 사장님이 호명할 때까지 여기 앉아서 난로불을 쬐고, 싸구려 믹스 커피를 마시고, 뉴스를 시청하면서 기다린다. 만약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오늘 일은 없는 거다. 땡친 거다!

앉아서 거진 40분 정도 대기한다. 거기서 나는 거진 뉴스만 본다, 사실 뉴스를 볼 것도 없다. 같은 얘기 반복이고, 새로운 소식이 얼마나 없으면 하나같이 뉴스들이 씨만 뿌려댄다. 매일같이 뉴스를 볼 수밖에 없는 사무실의 상황. 뉴스를 무의식적으로 보는 내겐 마치 "불신지옥" 듣는 것 같아 나의 뇌 속이 울렁거린다.

인력 사무실을 훈훈하게(?) 해주는 TV 뉴스.
▲ '불신지옥' 뉴스 시청 인력 사무실을 훈훈하게(?) 해주는 TV 뉴스.
ⓒ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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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불리면 일당 8만 원을 미리 받는다. 언제부터 일 나갈 때 일당을 미리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신기했다. 얼마 전까지 7만5000원이었는데 5000원 올라서 이제 8만 원이다. 일당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여기는 잘 주는 편이라고 들었다.

이름이 거의 호명되고 나면 우르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거기서 오늘 남은 사람은 3명이다. 일 못 나가면 괜히 서럽다. 뭐 별거 아닌데도 괜히 서럽다. 일 못 나간 세 분은 사무실에서 맥주로 서러운 마음 달랠 모양이다. 인생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마도 맥줏잔을 기울이면서 노사연의 <만남>이라도 불러야 할 분위기가 될 것 같다.

말이 많지 않지만 훈훈하고 정이 있다.
▲ 인력 사무실 모습 말이 많지 않지만 훈훈하고 정이 있다.
ⓒ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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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을 나서자 사거리에 붙어 있는 큰 현수막들. 평상시에는 바람만 휑~ 하던 사거리가 뭔가로 북적북적하다. 바로 대통령 선거 후보 현수막이 드디어 걸렸다. 참 고민이다. 정~말 고민이다. 누구를 찍어야 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고 지금 세상의 상황이 정말 고민인 것이다.

새벽에 일 나가는 일용직 노동자인 나란 사람도 이렇게 고민인데 나랏일 걱정하시는 분들은 어떨지 참 애석하고 씁쓸하다. 나 개인보다는 전체를 보고 가는 사명을 가진 분들과 나와 나의 조직만을 위해서 가는 분들, 두 분 모두 나름대로 얼마나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왜곡되고 변질되고 오염된 대중매체의 정보 속에서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일용직 노동자 또는 용역잡부라고 하는, 속칭 '노가다'를 뛰는 사람인 나는 사실 하루 벌어하루 먹고살기도 힘들다. 월세에 겨울 난방비, 이자 갚기, 카드값. 같이 일 나가는 사람들이 말한다.

"벌어먹고 살기 힘들지. 암~! 힘들지. 다 마찬가지지."

그래 진짜 먹고살기 힘들다. 그래서 정말 잘 뽑아야 하겠다. 그 잘 뽑아야 한다는 의미는 단지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건 나와 같은 많은 사람에겐 죽고 사는 문제이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들고 나르면서 일이 끝나는 오후 5시를 기다린다.


태그:#노가다아저쒸, #일용직노동다, #고민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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