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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새 정부 취임도 하기 전에 영어몰입 '어륀지' 교육을 외쳤다. 사교육비 50% 절감, 공교육 만족도 2배를 위해 영어공교육강화정책을 줄줄이 발표했다. 영어만 잘하면 군대도 면제한다는 발언으로 역풍을 맞기는 했으나, 이명박 정부 내내 실용영어 중심의 영어정책은 착실하게 진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초등 영어수업시수 확대와 영어회화전문강사제도 실시, 2009개정교육과정,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도입, 영어교육과정개정, EBS e프로그램 활용 방과후 수업 활성화, 교사영어연수강화, 영어체험교실확대 등이다. 이 정도라면 영어사교육비도 절감되고 학생들의 영어실력도 늘었을까? 과연 우리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영어 안 배우면 편협해진다고?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경감과 도농 영어격차를 줄이기 위해 3-6학년 초등영어수업시간을 늘린다고 했다. 당시는 2006년에 개정한 영어교육과정에 따라 검정교과서가 개발중이고, 3-6학년 영어수업시간확대 연구학교가 진행중이라 정책결정의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사교육비경감과 도농 영어격차는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초등영어를 처음 들여올 때부터 쓰였던 논리라 전혀 새로운 논리가 될 수 없었다.

서울대 이병민 교수는 영어 사교육은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게임이므로 공교육 시간이 늘면 사교육은 더 늘어나며 영어를 안 쓰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303.9시간(40분*3*19주*4학기=303.9시간)이 늘어나도 효과는 미미하고 학교밖 격차가 더 늘어날 것이라 했다. 영어 공교육 완성이란 것 자체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학자들이 동조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어몰입정책에 올인한 정부는 영어로 교육을 안 받으면 사고가 편협해진다는 걸 근거로 내세웠다. 토론회에서 이 논리가 근거가 있냐고 묻자 개인적 견해라고 후퇴할 정도로 영어몰입을 위해서라면 궤변과 억지가 다 동원되었다(관련기사 :  초등영어시수확대, 기초연구부터 부실).

"사춘기가 넘을 때까지 모국어로만 교육을 받고 생활한다면, 사고방식과 문화가 자국어 방식으로 굳어져 버린다. 자신의 것과 다른 사고 방식과 표현 방식을 접하지 못하면 자신의 사고가 편협해지기 쉽고 집단적으로 비슷한 획일적 사고를 하게 되고, 유연한 사고력을 기르기 어렵게 된다."(2008년 11월 20일 초등영어수업시수확대 발제문 2쪽)  

"늘어난" 초등영어수업, 사교육비 늘고 학생부담 늘리고

2008년 12월, 드디어 영어수업시수확대 연구학교 결과가 나왔는데 사교육비가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나중에는 영어수업시간이 주당 1, 2시간으로 부족해서 늘린다고 했다. 영어몰입교육이나 영어공교육강화론 자체가 체계적인 연구나 사회적 합의 없이 맹목적으로 추진된 계획인 셈이다.

결국 늘어난 영어수업시간은 초등학생들의 수업부담을 늘리고 올해부터 시행되는 주5일 수업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면서 늘어난 수업시간은 영어회화전문강사(이하 영전강)에게 맡긴다고 했다. 2010년 초반 교육청들은 일부 학교에 배치된 영전강들이 '늘어난' 수업시간을 담당해야 하므로 3, 4학년 영어 2시간중 1시간은 초등교사(영어전담), 1시간은 영전강이 하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했다가 현장의 항의를 받고 한 학년씩 맡기는 식으로 변화됐다. 당시 초등교사 수업시수와 업무양이 OECD기준으로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긴 했으나, 철학도 원칙도 없이 단지 '늘어난' 영어수업시간을 땜질하기 위해 생긴 영전강 제도는 시작부터 좌충우돌 요란했다.

사교육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어광풍이 몰아친 2008년에는 초등영어 사교육비가 15.9% 증가하고, 2011년에도 학생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영어 사교육비는 더 늘어났다(사교육없는 세상 분석). 정부가 영어공교육에 가장 돈을 많이 들인다지만 영어 사교육비에서도 50% 감축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다. 여기에 어학연수나 학교 방과후예산은 들어가지 않으니 실질적으로는 더 늘어난 셈이다.

4년 배워도 '영포아' 양산, 사교육 조장하는 영어교육과정

영어교육과정도 문제가 많다. 7차 영어교육과정에서부터 놀이와 활동은 많지만 파닉스(발음법)가 안 나와 4년 배워도 눈뜬 장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8개정영어는 수업시간을 늘리고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다 강화한다며 파닉스가 나오지만 한 시간에 몇 개씩 나와 공교육만으로는 도저히 배우지 못할 상황이다.(관련기사 : 초딩아이, 영어 사교육 꼭 해야겠네) 웃고 즐기며 공부해도 5백개의 단어와 수백개의 파생어를 무조건 외어야 하니 5, 6학년 가면 답답함만 늘고 영어를 포기하게 된다.

어설프게 만든 교육과정이라 교육과정 적용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세심한 배려도 하지 않았다. 올해 6학년은 4학년에 2008개정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3학년 2학기 내용이 결손되고(관련기사: 초등 4학년, 알파벳도 안가르치고 읽고 쓰라? ), 중학교 1학년은 작년에 102시간 분량 내용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관련기사 : 읽는 법도 안가르치고 520단어를 외워라?) 영어회화전문강사제도니 교사연수니 만들어 수백억 들이면서, 정작 국가교육과정 때문에 생기는 학생들 학습결손을 보완할 예산 5억원은 없다고 외면했다. (관련기사 : 이주호장관님, 이런 특혜는 사양하겠습니다)

온갖 논리로 수업시간만 늘려놓고 정작 영어시간에만 영어를 접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영어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연구가 없었다. 학생들은 학교영어수업시간이 늘어 배울 양도 많고 어려운데다 사회적 중요성은 더 커지니 사교육도 더 해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초등 1, 2학년까지 영어수업 광풍

초등 3-6학년 영어수업시간이 늘었는데, 여기에 교육과정에 영어가 없는 초등 1, 2학년마저 영어수업에 휘둘리고 있다. 올해 전국적으로 1, 2학년 영어수업이 17시간 이상(초등에서 교과수업으로 보는 기준)인 학교가 1082개(정진후 의원실 국감자료)였다. 경북은 안하는 학교를 찾기 어려웠다. 이는 작년 821개학교(안민석 의원실 국감자료)보다도 훨씬 늘어난 통계다. 바로 이명박 정부가 창의인성과 체험 중심의 교육과정이라고 무리하게 개정한 2009개정교육과정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한 탓도 있지만, 영전강들의 수업시수 때문에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작은 학교는 영전강의 의무수업시수 18~22시간을 채우지 못해 저학년까지 영어수업을 하기도 한다.

주5일 수업도 어렵게 됐다. 주5일 수업제는 1990년대 초부터 우리 교육계의 염원이었다. 가정과 사회의 교육력을 높이고 교육의 질적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런데 교과부는 2008년 영어시간을 늘리면서 다른 영역을 줄이지 않아 수업부담이 더 많아졌다. 2010년, 2011년에는 초등 7교시까지 등장했다.

2009개정교육과정에서는 늘어난 영어 대신 (3학년)국어와 (4~6학년)창의적 체험활동을 주당 1시간씩 줄여놓고 주5일제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수업시간을 감당못하니 주5일 수업 전면 '자율' 실시라고 하여 교과부가 책임져야 할 일을 학교에서 설문조사해서 결정하라고 전가한 셈이다.  

학교자율화로 새로 오는 교사는 다 영어교사?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창의인재를 기르기 위해 2009개정교육과정을 만들고 학교 자율로 수업시수 20%증감을 허용했다. 그 결과 몇 년째 예체능은 줄거나 제자리고 영어수업시간만 대폭 늘었다. 2011년 중학교 1학년 수치만 보더라도 다른 교과교사는 줄고 영어교사 수요만 1000명이 넘게 증원해야 할 정도이다. 공교육이 영어와 기타교과로 나뉘고, 교사들도 영어와 기타교사로 나뉘어야 할 형국이다.

2011학년도 중1 신입생 수업시수증감 현황표입니다. 파란색은 시수가 늘어난 교과이고 나머지는 다 줄어들었습니다. 학생선택권과 다앙햔 교육을 하겠다던 1009개정교육과정은 결국 수학과 영어를 강화시켜, 그야말로 글로벌 교육과정이 되고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사수급도 기형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2011학년도 중1 신입생 수업시수증감 현황표입니다. 파란색은 시수가 늘어난 교과이고 나머지는 다 줄어들었습니다. 학생선택권과 다앙햔 교육을 하겠다던 1009개정교육과정은 결국 수학과 영어를 강화시켜, 그야말로 글로벌 교육과정이 되고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사수급도 기형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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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영어몰입정책으로 전인교육을 해야 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까지 영어가 가장 우선시되고 학생들은 영어광풍에 시달리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학생들은 영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일까? 모든 학생이 이렇게 영어에 시달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영어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오게 된다.    

<이명박 정부와 초등교육>
1. 영어만 잘하면 수업하라? - 영어회화전문강사제도 어떻게 볼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서 영어몰입교육의 문제점 두 번째 기사가 이어집니다.



태그:#영어몰입교육, #영어회화전문강사, #초등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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