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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1일 오후 9시]

6월 24일 오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회 특전사마라톤 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맨 오른쪽). 12.12쿠데타, 5.18광주학살 관련자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정호용 전 국방장관(가운데) 등의 모습이 보인다.
 6월 24일 오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회 특전사마라톤 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맨 오른쪽). 12.12쿠데타, 5.18광주학살 관련자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정호용 전 국방장관(가운데) 등의 모습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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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수상하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 유지'를 임무로 하는 보훈처가 본연의 임무는 소홀한 채 '안보교육'을 앞세워 극우보수 이데올로기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특정 정치인 미화와 함께 현 정권 홍보에 앞장서는 등 대선을 앞두고 정치개입을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그 정점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있다.  

논란의 단초는 최근 보훈처 국감에서 거론된 이른바 '종북 DVD'. <한겨레> <뉴스타파> 등의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DVD는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을 '종북세력의 활동'으로 매도한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사업 타당성 여부 및 환경파괴 등으로 논란을 빚어온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홍보성 멘트를 담고 있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민주통합당 정호준 의원. 국회 정무위 소속(보훈처는 정무위 소관임)인 정 의원은 지난 23일 문제의 DVD를 입수해 이를 국감에서 공개했다. 정 의원은 이날 보훈처 종합국감을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보훈처의 동영상 자료를 살펴보니 박정희의 업적을 '신화'라 찬양했고, 반유신·반독재 운동을 민주화투쟁을 빙자한 종북좌파 세력이라고 폄하했다"고 폭로했다. 참고로 4·19혁명 및 5·18광주항쟁 공로자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보훈 대상자들이다.

정 의원은 또 "(DVD는) 평화적·자발적 집회였던 '광우병 촛불집회'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종북세력의 반정부 투쟁으로 묘사한 데 이어 쌍용차 노조 파업에 대해서는 종북세력의 활동이라 지칭했다"며 이같은 DVD는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행해진 명백한 정치개입인 만큼 "국가공무원법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위반한 보훈처장은 DVD 배포 배경을 밝히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DVD는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주제로 3편, '남북관계' 4편, '북한 실상' 4편 등 총 11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편당 5~10분 분량의 동영상들이 3~7개씩 편집돼 있다. 24일자 <노컷뉴스>는 "이 DVD는 지난해 말 11편의 동영상이 한 세트로 제작됐으며, 1000세트가 올 4월에 실시된 제19대 국회의원선거와 12월 실시될 제18대 대통령선거에 맞춰 전국의 보훈관서와 민간단체 등에 배포됐다"고 보도했다.

민주화운동 '종북' 폄하한 동영상, 전국에 1000세트 배포

보훈처가 배포해 물의를 빚은 '종북 DVD'
 보훈처가 배포해 물의를 빚은 '종북 DVD'
ⓒ 뉴스타파 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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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관계자는 "이 영상들을 보훈·애국단체 등에 배부해 회원 교육에 사용하도록 하고, 보훈관서에서 대외기관 나라사랑교육을 추진할 때 활용하도록 해왔다"고 밝혔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DVD 중 일부는 부산경남지역 일부 학교와 시민단체에 배포됐으며, 몇몇 학교에서는 일부 내용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 DVD는 외부에서 협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야당 의원들의 공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박 처장은 23일 국감에서 "지금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논란이 된 DVD의 '협찬' 주체를 두고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 보훈단체 관련 인사는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가 협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제보해왔다. '국발협'은 박승춘 보훈처장이 민간인 시절인 2010년 8월 안보강연을 목적으로 만든 재단법인으로, 박 처장은 취임 후 이곳에 '안보강연 몰아주기' 등 특혜를 제공해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올해 1월 16일자 <한겨레21>(894호) 보도에 따르면, 서울북부보훈지청은 지난해 7월 관할 구청에 공문을 보내 안보강연을 지시하면서 국발협 강사를 안보 강사로 추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전국의 기초·광역 자치단체에서 안보강연을 한 강사 455명 가운데 국발협 소속이 144명을 차지했으며 군부대 안보강연도 휩쓴 것으로 알려졌다.

국발협은 지난해 1323회에 이르는 예비군 동원훈련 안보교육 강사를 지원했으며, 올해 국방부와의 정식계약을 통해 동원훈련 안보교육 업체로 선정됐다. 국발협은 올 한 해 동안 실시되는 1272회의 동원훈련 안보교육에 대한 독점권을 따냈으며, 안보교육에 대한 대가로 국방부로부터 모두 2억2000만 원을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31회) 보도에 따르면, 논란이 된 DVD 배포를 담당한 부서는 보훈처 '나라사랑교육과'로 확인됐다. 이 과는 보훈선양국 산하에 소속돼 있으며, 지난해 2월 부임한 박 처장이 6월 7일자로 신설한 조직이다. 박 처장은 보훈선양국의 선임과인 '선양정책과' 역시 '나라사랑정책과'로 과 명칭을 바꾸는 등 '나라사랑'을 유독 강조해왔다. 박 처장은 대체 어떤 전력의 인물이며, 또 그가 말하는 '나라사랑'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훈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만든 협회, 군부대 안보교육으로 2억 원 벌어

외부강연에서 '나라사랑 교육과' 신설을 강조하는 박승춘 보훈처장
 외부강연에서 '나라사랑 교육과' 신설을 강조하는 박승춘 보훈처장
ⓒ 뉴스타파 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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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27기 출신으로 12사단장, 9군단장을 역임한 박 처장은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 재직 시절인 지난 2004년, 북한 경비정의 무선통신 내용을 언론에 제공한 혐의로 기무사 조사를 받다가 자진 전역한 예비역 육군중장 출신이다. 박 처장은 전역 후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했으며, 2008년엔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한 전력이 있다. 지난해 2월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그는 평소 보수편향 및 여당 편파성 발언을 자주 해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던 인물이다.

박 처장은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에게 연두 업무보고를 하면서 '안보교육 강화'를 들고 나왔다. 박 처장은 "2040세대를 중심으로 햇볕정책과 남북 화해가 현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 및 한·미동맹 강화보다 안보에 유리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면서 학군단 등 대학생 단체, 민방위·예비군 훈련, 기업 신입사원 연수, 공무원·교원 연수 등에 안보교육 시간을 배정하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박 처장은 심지어 안보교육 효과 측정을 위해 보훈처에서 '2040 안보수용지수'를 제정하겠다고 밝혀 이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 처장은 안보교육이 나라사랑의 일환이라며 보훈처가 이를 맡겠다고 나섰는데 이는 부처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정부부처 가운데 안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가 이미 있다. 행정안전부, 국방부, 통일부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훈처에서 별도의 부서(나라사랑교육과)를 새로 만들어 안보교육을 담당하겠다는 것은 월권이다. 이는 전적으로 박 처장이 이명박 정권의 정치성향을 감안하여 무리한 업무추진을 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보훈처 설립 취지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참전군인과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따르면, '보훈대상자'는 ▲ 독립유공자 ▲ 국가유공자 ▲ 보훈보상대상자 ▲ 참전유공자 ▲ 5·18 민주유공자 ▲ 고엽제 후유(의)증 ▲ 특수임무유공자 ▲ 제대군인 등 8개 분야로 돼 있다. 요약하면 보훈처는 항일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전몰 호국용사와 참전자, 4·19혁명 및 민주화 유공자, 그리고 재해 부상 및 사망 군경과 제대군인 등에 대해 원호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나라사랑정신 계승발전' 예산 42억 원...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어

보훈선양사업 내역 가운데 첫머리에 올라 있는 '나라사랑' (출처-'2012 보훈예산 개요')
 보훈선양사업 내역 가운데 첫머리에 올라 있는 '나라사랑' (출처-'2012 보훈예산 개요')
ⓒ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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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선양사업은 위에서 열거한 각 분야 '보훈대상자'들의 공적을 널리 알리고 이를 현창하는 것이 주요사업이다. 그리고 그 첫머리에는 어느 모로 보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자리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2012년도 보훈예산 개요' 문건에 따르면, 예산 항목 첫머리에는 '나라사랑정신 계승발전'이 올라와 있고, 예산은 작년에 비해 51.1% 늘어난 42억4100만 원이 책정됐다.

보훈선양 전체 예산액 695억9700만 원 중에서 독립기념관 운영 및 활성화, UN평화기념관 등 현충시설 건립, 독립유공자 예우지원, 현충시설관리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액수다(참고로 보훈처 예산은 2012년도 세출예산 기준으로 전년대비 4.7% 증가한 3조8976억2600만 원이며 정부 예산의 1.73%에 해당함).

'나라사랑정신 계승발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 보훈처 홈페이지를 뒤져보았다. 홈페이지 상단에 있는 '나라사랑광장'이라는 항목으로 들어가 세부항목인 '나라사랑 오아시스'로 들어가면 첫머리에 '나라사랑교육'에 대한 소개가 있다.

이곳에 따르면 '나라사랑교육'이란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 독립·호국·민주화에 대한 역사의식, 안보의식, 국가정체성 등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여 국민으로서의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라사랑교육 추진체계는 아래 표와 같다.

나라사랑교육, 반북·보수성향 일색... 4·19는 동영상 하나 없어

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추진체계(출처-보훈처 홈페이지)
 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추진체계(출처-보훈처 홈페이지)
ⓒ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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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라사랑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안보교육, 국가정체성 확립, 국가의식 고취, 그리고 이를 위한 강사진 구성과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 등이 눈에 띈다. 다시 말해 '정의'에서 언급한 '독립·호국·민주화' 가운데 '독립'과 '민주화'는 어디서도 해당사항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이번에 국회에서 문제가 됐던 '종북 DVD'는 여기서 말하는 '나라사랑교육'의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 차원에서 제작(협찬)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박승춘 처장 체제하에서의 보훈처 '나라사랑교육'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애국애족정신 고양'이라기보다는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확산 차원의 '정치행위'로 읽힌다.

'나라사랑교육 소개' 아래에는 '독립', '호국', '민주' 등의 항목이 있는데 이곳에는 이 항목과 관련해 보훈처에서 펴낸 교재들이 소개돼 있다. '독립' 항목에는 <얘들아, 3·1절 이야기를 들어볼래?>, '민주' 항목에는 <얘들아, 4·19혁명 이야기를 들어볼래?>가 각각 한 권씩 소개돼 있다.

반면 '호국' 항목에는 <나라사랑정신과 국가 보훈정책> <전시작전통제권 바로알기> <제주민관복합형 관광...> <위기의 한국안보> <호국과 보훈> 등 다섯 권이 소개돼 있다. '호국' 항목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홍보하는 책자나 전시작전통제권 관련 서적이 소개된 것은 적절치 못해 보인다. 결국 '독립'과 '민주'는 '호국'을 위해 구색으로 끼워 넣었다고 볼 수 있다.

위 내용은 교재 가운데 'e-book'만을 한정한 것이며 PDF나 IPTV, 동영상, 설문조사 결과 항목을 보면 차이가 더 심하다. 참고로 '호국'편 PDF 교재 중에는 <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 <한미동맹, 왜 필요한가> <한반도의 빛과 어둠> 등도 포함돼 있어 이곳이 보훈처 홈페이지인지 국방부 홈페이지인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민주'편 동영상 코너에는 그 흔한 4·19혁명이나 5·18광주항쟁 동영상 하나 없으면서 '호국'편에는 무려 8개의 동영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천안함사건, 제2연평 해전, 6·25전쟁 등이 주요내용이다. IPTV 교재 역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 텍스트 및 동영상 자료 대부분이 반북-보수성향 일색이다.

보훈처가 이데올로기 전파 하수인 노릇... '문민화' 필요

'호국' 편의 e-book 교재들. (출처-보훈처 홈피)
 '호국' 편의 e-book 교재들. (출처-보훈처 홈피)
ⓒ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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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원호'는 근대 이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0년 11월에 고종황제의 조칙으로 공포한 '순절장졸세록시행건(殉節將卒世錄施行件)'이 국내 최초로 기록되고 있다. 1948년 정부조직법이 제정됐으나 당시만 해도 군사원호 업무를 총괄부서는 없는 상태에서 국방부와 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 두 곳에서 분담해왔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으로 원호대상자가 증가함에 따라 전담 부처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5·16 직후인 1961년 7월 5일 '군사원호청 설치법' 공포에 따라 그해 8월 5일 창설됐다. 1985년 '국가보훈처'로 격상되면서 기관장의 직급이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됐다(2008년부터 다시 차관급으로 격하됨).

그런데 역대 보훈처장 가운데는 박 처장처럼 군 출신 인사들이 많았다. 이는 보훈처 업무가 전물 군경이나 제대군인 원호사업에 주력해온 탓도 있지만 일종의 '군사문화 잔재'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보훈처장 자리가 예비역 장성들의 양로원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출신이 이렇다 보니 이들이 항일 애국선열이나 4·19,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보다는 전몰군경이나 제대군인 쪽에 비중을 뒀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엄격히 말하면 이는 보훈처장의 직무유기요, 법규 위반인 셈이다.

필자는 언젠가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관련기사 : <부총리급 '국가보훈원' 신설 기대한다>). '국가보훈'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강조한 데서 나온 생각이다.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애국심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현 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같은 이데올로기 주입식 교육은 적절치 않다. 이제 보훈처도 선진화, 문민화 돼야 한다.

보훈처가 특정 정권의 이데올로기 전파 하수인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또 관련법에 규정된 보훈처 본연의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관, 그리고 민주시민 의식이 충만한 보훈처장을 뽑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태그:#국가보훈처, #박승춘 처장, #나라사랑교육, #종북DVD, #군사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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