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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의).
 드라마 <마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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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월화 드라마 <마의>의 주인공인 백광현(조승우 분)이 마의가 된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태어나자마자 불행이 닥치지만 않았다면, 그는 한성 최고의 재력가이자 명문가인 집안에서 유복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드라마 속 백광현의 불운은 1645년 소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과 함께 시작됐다. 그의 아버지가 소현세자 독살의 진상을 눈치 챈 것이 화근이었다. 독살의 배후에는 세자의 아버지인 인조 임금이 있었고, 백광현의 아버지는 도리어 반역자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가 처형된 직후에 태어난 백광현은 관군의 손에 죽을 뻔했지만, 그의 아버지로부터 은덕을 입은 사람이 그를 빼내 자식처럼 키워준 덕분에 외딴섬에서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해가 흐른 뒤 백광현의 양아버지마저 관군에 쫓겨 죽임을 당하고, 함께 도망가던 백광현은 벼랑에서 물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직후에 그가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어 말 목장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마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스토리다.

주인공 백광현 둘러싼 이야기는 대부분 허구

모든 사극의 인물 이야기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드라마 속 백광현이 마의가 되는 과정은 거의 다 허구다. 그의 출생과 불행이 소현세자의 죽음과 함께 시작됐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조선 후기의 문인인 정내교의 문집인 <완암집>의 제4권 '백태의 열전'에서는 "태의 백광현은 …… 인조 시대에 태어났다"고 했다. 조선 후기 영의정인 조현명의 문집인 <귀록집>의 제14권 '백지사 묘표' 즉 '백광현 묘비'에서는 "(그가) 을축년에 태어나 정축년에 사망했다"고 했다.

인조시대(1623~1649년)의 을축년은 서기 1625년 2월 7일부터 1626년 1월 27일까지다. 소현세자는 1645년에 사망했으므로, 세자가 사망할 당시에 백광현은 스무 살 혹은 스물한 살이었다. 세자가 사망한 직후에 백광현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드라마 속의 허구에 불과하다.

백광현의 집안이 한성 최고의 재력가이자 명문가였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위에 언급한 "태의 백광현은 …… 인조 시대에 태어났다"의 말줄임표(……) 부분에는 "작은 집안의 자식이었다"는 문장이 있다. 또 뒷부분에는 "집안이 본래 가난해서"라는 문장도 있다. 백광현은 일반적인 서민 가정 출신이었던 것이다.

또 <귀록집>에 따르면, 백광현은 임천(林川) 출신이었다. 임천은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성의 유력 가문에서 출생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 이처럼, 백광현의 가문과 출신에 관한 한, 이 드라마는 거의 다 허구다. 

백광현(조승우 분).
 백광현(조승우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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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소현세자가 드라마에서처럼 아버지와 갈등을 겪던 중에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가 사망할 당시에 독살론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인조 23년 6월 27일자(1645년 7월 20일) <인조실록>에서는 소현세자의 시신을 묘사하면서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 뒤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고 했다.

이 사실을 기록한 사관은 위의 대목 바로 뒤에 "주상께서도 이런 것을 알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위 대목의 앞부분에서 인조와 세자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인조가 사건에 개입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관은 '청와대 최고 핵심'이 세자의 급사에 관여했다고 판단한 듯하다.

드라마 <마의>에서는 그 같은 사건이 원인이 되어 백광현이라는 아이가 말 목장에 흘러들었다는 스토리를 전개했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런 이유 때문에 그가 자연스레 마의가 되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설정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백광현이 마의가 된 사연은 좀 엉뚱하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드라마 내용이 약간은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귀록집>에 따르면, 백광현은 어려서 승마와 궁술을 익혔다. 이 덕분에 우림군에 선발됐다. 우림군은 금군, 즉 왕궁 경호부대였다. 그런데 그는 무과 시험 출신은 아니었다. 특채 형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급 무관이었던 듯하다.

조선시대 무과시험에서는 2차 시험인 복시에서 필기시험을 치렀다. 유교경전·병법서·역사서 등이 시험과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예만 잘한다고 붙을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백광현은 처음부터 '공채' 대신 특채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그가 나중에 의술을 익힌 과정을 볼 때 그런 추론이 가능하다. 그는 의학서를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실습을 통해 의술을 배웠다. 지능이 탁월해서 그렇게 된 측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시험공부와는 거리가 좀 멀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특채 형식으로 금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백광현이 마의가 된 까닭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의 풍경.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의 풍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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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군에 근무하던 중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사고가 그를 의술의 세계로 인도했다. 사고라는 것은 낙마 사고를 말한다. 근무 중에 이런 사고가 생긴 듯하다.

낙마 사고 후에도 근무는 계속했지만, 부상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귀록집>에서는 이 때문에 그가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을 계기로 백광현은 의술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체라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신체를 고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백광현은 항상 주머니에 침을 넣고 다녔다. 그리고 틈만 나면 침을 꺼내 만지작거리곤 했다. 활터에서 궁술 연습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침을 꺼내 돌에 갈곤 했다. 

<귀록집>에 따르면, 그가 습관적으로 침을 돌에 가는 모습을 보고 한번은 동료가 "사람 죽이고 싶냐?"고 놀린 적이 있다. 그러자 백광현은 "니들이 나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가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금군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신체에 대해 고민하고 침술을 연습한 끝에 백광현은 서서히 의술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완암집>에서는 그가 "의학서에 근본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혼자 궁리하고 혼자 실습한 끝에 의술을 터득한 것이다.

약간은 책도 보고 의사들에게 물어도 봤겠지만, 백광현은 기본적으로 독학으로 의술을 습득했다. 의학서를 사실상 무시하고 독학으로 배웠는데도 그는 나중에 '신의'라는 칭송을 받았다. 천재적 소질의 소유자였던 것이 틀림없다. 

의술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자, 백광현은 말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상당한 실력을 쌓은 뒤에 사람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마의에서 일반 의사로 자연스레 전환된 것이다.

이 점을 본다면, 백광현이 처음에 마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추론할 수 있다. 거의 독학으로 배운 의술이라서 선뜻 사람을 다루기 힘들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또 직업적으로 말을 가까이하다 보니, 말을 상대로 의술을 시험해보는 것이 훨씬 더 편했을 것이다.

드라마 속의 백광현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의술을 배우게 됐지만, 위와 같이 실제의 백광현은 낙마로 인한 투병생활을 계기로 의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그를 의료인으로 만든 셈이다. 만약 그가 승마에 좀더 강했다면, 의료와는 관계없이 금군으로 사회생활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태그:#마의, #백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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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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