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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전당'처럼 알려진 하버드대학의 어두운 역사를 세계 최초로 다뤄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의 제작자 신은정 감독이 3일 사망했다.
▲ 신은정 감독 '진리의 전당'처럼 알려진 하버드대학의 어두운 역사를 세계 최초로 다뤄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의 제작자 신은정 감독이 3일 사망했다.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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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하버드 대학의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고발한 다큐멘터리 'VERITAS(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의 신은정 감독이 유명을 달리했다.

신은정(40) 감독은 심장마비로 쓰러져 2일 오전(미국 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신 감독의 사망원인은 뇌출혈로 인한 심장마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출신인 신은정 감독은 2005년 <신좌파의 상상력> 저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보스턴 웬트워스공과대학 교수와 결혼 후 보스턴과 한국를 오가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다. 신 감독은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지적하며 올바른 해결을 위해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학자 놈 촘스키 등 미국 내 양심적 지식인들의 서명운동을 이끄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해 왔다.

남편 카치아피카스 교수 "엄청난 슬픔"... 5일 장례식

신 감독이 2011년 제작한 <베리타스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은 세계 처음으로 하버드 대학의 어두운 역사를 드러낸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인터넷 글을 통해 "내 사랑하는 아내이자 파트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활동가 동료인 신은정의 죽음을 엄청난 슬픔과 함께 전한다"며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며 비극"이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신 감독의 최근 작업을 소개하고 "11월 5일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예배당에서 보라색 옷을 입고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고 밝혔다. 그가 '보라색 옷'을 장례식 복장으로 결정한 것은 평소 신 감독이 보라색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을 도와 <베리타스> 제작에 참여했던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은 자신의 블로그에 "광주를 사랑했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당당한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라며 "살아있을 때 그녀가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었던 사랑을 이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돌려줘야 하겠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신 감독의 지인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미국 보스턴 장례식 이후 입국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입국해 광주에서 별도의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신 감독의 사망 소식을 접한 광주지역 영상운동 활동가, 광주인권영화제, 광주독립영화제 관계자와 지인들은 유가족들과 협의해 추모 일정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들은 3일 오후 모임을 열고 '(가칭)신은정 감독 장례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별도의 추모 행사 등을 열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광주인권영화제 측은 신 감독이 영화제 발전을 위해 바친 열정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오는 11월 중순에 열릴 예정인 영화제에서 신 감독 추모 섹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광주인권영화제 등 독립 영상운동가들이 추모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나선 것은 신 감독의 영상운동에 대한 애정과 활동 때문이다.

신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이어 지난 6월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 하버드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해 왔는가>(시대의 창)를 출간해 주목받았다. 사진은 지난 7월 6일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린 북콘서트 당시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신 감독 모습.
 신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이어 지난 6월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 하버드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해 왔는가>(시대의 창)를 출간해 주목받았다. 사진은 지난 7월 6일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린 북콘서트 당시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신 감독 모습.
ⓒ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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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횡단하는 여자' 신은정... 하버드의 이면을 세상에 드러내다

신 감독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KBC(광주방송), KBS광주총국에서 10여 년 동안 방송작가로 일하며 낮은 목소리를 담아내려 노력했고 지역사회 문제 등을 통찰력 있게  짚어내는 실력있는 작가였다.

신 감독은 자신을 '경계를 횡단하는 여자'라고 칭했다. 저자 사인회에서 가장 자주 썼던 문구다. 비판에 성역도 없고 경계 짓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기도 하다. 신 감독의 행적에서 이 다짐은 고스란히 묻어 났다.

신 감독은 광주인권영화제 기획자(프로그래머)로 여러 해 동안 활동했던 활동가였으며 광주지역 영상운동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왔다. 방송작가로서 그는 사회적으로 울림이 큰 기획물을 제작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시작해 2010년엔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재적 계승을 주제로 한 <광주항쟁의 유산>을 제작했으며 2011년엔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부제: 하버드의 역사와 전세계적 영향력에 대한 비평적 분석) 등을 제작했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한 <베리타스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리의 전당, '진보의 전당'처럼 각인 돼 있는 하버드의  어두운 역사를 세계 최초로 다룬 작품이다. 신 감독은 하버드 인맥이 정치경제 권력과 관계 맺기를 통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리타스'는 하버드대학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이다. 라틴어로 '진리, 진실'을 뜻한다. 신 감독은 문장 VERITAS의 'S'자를 달러표시($)로 바꿨다. '지성의 상징'으로 통하는 하버드대학이 미국 주류사회의 지배논리를 생산하면서 탐욕의 옹호자였음을 비꼬았다. 지난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신 감독은 "하버드는 도서관을 갖춘 헤지펀드"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미국 하버드의 이면을 다룬 것이지만, 한국의 대학 특히 서울대 인맥 혹은 서울대를 중심으로한 서열주의 대학 교육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어 우리 대학교육의 현실에 많은 시사점과 질문을 던졌다. <베리타스 :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인디영화의 산실인 뉴욕국제독립영화제(NYIFF)에서 다큐부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뉴욕 브레이트 포럼을 비롯한 미국 영화학자들의 모임인 '영화 및 미디어 연구학회' 공식 상영작으로 상영회를 갖기도 했다.

또한 지난 5월에는 터키 국제노동영화제(ISCI)에 초청되는 등 크고 작은 외국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으며 미국 25여 개 도시, 하버드 등 유수대학, 국내 대학 및 도시에서 수 십 차례 상영회를 열었다.

신 감독의 다큐멘터리 <베리타스>는 기획의 과감성과 작품성이 인정받아 여러 국가 영화제와 대학 등에 초청돼 상영회 등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5월 3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노동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신 감독 모습.
 신 감독의 다큐멘터리 <베리타스>는 기획의 과감성과 작품성이 인정받아 여러 국가 영화제와 대학 등에 초청돼 상영회 등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5월 3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노동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신 감독 모습.
ⓒ 신은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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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감독과 남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이들은 지난 6월 '6월항쟁 25주년 국민행사'에서 신 감독의 작업을 지원해 온 미국 내 사회단체 '에로스효과재단' 부스를 설치하고 신 감독의 서적과 카치아피카스의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항쟁들’(전 2권·난장) 출간을 홍보하기도 했다.
 신 감독과 남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이들은 지난 6월 '6월항쟁 25주년 국민행사'에서 신 감독의 작업을 지원해 온 미국 내 사회단체 '에로스효과재단' 부스를 설치하고 신 감독의 서적과 카치아피카스의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항쟁들’(전 2권·난장) 출간을 홍보하기도 했다.
ⓒ 신은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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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져보고 싶었다"

지난 6월에는 다큐멘터리에 담지 못한 자료와 인터뷰 등을 모아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 하버드는 세계를 어떻게 지배해 왔는가(시대의 창)>를 출간하고 수 차례 북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사망 직전까지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 하버드는 세계를 어떻게 지배해 왔는가> 영어판 출간을 위해 영어 번역 작업 중 이었다.

주위에서 '광주의 딸'이자 '바다'라는 별칭으로 통했던 신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사회와 북콘서트 첫 장소는 모두 '광주'였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상영 역시 '광주'. 지난 10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 동안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광주독립영화제가 그것이다.

'경계를 횡단하는 여자' 신은정 감독은 지난해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등이 주최한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첫 시사회를 앞두고 가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의 책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전이 과거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베트남전에 찬동하고 복무했던 학자들이, 이라크에 가서 효율적 고문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학자들이 학자적 양심과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심판 받은 적 없고 책임진 적 없기 때문이다. 하버드 학생운동 조직의 의장을 지낸 마이클 엔세라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정책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그것이 이끌어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하버드 학자들은 늘 자유로웠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학자들이 정부 입맛에 맞게 정책을 마사지 해준 다음 그 대가로 신분과 지위 상승을 꾀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해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역사의식, 인간에 대한 애정 없는 자들이 지식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썼을 때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고등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 20세기는 고등교육 급속히 확장된 세기였다. 20세기는 교육의 세기였지만 교육의 목적이 힘과 자본을 좇는 네트워커를 양산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왜곡된 것은 하버드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화두처럼 내 스스로도 진정한 교육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져보고 생각해보고 싶었다."

<베리타스>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신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한편 신 감독의 미국 장례식과 입국 수속 절차 등을 감안할 때, 신 감독의 유가족들은 10일을 전후해 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은정 감독은 광주출신으로 전남대 심리학과 졸업 후 KBS광주총국 등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광주인권영화제 기획자로 활동했다.
 신은정 감독은 광주출신으로 전남대 심리학과 졸업 후 KBS광주총국 등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광주인권영화제 기획자로 활동했다.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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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신은정 감독,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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