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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표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표지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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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록웰(1894~1978)은 20세기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을 가장 잘 표현해낸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한다. 그는 주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 버스를 기다리거나 잡담을 즐기는 사람들, 일하는 여성들과 작업복 차림의 남자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는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도 그렸다. 그가 그린 <언론의 자유> <예배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노먼 록웰이란 그의 이름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스무 개의 표정으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재미있게 표현한 <가십>(1948, The Gossips)이란 작품이다. 

그림은 대략 이렇다. '어떤 여자 A가 어떤 사실을 B에게 속닥거린다. B는 자기가 알고 있는 C에게 그 말을 하고 C는 다시 E에게….' 이처럼 누군가 말하지 않았으면 묻히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어떤 사실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지면서 커다랗게 부풀려지기도 하고 전혀 다른 뜻이 되어 사람들 사이를 떠돌게 된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일어나곤 하는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소문을 처음 퍼뜨린 사람에게 그 소문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의 시작과 끝은 동일 인물이다.

처음 소문을 퍼뜨리는 여자는 누가 들을세라 가죽장갑 낀 손으로 뺨을 가린 채 말한다. 이야기를 듣는 여자는 "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와 같은 표정.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녀는 말을 옮기고 만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도 보인다. 아마도 누군가의 좋지 못한 사정을 즐기거나 비웃는 것 같다. 뜬소문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듣는 사람의 반응을 살피며 말하는 사람도 있고, 소문 속 주인공이 자신도 알고 있는 그 누구인지 불쾌한 모습도 보인다.

아무튼 록웰의 <가십>이란 이 작품은 소문이 퍼지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고,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이 재미있거니와 나름 메시지도 강해 이따금씩 일부러 보곤 하는 그림 중 하나다. 상품화된 것을 발견하면 값이 좀 비싸더라도 가급 구입해 집에 걸어두고 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그림이나 골동품 등을 구입해 소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노먼 록웰 <집을 떠나며>
 노먼 록웰 <집을 떠나며>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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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불경기를 겪은 세대로서 체념하고 억눌리고 노동에 지친 뉴 멕시코 농부인 아버지가,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도시로 떠나려는 아들과 함께 기차를 기다리고 중이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고단한 삶에 찌든 중년 남자와 부푼 가슴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젊은이의 대조가 인상적이면서도 대조적이다. 한 사람은 자신이 일생동안 파왔던 땅을 내려다보고 있고, 다른 한사람은 넓은 곳, 틀림없이 빛날 것이라고 믿는 미래를 향해 시선이 들려있다. 이처럼 매우 도식적이고 낙관적인 현실 묘사는 그 세대의 미국인들에게 깊은 흔적을 새겼다. 록웰의 재능은 어떤 상황을 하나의 장면에 매우 분명하고 서술적으로 축약시킬 수 있는 재능에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야기 전체가 눈앞에서 그대로 전개되는 듯하다. 또한 인물들은 생생하게 살아있을 뿐 아니라 몹시 친근하기까지 하다.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시공사 펴냄)은 상품화된 작품만이라도 가까이 걸어두고 시시때때로 보고 싶어하는 <가십>에 대한 내 감정이나 작가와의 특별한 인연, 혹은 투자의 목적 등과 같은 이유들로 소장, 세계 경매시장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 그림 100여 점에 얽힌 사연들을 그림과 함께 들려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노먼 록웰의 그림은 <집을 떠나며>(1954년. 111.8X111.8cm)'란,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2006년 11월 29일 무려 1541만6000달러(한화 약 174억8600만 원)에 경매되었다는 이 그림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숨어 있다.

이 그림을 처음으로 거래한 사람은 록웰의 친구이자 삽화가인 돈 트랙트. 그는 1960년에 록웰에게 900달러(한화 약 100만 원)를 지불하고 이 그림을 산다. 그런데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 일부를 부인과 나누게 되는데, 이 작품은 부인의 몫이 된다. 이후 그림은 록웰 미술관(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에 걸리게 된다. 그것도 미술관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아주 자랑스럽게. 

그런데 원래의 소장자였던 돈 트랙트가 죽은 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돈 트랙트의 가족이 그의 죽음 이후 그가 소장한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는 비밀스런 장소를 발견해내게 되는데 수많은 그림들과 함께 이 그림이 있었던 것. 그러니까 돈 트랙트가 부인에게 줄 그림들만을 복제해 주고 진품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연과 함께 소장자의 죽음과 함께 비로소 세상에 공개된 이 작품은 예상가의 4배에 팔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세계의 그림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경매가에 거래되었던 그림들의 숨은 사연과 여정을, 그림 쟁탈전에 뛰어든 세계 부호들의 이야기와 그림 투기를 부추기는 경매시장의 세계 등을 각각의 그림들과 함께 들려준다.

반 고흐 <의사 가셰의 초상>
 반 고흐 <의사 가셰의 초상>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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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파이프를 든 소년>
 피카소 <파이프를 든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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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랭 <콜리우르의 나무들>
 앙드레 드랭 <콜리우르의 나무들>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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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까지 프랑크푸르트 시립미술관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렸으나 1937년에 나치에게 '퇴폐미술'이란 명목으로 몰수되었다가 1990년에 8250만 달러(한화 약 932억9100만 원)에 경매된 빈센트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 2004년에 세계 그림 경매 사상 최초로 1억 달러를 가볍게 넘어 선 파블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그림의 존재를 아는 유일한 사람까지 강제수용소에서 죽는 바람에 반세기 만에 세상에 알려졌으나 30년 동안 법정에서 소유주 싸움을 벌인 끝에 2010년에 2414만4693달러(한화 약 273억800만 원)에 거래된 앙드레 드랭의 <콜리우르의 나무들> 등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0여 점의 작품들은 이상적인 컬렉션에 속하는 예술가의 작품들 중에서 최고 경매가에 따라 선택된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100점의 작품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 예술가에서는 한두 점의 작품만 선택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진짜 최고가의 작품 100위 안에는 피카소의 작품이 무려 17점이나 포함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베이컨이 11점, 클림트가 7점, 모네가 5점, 모딜리아니가 5점, 반 고흐가 5점, 세잔이 5점, 워홀이 5점이나 올라있다. 100점의 작품들 가운데 이 8명의 예술가들의 작품 수만 60점이나 된다. 같은 화가의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본래의 의도에 맞지 않을뿐더러, 명화여행이 너무 단조로워질 위험이 있다.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은 모두 경매시장에 나온 것들이고, 거의 대부분이 개인 컬렉션에 포함된 것들이다.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머리말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모네, 마네, 클림트, 루벤스, 로댕, 피카소, 고갱, 고흐, 세잔, 등 세계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워낙 유명한 화가(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소개된다. 사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은 대개 천문학적인 가격을 주고도 쉽게 소유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은 경매시장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한편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술사에 나름 중요한 인물이 그렸거나 어떤 이유들로 천문학적인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들도 있을 것이다. 책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폭넓은 작품 선정을 함으로써 책 한 권으로 가급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무엇이며 대체 얼마에 팔린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이와 같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은 물론, 세계 미술사와 그림 경매사의 주목을 끄는 100여 점의 작품에 얽힌 가지가지 사연들과 그 예술가들의 삶, 그림에 반영된 세계사까지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명화여행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ㅣ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아르노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씀|김주경 옮김 |시공아트(시공사) |2012-10-25ㅣ정가 20,000원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 500년 미술사와 미술 시장의 은밀한 뒷이야기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외 지음, 김주경 옮김, 시공아트(2012)


태그:#그림, #경매, #컬렉션, #명화, #노먼 록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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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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