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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쓰레기를 남기는 존재입니다.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습니다'하고 계몽하는 글이 화장실이고 공원이고 함께 쓰는 곳마다 붙어도 좀처럼 쓰레기는 줄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이웃과 다투는 이유 중 상당수도 주차 문제와 더불어 쓰레기 때문입니다. 어느 빌라에는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다가 걸리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반 협박문이 걸려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음식물은 더욱 골치가 아픕니다. 음식물 쓰레기에 관한 최대 관심은 아마도 먹고 남은 걸 어떻게 깨끗하게 버려야 할까에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지자체에서 음식물 쓰레기 수거비용을 올렸더니 쓰레기 양이 확 줄었다는 뉴스도 나오고, 싱크대에서 음식물을 갈아서 버릴 수 있는 처리기계도 판매됩니다. 편리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게 흘려보내면 수질오염은? 어떻게 될지 뻔한 일입니다.

줄인다고 해결되지 않는 음식쓰레기

서울 인수 마을에서 모아온 음식 부산물은 액비 등과 함께 섞어 발효하면 훌륭한 퇴비가 된다
▲ 퇴비 만들기 서울 인수 마을에서 모아온 음식 부산물은 액비 등과 함께 섞어 발효하면 훌륭한 퇴비가 된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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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남기는 음식물이 15조 원에 이른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그만큼 쉽게 남기고 버린다는 뜻이지요.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음식은 남기지 않고 싹싹 먹는 빈 그릇 운동도 있습니다. 그래도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음식찌꺼기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것까지는 어쩌지 못합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도 강원 홍천 효제곡마을로 귀촌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생명농업을 하지 않았다면, 적게 남기는 것을 넘어선 실천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귀촌한 이들이 화학비료나 비닐을 쓰지 않고 퇴비도 직접 만들어 쓰면서, 요리하며 나오는 음식물이 더는 쓰레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농사하는 이들이 서울 인수마을 사람들에게 음식물을 버리지 말고 모아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기면 밭을 살리는 좋은 밑거름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음식물쓰레기가 아니라 '밥상부산물'이라 부릅니다.

서울서 모은 '밥상부산물'은 한 달에 한두 번 트럭이나 짐칸이 있는 차에 실어 이곳 홍천 효제곡 마을로 보내줍니다. 효제곡에 가면 다시 오줌으로 만든 액비 등과 함께 발효시켰다가 밭에 거름으로 뿌립니다. 친구들이 정성껏 바르게 지은 농산물을 먹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내가 보낸 밥상부산물을 모아 만든 퇴비로 기른 음식을 다시 먹는 것도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감격을 누리는 데는 작은 정성이 필요합니다. 부산물을 집에서 모았다가 집 앞에 있는 음식물쓰레기 수거함 대신 조금 걸어서 마을밥상 부엌 뒤편 작은 광에 있는 통에 넣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톱밥을 뿌려줍니다. 여기에 누군가 통에 부산물이 차는 것을 확인했다가 홍천을 오가는 이들에게 연락하는 눈썰미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모아놓은 부산물을 홍천까지 실어 나르는 사람과 퇴비로 만드는 농부들의 노고가 제일 큰 정성입니다.

버리지 않고 다시 땅을 살리는 밑거름으로

마을밥상 뒷편 광에 밥상부산물을 모으는 통. 음식 부산물을 통에 넣고 옆에 마련해놓은 톱밥을 뿌려주면 된다.
▲ 밥상부산물 모으는 통과 톳밥 마을밥상 뒷편 광에 밥상부산물을 모으는 통. 음식 부산물을 통에 넣고 옆에 마련해놓은 톱밥을 뿌려주면 된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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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홍천 사이에 밥상부산물을 옮기는 일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퇴비를 생산하는 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부산물을 받아 퇴비를 만든 윤희님은 "부산물을 보면 요즘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안다"고 말합니다. 서울 사는 사람에게는 못 먹는 것이지만 농사꾼에게는 좋은 주전부리가 될 만한 음식도 버려지는 게 확인되기도 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마을밥상 지기로도 일하고 있는 한영님은 "홍천에서는 호박씨 같은 것도 버리지 않고 말렸다가 까먹거나 요리할 때 넣는다"고 합니다.

삼백 리나 떨어져 있어도 밥상부산물을 보면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록 퇴비가 되기는 했지만, 왜 이런 음식을 먹지 않고 버리게 되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겠지만, 이러한 농부들의 조심스러운 나눔은 도시 사람들에게 '쉽게' 버렸던 내 삶을 회개하게 하는 살아 있는 설교가 됩니다.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가 먹지 못하고 그대로 버렸던 일들이 생각나 부끄러웠습니다. 냉장고가 있어서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것 같은데, 돌아보면 그만큼 불필요하게 쌓아놓고 살다가 주체하지 못해 버리는 일도 많습니다. 늘어나는 냉장고 용량만큼 내 식탐도 늘고 나눔 대신 버림이 훨씬 많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농부가 되면서 쓰레기로 버리던 것들이 퇴비가 되고 흙을 살리고 도로 내 밥상에 오르는 경이로운 체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부산물과 농산물이 도시와 농촌을 오가면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사는지 훤히 아는 스승 같은 친구들도 얻었습니다.

얼마 전 퇴비더미 옆에 심지도 않은 호박 줄기가 뻗어났다고 합니다. 또 밀도 몇 포기 자랐다고 합니다. 음식부산물 속에 섞여 있던 밀과 호박씨가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생명은 그렇게 버려지지 않고 우리 곁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홍천 서석면 효제곡 마을과 서울 인수 마을에 농도상생공동체를 일구며 살고 있는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소식지 <아름다운마을신문>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아름다운마을, #음식물쓰레기, #퇴비,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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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살면서,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영월한옥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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