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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며 정면돌파를 택한 박근혜 후보. (오른쪽)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세운 고 김지태씨 부인 송혜영씨가 19일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의 결단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며 정면돌파를 택한 박근혜 후보. (오른쪽)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세운 고 김지태씨 부인 송혜영씨가 19일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의 결단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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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야당의 주장은 공익재단의 성격을 모르고 말하는 것이거나 알고도 주장하는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헌납 과정에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거듭된 '강압 여부'에 대한 질문에 "유족 측에서 강압에 의해서 (정수장학회를) 강탈당했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이 그에 대해 법원이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고 김지태씨 유족이 제기한 주식반환 청구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김씨가 1962년 당시 박정희 정부의 강압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문화방송·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 주식을 증여하게 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김씨가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주식을 증여할 정도로 강압이 심했다고 보긴 힘들어 증여를 무효로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주식 증여를 무효화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강압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결국 박 후보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연설대에 오른 셈이었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정현 공보단장이 건네준 법원 판결 기사를 읽어본 뒤 다시 마이크를 잡고 "제가 '강압이 없었다'고 했나? 잘못 말한 것 같다"며 "강박의 정도가 의사결정할 여지를 박탈할 만큼의 상황에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결이었다"고 번복했다. 유족의 주장은 주식 증여를 무효화할 조건에 미치지 못한다는 부분만 본 셈이다.

"김지태는 부정부패로 지탄 받은 분, 헌납 재산도 일부에 불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가운데, 프롬프터에 박 후보가 발표할 원고 내용이 표시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가운데, 프롬프터에 박 후보가 발표할 원고 내용이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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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 후보가 주식 증여 과정에 강압 여부를 인정했더라도 기본 입장은 변할 게 없었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이름만 바꾼 것으로 알고 계신 분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김씨가 헌납한 재산이 (정수장학회에) 포함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국내 독지가와 해외 동포들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었다"며 "안타깝게도 당시 김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던 분으로 4·19 때 부정축재자 명단에 오르고 집 앞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5·16 때 부패혐의로 징역 7년형을 받았는데 처벌을 면하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먼저 밝힌 것"이라며 "당시 부산일보는 자본 잠식이 980배나 됐던 부실기업이었고, 문화방송 역시 라디오방송만 하던 작은 규모였다, 오히려 너무나 견실히 성장해 규모가 커지니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생각들 정도"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김씨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 자발적인 재산헌납을 했고 당시 헌납했던 재산수준도 극히 미미했다는 논리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기자회견 후 브리핑에서 "법원이 강압 여부를 인정한 사실을 후보가 미리 알았다면 다른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을 수 있나"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 그 부분은 박 후보가 밝히고자 하는 입장을 전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공보단장은 또 "(군사 정부가) 혁명을 일으키고 나서 탈세·밀수·부정축재·불법정치자금 제공·3·15 부정선거 개입 등을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일제 검거해 수사에 나섰다, 김지태씨도 그중에 해당된 것 같다"며 박 후보의 주장을 보강 설명했다. 특히, "1962년부터 1972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생존하는 동안 (정수장학회의) 재정이 늘어나게 되는데, 약 11억3600여만 원이다"며 "그중에 김씨가 헌납한 돈은 전체의 5.8%로 약 6700여만 원뿐이다"고 강조했다.

"설립자와 가깝다고 물러나는 건 옳지 않아... 오해사는 명칭 변경해달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 한겨레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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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는 '정수장학회와 자신은 무관하다'는 입장도 그대로 유지했다. 무엇보다 그는 "(재단은) 설립자의 뜻을 잘 아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게 당연하다, 대부분의 재단이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며 "현재 운영진이 부정부패와 관련됐다면 물러나야 하지만 설립자와 가깝다는 이유로 물러나는 건 옳지 못한 정치 공세"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비호하는 어조였다. 최 비서관은 1978년 당시 '큰 영애'인 박 후보의 공보비서관을 맡은 바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박 후보의 이사장 사퇴 이후 후임으로 7년간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박 후보보다 먼저 이사장직을 맡았던 인사들도 이관구 재건국민운동본부장·김창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 등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었다.

다만,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면 재단을 설립한 본래 취지나 장학생들의 자긍심이 훼손될 수 있다"며 "이사장과 이사진은 정수장학회가 더 이상 정쟁도구가 되지 않도록, 국민적 의혹이 조금도 남지 않도록 국민 앞에 모든 것을 확실하고 투명하게 밝혀 국민에게 해답을 내놓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더불어 "아버지께서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도 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것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며 "더 이상 의심받지 않고 공익재단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장학회 명칭 (수정)을 비롯해 이사진이 잘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씨의 이름을 따 만든 '정수장학회' 이름이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인식을 근거로 한 '해법'이었다.

박 후보가 내놓은 해법은 이게 끝이었다. 간접적으로 최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자발적 퇴진을 '요청'한 것으로도 보이나 명백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박 후보는 질의응답에서 "정수장학회에 운영상 문제가 없다면 이사진의 판단을 요구할 필요가 없지 않나"라는 질문에 "중요한 건 설립취지나 정신이지 명칭이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굳이 명칭 대문에 오해받는다면 이사진에서 판단을 잘 해보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며 '명칭 변경'에 초점을 맞춰 답했다.

"최 이사장을 포함해 이사진들이 사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란 질문에도 박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말씀드린 내용 그대로"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사진에서 현명하게 판단을 해주실 것이라 생각한다"고만 답했다.

반면, 정수장학회 논란이 재점화된 언론사 지분매각 추진 논란에 대해서는 "야당의 정치공세"라고 규정했다. 민주통합당은 정수장학회가 언론사 지분매각 추진을 논의하며 부산일보 지분매각금을 대선 격전지로 예상되는 부산·경남지역 복지사업에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해 '대선용 이벤트'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정수장학회가 경영진과 논의 없이 문화방송의 지분매각을 논의한 사실은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공익재단으로서 국민들에게 공정하고 투명한 결정이 나도록 하는 게 당연하다"며 "야당이 그동안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제 장학회가 지분을 매각하겠다니깐 안 된다고 한다, 무엇이 제대로 된 주장인지 종잡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입장 밝힌다더니 국민 눈높이 못 맞추는 발언만 했다"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 발표를 위해 마이크 앞에 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 발표를 위해 마이크 앞에 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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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같은 박 후보의 '정면돌파'에 예상외란 반응이 나온다. 당초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추진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정수장학회는 저나 야당이나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며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고 다시 여지를 남겨, 최 이사장 등 현 이사진 전원에 대한 자진 사퇴를 직접 촉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당내 인사들이 직접 최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원장은 "이사장이 자진사퇴하고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분을 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고, 심재철 최고위원도 "최 이사장이 사퇴할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 캠프 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지태씨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시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 "그럴 리 있겠냐, 전향적인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다만, 이정현 공보단장 등 친박 핵심 인사들은 "박 후보가 이미 '관계없다'고 밝혔고 직접 사퇴를 요구하는 건 월권행위로 본다"며 "크게 다른 내용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들의 관측이 맞은 셈이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박 후보가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는데도 정수장학회 문제를 깨끗이 털어내지 못했다는 우려가 공공연히 나온다. 박 후보가 5·16 쿠데타 당시 김지태씨의 주식 증여 과정의 '강압성' 부분을 사실상 부정하고 나서면서 역사인식 논란이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상돈 정치쇄신특위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가뜩이나 5·16 당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은데 (이번 기자회견이) 과거사 문제를 또 다시 여는, 단초가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도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후보가 직접 입장을 밝힌다고 해서 최 이사장의 퇴진 및 중립적 이사진 구성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였다"며 "아무리 장학회와 무관한 입장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후보가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안철수 일제히 비판... "실망 넘어 분노"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 입구가 굳게 닫혀 있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 입구가 굳게 닫혀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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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 후보의 기자회견에 대해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도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박 후보의 발언은 '역사 왜곡'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선대위의 진성준 대변인은 "국민은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 잡는 차원에서 박 후보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 강탈된 재산의 사회적 환원을 박 후보에게 주문하고 기대했지만 이런 국민적 기대와 요구와 동떨어지다 못해 정반대 되는 입장을 밝혔다"며 "실망을 넘어서 분노스럽다"고 밝혔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도 "강탈된 장물에서 숱한 편익을 얻어왔던 장본인으로서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을 반복했다"며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가 보여준 이전 유신에 대한 사과나 과거사에 대한 변화된 태도가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선거 전술의 일환이었을 뿐임을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박 후보가 당초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 헌납 과정에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역사인식 부재다, 대통령 후보로서 부적격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진성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박근혜 후보가 참모들의 충고를 받고, 자신의 발언 일부를 수정했다고 한다"며 "정수장학회가 강탈이 아니라 헌납이며 장물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게 박 후보의 일관된 입장임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정수장학회는 군사쿠데타 세력이 강탈한 장물"이라며 "박 후보는 시인하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진실과화해위원회 그리고 법원의 판결, 국민적 인식 모두가 강압에 의해 강탈된 재산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 등 박근혜 후보 측근 이사들의 퇴진, 고 김지태 회장 유족 등에 대한 피해 배상과 정수장학회의 사회적 환원을 거듭 촉구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도 이날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국민의 상식과 사법부의 판단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또 "김지태씨가 주식을 강박에 넘겼다는 점을 사법부는 적시했다"며 "이를 부인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로서 중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태그:#박근혜, #정수장학회, #김지태,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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