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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칸의 대저택에 딸린 작은 초가. 이 집은 '늘 삼가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일깨워 부자가 부자로 남을 수 있는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했다.
 99칸의 대저택에 딸린 작은 초가. 이 집은 '늘 삼가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일깨워 부자가 부자로 남을 수 있는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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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헤이리 주민들과 함께 안동 하회마을로 가을 문화탐방을 다녀왔습니다. 620여 년 전, 낙동강 700리 중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에 터를 잡아 수대에 걸쳐 마을을 일뤄온 풍산 류씨 동성마을 하회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이후 마을 안에 있는 주차장을 마을 바깥으로 옮긴 것을 비롯해 현존하는 마을내의 127개 가옥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스며 있었습니다.

풍산류씨가 이곳에 입향한 후 후손들이 줄줄이 중앙관계로 진출합니다.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이 이 마을에서 배출한 조선 중기의 명신들입니다.

인재의 배출과 더불어 이 마을은 크게 번성합니다. 지금도 마을 중심부에 해당하는 600년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큰 와가들이 그 면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잣집의 1% '부족한 교훈'

안내를 받아 마을을 둘러보던 중 용도가 불분명한 한 초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큰 기와집 오른족 입구의 작은 흙집 초가는 헛간으로 쓰기에도 좁았습니다. 유선엽 문화관광해설사에게 그 용도를 물었습니다.

"교훈적인 의미로 지은 초가입니다. 한 집안은 보통 한대에 흥하면 반드시 다음 대는 쇠락하니 후손들이 그것을 유념해서 집안의 유지에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세도가문에서도 반드시 1% 정도를 이렇게 스스로 부족한 교훈을 남깁니다."

설명을 들은 일행이 한입으로 "아하!"를 외쳤습니다.

"정신 안 차리면 요 모양 요 꼬자리가 된다는 거군요!"

다시 물었습니다.

"이 집을 뭐라고 부르나요?"

특별한 명칭을 두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는 측간으로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하동 고택에서도 현재 그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일행들은 각자 그 초가의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요꼬라지 초가'는 어때요?"
"이것을 '견본주택'이라고 하는 겁니다."

농을 섞어 이름을 지어보는 일행들도 각자의 가슴 속에 서늘한 교훈을 담았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이 초가가 있는 댁은 북촌댁으로 다호는 화경당(和敬堂)이라고 합니다. 99칸으로 지어졌지만, 200여 년이 지난 지금 후원 뒤의 딸들이 살던 안별당이 소실돼 72칸이 남아있습니다. 애초 정조, 순조 조에 예조, 호조 참판을 지낸 학서 류이좌(鶴棲 柳台佐)의 선친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류사춘(柳師春)공이 정조 21년(1797)에 작은 사랑과 좌우익랑을 짓는 것으로 시작해 경상도도사를 지낸 그의 증손 석호 류도성(柳道性)이 안채·큰사랑·대문간·사당 등을 늘여짓는 일을 철종 13년(1862)에 마쳤다고 합니다. 하회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집을 완성한 류도성 공의 별호(別號)는 수신와(須愼窩·모름지기 수, 삼갈 신, 움막 와)로 '모름지기 삼가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염두에 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859년 여름, 강건너 부용대쪽의 상갓집에 조문을 갔던 마을 사람들이 저녁 시간, 마을로 돌아오는 중에 홍수로 불어난 물에 배가 뒤집혔고, 당시 집을 짓기 위해 강가에 쌓아둔 춘양목을 강으로 던져 사람을 구하고 나머지 목재들을 불살라 사람들의 구조활동에 불을 밝혔습니다. 이 춘양목은 류도성 공이 집을 짓기 위해 3년 간 말려 애지중지하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댁은 소작료를 싸게 받았습니다. 다른 지주들이 6할을 받았지만 이 댁을 4할이나 5할을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에서 소작민들인 동학군을 맞아서도 이 댁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후덕한 배려의 마음을 실천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정신이 담긴 이 작은 초가의 정신 탓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신적 자각을 일깨우는 1% 시스템

'1% 시스템(one percent system)'이라는 것이 시행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제도는 공공건물을 건축할 때 총비용의 1%를 '미적 환경정비'를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미술품을 걸거나 조각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1949년 이탈리아가 '공공건조물의 재건시 그 경비의 2% 이상을 예술작품의 구입비로 할애할 것'을 입법화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조형 예술 장려정책으로 공공건물 신축 시 건축비의 1%를 건물 내외부의 미술품 장식에 사용하도록 규정한 '1% 아티스티크(Artistique)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1934년 스웨덴 의회는 건물 건축비의 1%를 건물의 예술작품 구입에 할당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에술진흥법 9조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 항목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는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조각·공예 등 미술장식에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이 건물의 1% 시스템이 외부의 시각적 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하회마을의 1% 부족의 초가는 정신적 자각을 일깨우는 시스템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안동, #하회마을, #북촌댁, #화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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